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고 편집하는 걸 직업으로 삼다 보니, 나를 위한 글쓰기 주기는 도통 돌아오지 않는다. 세 달에 한 번 정도? 몸과 마음의 여유가 채워졌을 때가 돼서야 빈 입력기에 손이 간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글을 쓴 시기도 2021년 11월30일이다. 3개월 하고도 며칠이 더 걸렸다.
오늘은 모처럼 업무에 여유가 있던 날이었다. 사실 평소에도 여유로울 수 있다. 마음의 여유가 없을 뿐. 새로운 기획을 짜내고, 사람들의 말을 주워 담는 일을 하다 보니 늘 쫓겨 있다. 오늘만큼은 그 마음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지금 팀에서 2년 가까이 일했으니, 며칠간 이런 나를 용서해도 되겠지. 권진아님의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놓고 마음을 차분히 달래고 있다. https://youtu.be/Rsxou6AOeio
노래에 빠져 두서없는 감정을 늘어놓자면, '일하는 것'에 많이 지쳐있다. 아내를 비롯한 가까운 지인은 지겹도록 들은 레퍼토리일 것이다. 하지만 한없이 센치하고 싶을 때는 이 감정에 종종 빠진다.
나의 일은 사람들이 품은 인사이트와 경험, 세상의 트렌드를 찾아 빠르고 정갈하게 정리하는 것이다. 방식은 다양하다. 글일 수도, 영상일 수도 있다. 범위가 넓다 보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일을 벌일 수 있다. 자유롭게 일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내가 의미 있다고 느끼면 그 콘텐츠 및 사람은 한없이 깊은 의미를 품은 존재가 된다. 반대로 생각하면 일말의 가치가 없는 존재가 되고.
그런데 최근에는 의미를 찾지 못하는 순간이 늘어나는 것 같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그들의 일과 마인드를 물으면서 '좋다'고 느끼면서도, 돌아서면 무덤덤해지는 나를 본다. 즐겁지가 않다. 쉬고 싶다.
여러 번 이직하며 새로운 도전을 해온 아내는 이런 나의 토로를 들으면, '쉰다고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일침을 놓는다. 맞는 말이다. 일주일만 쉬어도 나는 다시 일해야 하는 존재라며 뭔가 할 일과 목표를 찾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냥 한풀이가 하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종종 나는 업무의 일환으로, 또는 습관적으로 SNS를 보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 이렇게 잘해요' '이만큼 잘 나가요' '이렇게 행복해요' 류의 글을 보는 것 자체에 지쳐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면서 나도 내 커리어와 브랜딩을 위해 이 흐름에 일조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반대로 '저, 제가 하는 일이 엄청 멋있다고 소개하지만.. 재미없을 때가 더 많네요'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저는 그보다 주말에 아내·아이와 쇼핑몰 구경 다니고, 집에서 뒹구는 게 제일 좋아요'라고 쓰고 싶다. 쓰고 싶다면서 여기에 속내를 털어놨다(ㅎㅎ).
어느 주말 낮, 아내와 아이의 다정한 모습.
다시 루틴 이야기로 돌아간다면 지난해에는 상상도 안 했지만, 최근에 생긴 루틴이 하나 있다. 바로 '수영'이다. 운동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검색을 하다 나온 것이니, 지난해 세운 새해 계획을 성공한 셈이기도 하다. 검색을 하던 중 우연히 내가 사는 동네의 구립 공간에서 저렴하게 수영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코로나19가 걱정스럽지만, 스마트폰과도 떨어지고 잡생각 없이 30분이라도 몰입할 수 있는 뭔가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냉큼 신청했다. 그렇게 2월부터 월수금 아침 7시 수영 초급반에 들어갔다. 자유형 말고는 제대로 배운 게 없던 터라, 떨리면서 기대가 됐다. 혹시나 의지가 약해질까 가족은 물론, 팀원들에게도 수영을 등록했노라 공표하기도 했다.
실제로 도전한 결과는 대성공. 모처럼 내가 '성장'하는 걸 느꼈다. 25M 레인을 향해 나만의 싸움을 하면서 한 번씩 자세를 고쳐주는 선생님의 코칭을 받으니 실력이 느는 걸 체험했다. '3번만 출석하자'는 나의 계획은 지금 두 달째 다니는 루틴으로 확장됐다. 심지어 아내에겐 저녁반을 권유해 '전도'에 성공했다. 두 달 정도 되니 처음에는 한 번에 완주하지 못했던 25M도 너끈히 해내고 있다.
나는 왜 수영을 배우는 재미에 빠진 걸까. 돌이켜 보니, 최근 1년 동안 업무 또는 취미 영역에서 성장하는 걸 유일하게 느낀 순간이라 생각이 들었다. 누가 봐도 좋고 멋진 일을 하고 있지만, 최근 일하면서 나는 막상 성장한다고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고작 두 달, 횟수로는 20번도 안 되는 수영을 배우면서 발전한다는 걸 체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나의 개인적인 성장 돌파구는 수영이다. 아직 평영을 다듬는 중인데, 언제쯤 접영을 배울 수 있을까 하며 기대감에 출석한다(물론 잠을 이기지 못해 지각하는 경우가 많다ㅠㅠ).
연초 석 달을 돌이켜봤을 때 그래도 소개할 수 있는 루틴이 있음에 감사하다. 반대로 숙제인 건, 일에서 나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것. 조금 더 밝고 즐겁게 일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된다. 정말 몇 개월 쉬면 나아질 수 있는 걸까.. 그 답은 3개월 동안 다시 찾아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