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연하 짝꿍의 열세 번째 편지
줄리에게,
잘 지냈어?
오랜만이지:D
커버 사진은 해운대에서
행사를 위해 설치해둔
LED 장미야!
오늘 나는 '기억'에 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해.
'추억'이라는 단어로
예쁘게 포장되기도 하고,
'트라우마'라는 단어로
슬픔을 덧입기도 하는
참 묘한 매력을 지닌 단어지.
부산에서 몇몇 영화를 보면서
기억과 삶, 늙어감과 죽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어.
마침 어제 오늘 연속해서 본
영화가 노인들이 주인공이었는데,
그들의 삶을 조명하는
내용이었거든.
두 영화의 주인공들 모두
위트가 넘치는
멋진 어른들이었어.
전에 우리가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잖아.
그런 것처럼, 이 분들은 참
귀엽기도 하고 재미 있기도 하고,
때론 삶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그런 분들이었어.
보는 내내 유쾌함이 흘러서
기분이 좋았달까.
사실은 내가 기억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해보고 싶게 만든
대사가 있었어.
잠깐 그것을 옮겨보면,
노인이 젊은 친구들과
산에 올라 망원경을 보게 하면서
이야기를 해.
"보여? 모든 게 가깝게 보이지.
젊을 땐 모든 게 가깝게 느껴져.
그게 미래지.
(다른 곳을 보여주면서)
보여? 모든 게 멀리 보이지.
늙으면 모든 게 멀리 느껴져.
그게 과거야."
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젊은이들보다
긴 인생을 산 어른이
남기는 이 말이 내 마음에
참 많이 와닿았어.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삶에 힌트를 준
느낌이랄까.
또 노인은 친구와
이런 말을 하기도 해.
두 노인이 한 여자를 사랑했는데,
두 사람은 80이 넘어서도
그 여자와 잤는지
안 잤는지에 대해
옥신각신 해.
그러면서 말하지.
"이게 진짜 비극인게, 들어봐.
진짜 비극이야.
문제는 내가 그녀와 잤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거지."
노인들에게 지나간 과거, 기억은
정말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아득히 멀어진 것이 되어버려.
하지만 나중에 밝혀지지만
그녀와 '잤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는 노인은
사실 그녀의 '손'만 잡아봤는데
그걸 의사에게 몇 번이고
이야기하면서 기억하고, 추억하고,
즐거워했다고 해.
참 귀여운 분들이지?
이렇게 우리에게 기억은
아득히 멀기도 하면서,
지금도 당장 꺼내볼 수 있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이기도 해.
나에게도 기억은
다양한 형태로 다가오곤 해.
어렴풋하기도 하고,
생생하기도 하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추억이 되기도 하고,
트라우마가 되기도 하지.
그런 걸 보면 내게
'기억'은 '카멜레온'같은
다양한 색을 지닌 존재야.
줄리에게 '기억'은 어떤 것이야?
내게도 줄리는
손 잡은 기억만으로도
평생을 행복할 수 있는
그런 기억이었으면 해.
우리 내일도 손잡자 :)
밤이 늦었다. 잘자, 안녕!
브라이스에게
부산 잘 다녀왔어?
좋은 추억 많이 쌓고 온 것 같아
나도 기분이 좋다! :)
두 할아버지 얘기가
재밌으면서도 한편으론
뭔가 짠한 기분이 드네.
그런 모습들을
자연스럽고 위트있게
잘 담아냈을 영화 장면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느낌이야.
기억이라..
어렸을 땐 기억이랑 추억이랑
뭐가 다르지?했는데
크면서 '트라우마'라는 말도
알게 되고,
좋지 않은 기억들이 쌓여가면서
기억이 모두 추억이 되는 건
아니구나..를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 것 같아.
브라이스가 말한
젊을 땐 가깝게 느껴진다는 대사,
왠지 와닿는 표현이야.
하지만 슬픈 느낌은 아니야.
나이가 들면 그 기억이
나에게서 멀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기억 역시 그만큼
같이 나이들어 가는 것일 테니까.
5년 전에는 내가 '별'이어서
별모양 느낌으로
기억이 남아있었는데,
10년 후에는 내가 '하트'가 되어서
기억도 하트모양 느낌으로
변하는 것처럼 말야.
결국 내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느냐에 따라서
과거의 기억들도
그대로 머무르지 않고 변하는거지.
나의 동반자 같은?
내가 바뀌는대로 기억도 바뀔테니.
그래서 그 기억이
오래오래 아름답게
내 곁에 머무르기 위해선
'지금'이 중요한 것 같아.
우리는 매 순간 새로운 기억을
만들고 있지.
브라이스 말처럼 우리가 언제나
사랑하고 아낀다면
손을 잡고 눈빛을 주고 받는
사소한 기억들마저
우리에겐 평생을 행복하게 해줄
우리만의 것이 될거라 믿어.
어떤 일이든 좋은 기억 자체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을 두고두고 아름답게
간직할 수 있는
현재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할지도.
우리는 둘 다 해내자.
좋은 기억, 그리고 이걸 추억으로
많이 바꾸며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