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연하 짝꿍의 서른아홉 번째 이야기
브라이스에게
안녕! 운동 잘 다녀왔어?
바쁜 와중에도 꾸준히 운동을 하는
너가 참 대단하게 느껴져.
(몸무게는 그대로라지만... 헤헤)
오늘 나는 오랜만에 반가운 분을 뵈었지!
작년 초에 네팔 여행 중에 만났던
중년의 아저씨.
물론 난 '선생님'이라고 불렀지만
사실 그냥 평범한 아저씨,
우리 아빠 같던 분이었어.
선생님은 30년이 넘게
'자기 자신'보단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일해온
여느 평범한 가장과 같은 분이셨는데
퇴직을 1년여 앞두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드셨대.
"떠나자. 혼자서 여행을 가보자"
그래서 정말 덜컥 혼자 여행을 오셨고,
히말라야를 올라 갔다 오고
난생처음 배낭여행을 다니면서
정말 몇 십년 만에,
어쩌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라는 존재를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고 하셨어.
그때 얼마나 환하게 웃으면서
말씀하셨는지
순간 '소년'같다고 느꼈을 정도였어.
짧았지만 네팔에서 지내는 며칠동안
선생님과 얘길 나누며
참 맑고 좋은 분이다,라고 느꼈는데
최근에 다시 연락이 닿아
오늘 드디어 만나게 된 거야.
네팔에선 선생님도 나도 엄청
꾀죄죄하게 다녔던 터라,
사실 오늘 순간 서로 몇 초 동안
알아보지 못하기도 했어. (ㅎㅎ)
얼마 전에 퇴직을 하셨다는
선생님은 여전히 밝으셨고,
환갑이 넘으신 나이에도
특유의 순수함과 열정을
간직하고 계셨어.
그러면서 오늘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
자기는 그 때 그 여행 이후로
모든 게 달라졌는데,
한국에 돌아와서 보니
주변 사람들은 선생님을 그냥
'환갑이 넘은, 퇴직한 아저씨'로
이전과 똑같이 뿐이었다고.
마치 이젠 아무런 가능성도 없는,
다 끝나버린 사람처럼 말야.
선생님은 처음엔 그게 억울했대.
마음만큼은 절대 늙지 않았는데,
나이 그게 뭐라고 자꾸 나를
늙은이 취급 하냐면서.
근데 또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더래.
'내가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아닐까'
나이 듦 그 자체도 자연스러운 일인데
선생님 스스로 너무 부정하는 게
아닐까하고 말야.
사회에서 보는 시선과
선생님 자신이 느끼는 마음이
서로 너무 달라서 충돌하고 계신 느낌.
그래서 나는
"선생님, 그게 늙지 않았다는 증거에요"
라고 말씀드렸고,
선생님은 멋쩍게 웃으시더라고.
그냥 그런 대화들이 참 좋았어.
내가 모르는 세상.
알고 싶어도 절대 알 수 없는 세계.
나보다 30년을 더 산 어른이 보는
자기 자신과 가족, 그리고 미래.
끝나버린 기분일까.
여전히 그때도 지금의 나처럼
두근두근 미래를 그리고 있을까.
나처럼 아직 '한창 때'일 젊은이들을
바라보는 기분은 어떨까.
그런 온갖 생각들이 들면서
단 이틀 밖에 함께하지 않은
여행지에서의 인연이 이렇게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하고 든든하고 좋았어.
그리고 헤어질 때 이제 서로
'친구'하자고 약속했어.
서로에게 가장 나이 많은 친구와
가장 나이가 적은 친구!
자주 연락하거나 보진 못하겠지만,
살면서 만날 수 있는 이런저런
인연 속에서 생긴 특별한 친구.
심지어 서로의 꿈을 터놓는.
참 멋진 만남이란 생각이 들었어.
요즘 일에만 치여서,
그리고 또래 사람들만 만나면서
나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했던
마음 속의 갈증을
오랜만에 해소한 느낌이야.
이거지, 이거. 그치?
브라이스는 내가 무슨 말하는지
알거라고 믿어.
오랜만에 긴 편지였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다!
줄리, 반가워!
오늘도 영감 가득한 이야기 고맙다 :)
좋은 분을 만나
친구까지 되었다니
다시 친구 얘길 안 할 수 없었구나.
줄리가 오늘 만난
네팔 선생님은 정말
글을 통해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정말 순수하게 사신 분 같아.
오히려 사회의 시선과 자신의 감정이
여전히 충돌하신다는 말씀에서
마음이 깨어있으신,
청춘을 살고 계시구나 싶기도 하고!
또 줄리가 선생님께
'친구하자'고 멋진 제안을 했다는 것도
참 듣기 좋았어.
서른해의 세월을 넘어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보면서
'친구'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짚어봤어.
친구를 한자어로 풀면
親舊.
친할 친인거는 우리가 잘 알고 있고,
구자는 무슨 뜻인지 잘 모를 때가 많지.
찾아보니 구에는
옛, 오랜이라는 의미가 있더라구!
그래서 친구를 한자로 푼 의미는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이 되더라.
그런데 나는 오늘 줄리가 사귄
선생님이자 친구인 그 분을 통해
친구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했어.
'오래도록 친할 수 있는 사람'
나는 줄리의 이야기를 듣고
'오랜'의 의미가 과거형이 아닌
미래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줄리가 오늘 사귄 친구는 앞으로도
오래오래 마음에 좋게 담아둘
그런 분인 것 같아.
지금까진 두 번, 이틀하고도 하루를
더 본 것뿐이지만
앞으로의 인연이
더 친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사이가 된 거지!
난 우리 사이도 그리 되었으면 좋겠어.
이미 우린 너무 좋은,
가깝게 친하게 오래 사귄 친구지만
앞으로 더 오래도록 친한 친구가 되자는 거지!
더불어 우리 주변을 둘러싼
수많은 친구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고.
앞으로도
오늘 줄리가 친구와
꿈을 나누고 행복을 누리는 일이
우리 자신과 주변 곳곳에서
일어나길 바라!
오늘도 수고 많았어, 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