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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이스와 줄리 Jan 28. 2017

살리고 죽이는 '말'

'말'을 듣고 나누다 문득

말에 둘러싸여 산다. 일 때문에, 개인적 만남 때문일 때도 있다. 이러저러한 상황에서 많은 말을 듣고, 흘리기도 하고,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따금 마음 속 깊숙하게 남는 말들이 있다. 그런 말들은 종종 나의 언어로 치환돼 누군가에게 다시 전해지기도 한다. 최근 내 머릿속에서 문득 스쳐가는 문장들이 있었다.


우선 기분이 좋았던 말. 우연히 선배와 둘이서 점심을 한 적이 있다. 선배는 달큰하고 짭조롬한 고기반찬 중심의 음식을 내게 건네며 이런 이야기를 해줬다.


"(우리) 안에선 겸손하지만, 밖에선 당당하게 기 죽지 말고 해라"


모든 것이 새롭다보니 기죽었던 내게, 이미 알고 있는 정답으로 다시 확신을 심어줬다. 은근히 전한 문장이었지만 내 마음 속에 남았다.


며칠 뒤에는 아빠에게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너의 영역에선 힘주어 말해도 되지만,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들에겐 그러지마라"


걱정 섞인 당부였다. 그런데 괜스레 인정받은 기분이 들었다. 오히려 기가 살면서 동시에 다짐도 했다. 그래, 겸손하면서 당당하자. 어렵겠지만 노력하자.


반면 기분이 좋지 않았던 말.


합격을 한 뒤로 나와 같은 업계에서 일하길 꿈꾸는 후배를 만난 적 있다. 내가 감히 이들에게 조언하는 것도 웃기지만 그래도 맛있는 것이라도 사주는 것이 도리라 생각했 움이 되고 싶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후배가 전에 다른 취업자에게 들었다는 말을 들려줬다.


"그래도 너가 행복한거야. 나는 요새 집에도 잘 못 들어가고, 힘들어…"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그 분이 배려가 없다 생각해 그저 후배를 위로했다. 그런데 문장을 곱씹을수록 별로였다. 같은 업계를 꿈꾸는 사람, 또 그것이 하고 싶어 어려움을 견디며 노력하는 사람에게 그런 말을 굳이 해야했을까? 더 곱씹어보니 그 말은 의도했기보다 자기 상황에 도취된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마음 속에서 처음엔 비난이 일었다. 이어서는 나의 태도를 돌아보게 됐다.


교만과 겸손은 한끗 차이다. 내가 뱉어낸 말 한 마디로 인해 상대방의 기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 나 역시 위에 쓴 "너가 행복한거야"와 같은 실언을 배려의 끈을 놓치는 순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것을 쥐면 쥘수록 더욱 자기 마음을 벼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어쩌면 이런 글을 남기는 것조차 치기어린 짓일지 모른다. 먼 미래에 이 글을 읽었을 때 "무슨 이런 글을"하며 부끄러워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차라리 그런 부끄러움을 품는 게 나을 것 같다. "뭐하러 이런 글을 썼나"고 말하는 건 이미 잘하고 있었다는 것이니까. 외려 "아, 내가 이런 다짐을 했었는데 (미래의 내 모습을 보고) 부끄럽다"는 반응만은 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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