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브라이스와 줄리 Nov 12. 2019

어쩔 수 없는 마감노동자

만 스물아홉, 직장인 만 삼년, 그러다보니 느껴지는 것들

얼마 전 공식적인 생일이 지나 진정 만 스물아홉이 됐다. 아직도 만 서른은 되지 않았다. 괜히 뿌듯한 마음도 든다(연상의 아내여, 미안).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브런치와 같은 글 작성 플랫폼을 킬테면 어김 없이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다. 이번 주는 휴가다. 내일은 제주도로 떠나지면 지난 이틀은 하릴 없는 백수와도 같았다.


이것저것 많이 하긴 했다. 밥도 먹고, 설거지도 하고, 외식도 하고, 달리기도 했다. 밥 먹고 혼자서 동네를 거닐며 가게들의 상황을 업데이트했다. 좋아하는 단품 정식 가게 주인 아저씨는 결혼을 해 신혼여행을 떠나셨고, 자주 가지 않았던 카페는 규모를 줄여 이전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휴가는 마감이 없었다. 지난 휴가 때는 마감처럼 지켜야 할 시간들이 있었다. 누구와의 약속이라든지, 갑자기 치고 들어온 해야만 하는 회사 업무라든지 말이다. 이번엔 전혀 그런 게 없다.

마감이 없으니 늘어진다. 휴가 이틀째, 오후 4시쯤 낮잠을 자다 깨달았다. 나는 '마감'이 필요하다. 마감을 해야만 나는 움직인다. 계획 없는 쉼도 때때로 필요하다. 하지만 쉬어야 할 때를 빼고 계획이 없는 삶, 나는 하면 안 되겠구나 싶다.


하필이면 요즘 찔끔찔끔 읽는 책이 시 '풀꽃'을 쓰신 나태주 시인님의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였다. 산문집인데, 인생을 오래 산 선배의 깨달음을 누워서 읽고 있자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나태주 시인은 자신이 읽었던 책과 겪었던 일들을 바탕으로 '오늘'을 성실하게 살고 계셨다.


호호 할아버지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나이 들었음을 느끼는 연세를 사시는 분이니, 더더욱 그러함을 느낄 것이다. 자신도 '좋을 때'지만 스물아홉의 나도 '좋을 때'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여지 없이 캘린더를 스마트폰에 새로 깔았다. 물론 캘린더를 이미 쓰고 있었다. 그러나 굵직한 약속만 기록했을 뿐 주 단위의 세세한 나의 삶은 기록하지 않았다. 기록하기 싫어서 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을 생각하면, 허투루 보낼 수 없다. 설사 내가 기대한 만큼 삶이 이어지지 않더라도 그 순간까지의 삶 만큼은 감사함을 누리면서 살아야지.


책을 괜히 읽었다. 나태주 시인이 우연히 읽었던 작자 미상의 시를 이 책에 옮겼는데, 내용이 참 그렇다. 옮겨보자면, 


인생의 비극은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도달할 목표가 없는 데에 있다 


꿈을 실현하지 못한 채 

죽는 것이 불행이 아니라

꿈을 갖지 않은 것이 불행이다 


새로운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 불행이 아니라 

새로운 생각을 해보려고 하지 않을 때 

이것이 불행이다 


하늘에 있는 별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도달해야 할 별이 없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결국 실패는 죄가 아니며

바로 목표가 없는 것이 죄악이다 


-작자 미상, '인생의 비극은' 전문 



너무나도 지당한 말씀. 실천을 해야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내 '마감'을 다시 만들기 위해, 또 그걸 지키기 위해 준비하러 가야겠다. 그럼 안뇽.

매거진의 이전글 작은 성취(feat. 노트북, 텀블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