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브라이스와 줄리 May 26. 2020

웃으며 '퇴사'하기

상상만 하고 검색만 했던 퇴사, 진짜 해보니까...

브런치에종종 '퇴사' 키워드검색했다. 나도 언젠가 퇴사를 할 수 있을까, 퇴사 이후의 삶은 어떨까 궁금해하면서 말이다. 무작정 퇴사한 사람부터 준비 끝에 성공적 퇴사를 한 사람들까지 적잖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퇴사는 에세이 섹션에서 뜨거운 검색어다.

최근 상상으로만 하던 퇴사를 했다.

기자에서 에디터라는 비슷한 듯 다른 직함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하고 싶은 일이었고, 꽤 오래 고민하며 준비한 일이었다. 감사히 기회가 열렸고, 난 선택을 했다.


헤어짐은 언제가 됐든 좋을 수는 없다. 3년 넘게 생활한 동료 선후배에게 헤어짐을 말하는 건 쉽지 않았다. 어떤 점에선 연애 같았다. 혼자서 조용히 헤어짐을 준비했다 이별 통보를 한 기분이었다. 소식을 받은 누군가는 통보를 당한 입장이었을 것이다(나 혼자만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막상 헤어지자고 하니 '아쉽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감사하게 웃으며 안녕을 할 수 있었다. 진중하게 사직서를 냈고, 마지막 만남을 이어갔지만 그 속에서 나는 '감사하다'는 인사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선배들은 격려를 해줬고, 동료들과는 다시 곧 보자는 인사를 나눴다. 적어도 연락을 나눈 이들과는 그랬다. 이처럼 웃으며 안녕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내가 새로운 도전을 확고히 선택한 것이 있었다. 또 3년여의 시간 동안 내가 해야 할 일을 나름대로 부지런히 한 점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웃으며 퇴사를 할 수 있을까. 당장 하루아침에 나오는 비결은 아니겠지만, 퇴사를 태어나 처음으로 거친 내가 느낀 점은 이렇다.


맡은 일에 충실했다.

기자는 바쁜 직업이다. 정확히는 마음이 바다. 사실 이 점이 내가 다른 분야를 도전하 데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마음이 바쁜 이유는 이렇다. 내가 담당하는 출입처에서 벌어지는 큰일이 언제 일어날지 모른다는 점에서다. 산업부로 일할 때는 토요일마다 노트북을 챙다. 내가 챙겨봐야 할 회사에서 큰일이 언제 터질지, 거물의 부고가 나오면 어떡하나 마음 깊은 곳에 걱정이 있었다. 이것은 내가 진행했던 기획이, 또는 프로젝트가 어긋나는 상황이 생기는 것과는 조금 다른 기분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곳에 속한 동안은 맡은 일에 충실했다. 해야 할 때는 하고, 가야 할 때는 갔다. 다른 누군가가 어떤 평가를 내릴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번에 퇴사 인사를 나누는 과정에서 느꼈다. 충실히 한 만큼 함께 호흡한 분들은 아쉽다고 전했다. 더 같이 오래 하고 싶다는 말을 (내 앞에서 하는 립서비스일지라도) 해줬다. 어떤 선배는 이렇게도 말했다. "막상 안 잡아주면 서운할지도 몰라, 바로 잘 가라고 하면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었다는 뜻이니까." 그만큼 내가 이 일을 놓는 순간까지 같이 지낸 동료가 떠오를 만큼 힘들었지만 맡은 일에 충실했다. 그러고 나니 안녕을 말하면서 웃을 수 있었다.


도피가 아닌 도전이다.

일하면서 도피하고 싶은 순간이 분명 많았다. 선배, 상사, 사람 때문에 힘든 적도 당연히 있었다. 쏟아지는 이슈에 밀리다 보면 지쳐서 다른 직업으로 눈 돌린 적도 많았다. 그러나 이번 퇴사는 준비에 준비를 거친 끝에 새 회사로 합류가 결정된 상태에서 이뤄졌다. 이직하고자 하는 곳은 6개월 이상 콘텐츠를 지켜본 곳이고, 지속적으로 내가 매력을 느꼈던 회사다. 그랬기에 최종 합격 소식을 듣기까지 고민보다는 이곳에서 어떻게 일하고 싶은지, 어떻게 방향성을 맞춰나갈 것인지 그 생각을 선명하게 하는 과정을 거쳤다. 업무를 하면서 전형을 이어가는 건 당연히 어려운 일이지만, 목표가 확실해지니 더 냉정하게 상황을 대처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결정되고 이제 알려야 하는 순간, 자연스럽게 도전한다는 말이 나왔다. "제가 지금 하는 일과는 분명 다를 것이고, 동시에 제가 여기서 배운 장점들을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는 것이 내 설명이었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는 선배들의 말에도 결정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배경이다. 물론 지금까지 해온 콘텐츠와는 호흡이 다를 것이고, 내가 경험하지 못하고 상상하지 못한 일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 도피가 아닌 새로운 도전이기에 과감하게 기존의 자리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평일 한낮의 안전한 곳에서의 산책


사실 새 회사 첫 출근도 아직 하지 않은 입장에서 퇴사 이야기를 꺼는 건 조금 맹랑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처럼 긍정적인 케이스도 있지만 분명 퇴사할 수밖에 없는 여러 사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특별한 이벤트 없이 퇴사를 꿈꾸는 사람에겐 이런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확실하다. 나 역시 짧고 굵은 퇴사 및 이직의 순간에서 새로운 감정을 배웠다. 회사를 그만둬야겠다는 말을 전할 때의 싱숭생숭함, 새 출근을 앞두고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정리하는 요즘의 마음들, 이전과는 다른 감정들이다.


더불어 새로운 곳에서 내가 보여야 할 태도는 분명하다. 충실하게 맡은 일과 내가 새롭게 기획해야 할 일을 잘 감당하는 것. 그 태도를 실행으로 옮기는 것만으로도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쩔 수 없는 마감노동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