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연하 짝꿍의 열아홉 번째 편지
안녕 줄리!
오늘 신문 기사를 읽다가
꼭 이야기해보고 싶은 주제가 있어서
이렇게 글을 써.
어제 우리는 글쓰기와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지.
오늘은 '읽기의 목적'이 주제야!
조금 더 부제를 달자면,
신문 읽기와 좋은 직장의 상관관계랄까.
오늘 나는 기사에서
신문을 읽는 고교생들이
수능 성적이 더 높고,
300인 이상 대기업과 공기업,
외국계 기업의 정규직, 이른바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비율과
임금 수준이 더 높다는 연구 결과를
읽었어.
신문 구독을 하는 학생의 임금과
비구독 하는 학생의 임금이
10만원 차이 난다는
가감없는 수치를 전달받는데
기분이 참, 참담했어.
나는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신문과 책을 읽는 걸까.
물론 지금 우리는 좋은 일을 하고 싶어서
신문과 책을 쉼 없이 읽고 있지.
하지만, 부디 어른들이 '읽기의 목적'을
단순히 좋은 직장과
많은 돈을 얻는 수준으로
낮추지 않았으면 좋겠어.
하루도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신문과 책을 읽는 것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우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을 넘어서
좋은 일을 할 수 있고,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걸
말하고 싶어.
세상이 팍팍한 건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니까
꿈과 이상이라도 높게 잡았으면 좋겠어.
신문기사를 읽으면서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사는 목적이
수치화된 비율을 위해서라고만 하니까,
마음이 참 어렵더라고.
그래서 이렇게 무거운 편지를
줄리에게 보내.
우리 둘은 매일 앞으로 어떤 길로
나아가고 싶은지,
어떤 사회를 꿈꾸는지 이야기하는
너무나 감사한 관계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도 그런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그런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희망은 가장 어두운 곳에서
피어난다고 하지.
어쩌면 지금이 그런 때인지도 모르겠어.
부디 우리의 내일은
조금더 밝아지길 바라며.
이따 만나 :)
브라이스에게
오늘 그런 신문을 읽었구나.
맞아, 삶이 고단해질수록
우리는 정량화된 수치들로
세상을 얘기하지.
숫자만큼 확실한 건 없으니까.
이만큼 올랐네,하고 안심하고
계속 확인해보고 싶어한달까.
그래서 이젠 뭔가를 배우고,
여행하고, 독서하는 것에서 조차
우리 삶에서 이것들이
어떤 질적인 가치를
가지느냐보다
당장에 어떤 실익이 있을까를
따지게 되는 것 같아.
참 씁쓸한 일이지.
어쩌면 나도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그런 것들을 무의식적으로
셈하고 있을지도 몰라.
그래서 이런 때일수록
브라이스 말처럼
언론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들이 세상을 직접 바꿔줄 순 없지만
그래도 우리들이 일상에서
담고 살아가야할 생각들을
가장 최전선에서 제공해주고,
또 우리가 닮아야할 세상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읽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말자.
당장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설령 읽기의 목적을 호도하더라도
그래도 쉼없이 읽자.
읽고 느끼고 기뻐하고 분노하고
이런 과정에서 나의 앎이
다른 사람들에게 옮겨갈 수 있도록
그렇게 살자.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것처럼,
우리 역시 포기하지 말고
우리의 믿음대로 그렇게 나아가기를.
매우 더디더라도,
반드시 세상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하고 있을 거라고 믿어.
믿어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