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연하 짝꿍의 스물네 번째 편지
브라이스에게
이번 주말엔 온종일 비가 내리는구나.
그동안 메말랐던 땅이
덕분에 조금 촉촉해지겠지?
그래선지 이번 비는 유달리 반갑고
고마운 존재로 느껴지네.
오늘 내가 너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는
어쩌면 이런 가을비가 내리는 날과
어울릴지도 모를, 시 한편이야.
지난 주 토요일에 시험을 끝내고
제형이 공연에 다녀왔잖아.
조곤조곤 감미로운 음악과
소설과 시를 읽어주는 낭독회도
함께 했지.
그때 읽은 것 중 하나인데,
왜인지 모르게 이 시를 읽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구.
시험을 끝내고
아쉬움을 그득 안은 상태라 그랬는지,
아니면 내게 하는 얘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는지,
어쨌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져서
나도 브라이스도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나네.
아무래도 당분간은 두고두고
이 시가 생각날 것 같아
다시 한 번 함께 읽어보려 해.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박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중에서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선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아득하다
나는 이제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드는
당신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
왜 그렇게 눈물이 났던 걸까.
원래 눈물이 많은 편은 아닌데
올해 부쩍 많아진 것 같아.
보통 땐 즐거움과 보람, 뿌듯함이
내 위를 부유하고 있다가도
저 깊은 곳에 숨어있던
불안함, 막막함이 이따금씩 올라와
날 괴롭게해서 그랬는지도 모르지.
아니면
그동안 사소하고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실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겐
엄청난 역사가 될 수 있음을,
그들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지
않은 일은 없음을 깨닫게 되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딱딱한 신문기사를 보다가도
누군가 외롭게 세상과 싸우고 있는
모습들을 접하면
뭔가 그들의 고됨이 전해지는
기분이 들어 눈물이 나고,
이미 세 번이나 본 영화를 다시 보며
예전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장면에서 눈물이 나는 것도
그 때문이겠지.
나는 기본적으로 무언가에
감정을 이입하고
동일시 해보는 생각들이나 행동들이
나쁘다고,
아니 오히려 좋을 때가 많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너무 과해지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것 같기도해서
요즘엔 감성이란 이름으로
마냥 눈물을 흘리는 게
꼭 좋은 건 아니라는 생각도 들어.
뭐 이것도 일종의 강박일 수 있겠지.
사람은 다 저마다의 상황이 있고,
그 때 그 때의 상황에 따라
주변을 보는 관점도
하루 종일 안고 살아가는 생각들도
다 다르니까,
지금 내가 중요하게 보는 것들이
유독 슬픈 일들이라면
그 자체를 굳이 부정해가며
씩씩하려고 할 필욘 없으니까.
어쨌든 시를 읽으며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는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위로를 받았나봐.
그래도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이런 다독임이랄까.
그리고 쉽지 않지만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하는 순간들이
앞으로 더욱 많아지겠지.
시에 나온 것처럼
좋지 않은 세상에서
나의 슬픔, 너의 슬픔,
우리 모두의 슬픔을
서로 생각하고 다독여주며
때론 힘들어도
같이 의지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지금 라디오에선
머라이어 캐리의 캐롤송이 나오는데
기분이 참 이상하네.
차갑지만 따뜻하고
따뜻하지만 차가운 기운이 느껴져.
크리스마스에 원하는 건 너뿐이라는
노래 제목처럼
서로의 안녕을 물으며
슬픈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줄리에게,
고마워. 시도, 이야기도.
아직은 어린 내가
너와 함께 해서 참
행복하고 즐겁고,
더 깊어져서 감사해. 고마워 :)
오늘의 이야기는
감동이 덜해지기 전에
그대로 올리고 싶다.
슬픔도 자랑이 될 수 있어.
그리고 난 너의 눈동자의
맺음새가 참 좋아.
시집에 써줬던 말처럼
그런 우리 사이가 되길 바라며.
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