뒤늦게 쓰는 '슈퍼밴드'의 기억
확실히 음악에는 힘이 있다. 감정은 물론, 마음도 움직인다.
나는 악기를 잘 다루거나, 음악에 대한 지식이 많은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나와 음악은 멀지 않다고 생각한다. 10대와 20대 때는 음악을 다루는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20대 중반에 맛보기로 동네에서 음악방송을 만들었다. 그때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서로에게 노래를 추천하며 마음을 전한 우리는 그 덕에 이어져 지금의 우리가 됐다.
그때 다뤘던 방송이 홍대의 인디음악씬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소중한 인연이었다. 생활노동자로 살아가면서 동시에 자기들이 사랑하는 음악을 하며 밤마다 스튜디오에 앉아 음악을 말하는 이들을 만났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소리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겠지. 이따금 그들이 그립다.
스물여섯에 홍대에서 라디오로 음악을 듣던 내가 비슷한 마음을 서른이 된 4년 후 다시 느꼈다. '슈퍼밴드'라는 방송을 통해서다. 처음 본 건 우연한 계기였다. 마침 아내가 본가에 내려간터라 혼자서 금요일 밤을 보내던 때였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노래하는 이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오후 8시쯤 됐을 때였던 것 같다. 사실 우리나라에 음악을 다루는 예능이 한둘이 아닌 터라 그냥 그런 음악 프로그램인가보다 했다.
그런데 한 곡만 봐보자고 하던 것이 두 곡, 세 곡.. 방송 전체가 됐다. 그때가 슈퍼밴드 2회 방송을 앞두고 나온 1회 재방송이었다. 두 방송을 연이어 본 기억이 난다. 그 자리에 앉아서 3시간을 TV에 집중했다. 근 몇 년 동안 TV 프로그램을 이렇게 본 건 처음이었다. 내게 첫 장면은 지금은 우승팀 멤버가 된 하현상씨의 예선 모습이었던 것 같다. 뒤이어 홍이삭씨가 나오고, 이제는 익숙한 결선 멤버들이 줄줄 나왔다.
그때 채널을 돌리지 못한 이유가 있다. 노래를 부르던 음악가들의 표정을 봤기 때문이다. 자신이 잘하는 걸 선보이는 그들의 표정은 정말 행복해보였다. 묘한 감정이 들었다. 마침 혼자여서 더 센치한 기분이 들어서였을 수도 있다. 그런데 함께 할 동료를 만나고 싶다며 자신이 가장 잘 하는 걸 들고 온 참가자들의 의지를 잊을 수 없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나는 저들처럼 어떤 걸 하면서 행복한 순간이 있었을까. 그들에게 음악은 '일'일터인데, 내가 일하면서 저런 표정을 지었던 적이나 있었을까. 솔직히 말하면 없었다. 비참한 기분도 들었지만 그들의 표정이 도리어 내게 위로를 안겨줬다. 그들은 너무 행복해보였다. 음악이 듣기 좋았던 건 당연하다.
다음날 서울로 돌아온 아내에게 다짜고짜 "너가 너무 좋아할 방송이 있다"며 슈퍼밴드 '영업'을 했다. 예상적중. 아내도 나 못잖은, 아니 나보다 더 슈퍼밴드에 빠져들었다. 물론 멀리서 방송으로 응원하는 수준이었다. 사이좋게 방청도 신청해보고, 최근에 열린 전국투어도 구매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7월 중순쯤 우승자가 결정될 때까지 슈퍼밴드를 꼬박꼬박 챙겨봤다. 참가자들이 서로 한팀이 되며 단짝을 만나고, 시너지를 내고, 음악을 켜켜이 쌓아가는 모습에 빠져들었다. 사실 방금 적은 한 문장에 너무 많은 순간이 담겼다. 매주 그들의 협업과 함께함에 반했다. 심하게 말하면 그들이 노력해 만들어낸 결과물에 '은혜'를 받는 수준이었다.
몇몇 장면에선 눈물이 '찔끔' 났다. 혼자봤다면 눈물을 흘렸지도 모를 장면이다(와이프는 사실 몇 번 울었다). 운 이유는 슬퍼서가 아니다. 혼자 밴드가 되고 싶다며 도전한 참가자들이 한팀이 돼 서로 눈을 맞추고, 같은 박자의 숨을 쉬는 모습을 보는 게 감동적이었기 때문이다.
우승팀인 호피폴라의 첫 만남이 그랬다. 전 라운드에서 아일과 하현상이 상대팀으로 만나 붙었고, 아일이 승리를 거뒀다. 이에 팀원을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을 쥔 아일의 선택은 하현상이었다. 2연패로 잔뜩 기죽어있던 하현상을 살린 건 아일이었다. 또 그 팀원들도 모두 한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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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 오르기 전 온맘으로 격려하고, 무대를 만드는 과정 내내 팀원의 기를 살려주고 배려하는 아일의 모습을 보면서 진짜 리더의 모습을 봤다. 결과물이 좋았던 건 당연하다(승패를 떠나서, 물론 이 무대로 이기기도 했다). 아까 말한 은혜를 받은 장면이 이런 장면이었다. 무리한 스토리 짜내기를 빼고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인상적인 몇몇 장면만 보였을뿐인데, 오히려 눈물이 났다.
슈퍼밴드가 끝나고도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고맙게도 음원이 나와준 덕에 그때를 곱씹으며, 가끔은 그 무대를 아내와 함께 흉내도 내본다. 요새 가장 많이 다시 듣는 노래는 아이러니하게 최종 결승전에 진출 못한 팀의 노래다. 케빈오(보컬), 이종훈(베이스), 최영진(드럼), 디폴(건반&패드)이 만든 자작곡 'Before Sunris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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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다운 자작곡도 좋았지만, 행복해하는 이들의 호흡, 가사 내용도 좋았다. 또 마음을 사로잡았던 장면은 도입부에서 이들이 '원, 투'를 외치며 악기의 호흡을 맞춘 순간이다. 이런게 밴드이지 않을까, 이렇게 한 목소리로 외치고 한 순간에 악기가 들어갈 때 쾌감은 어떨까. 나는 경험하지 못해 감히 상상으로밖에 할 수 없는 감정이다. 애프터문뿐만 아니라 참가자들 거의 대부분의 모습이 그랬다.
이렇게 3개월 정도를 열렬히 음악에 푹 빠져 지냈다. 방송은 끝나도 음악은 남아 삶을 다채롭게 할 여지는 남았다. 아마 당분간 이들이 만든 음악을 더 들을 것 같다. 음악엔 힘이 있다. 행복하게 음악을 연주하는 이들의 음악은 보고듣는 이의 감정을 움직이고, 마음을 흔든다. 슈퍼밴드에 대한 평가야 엇갈릴 수 있겠다. 그러나 실제로 방송을 보며 위로를 얻은 시청자 입장에서 이 방송은 마음을 흔드는 음악의 힘을 일부 보여줬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