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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이스와 줄리 Jan 28. 2017

한 인생이 스러져버렸다

나 같은 헛똑똑이들을 깨닫게 한 '나, 다니엘 블레이크'

예전에 이런 철없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누군가는 복지 사각지대에 있어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다닌다. 그런데 대체 그런 사람은 어디에 있는거지? 거리를 다니다보면 모두가 행복해보이는 데?" 


지극히 철이 없다 못해 혼나도 무방한 생각이었다. 복지 사각지대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누군가는 지금도 신음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그들에게 손을 내밀지 못했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나와 같은 헛똑똑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라 생각한다. 


켄 로치 감독의 이 영화는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정부의 잘못된 복지제도를 드라마처럼, 때론 다큐처럼 풀어냈다는 평을 들으며 논객들과 관람객의 극찬을 받았다. 이 글에선 영화의 스토리를 깊게 풀어내고 싶지 않다. 그보다 보는 이의 눈가를 떨리게 만든 장면 하나를 언급하고 싶다. 감정을 흔드는 배경음악도 눈에 띄는 효과도 없었지만 장면의 힘은 어마무시했다. 


영화는 거의 모든 장면에서 절차주의에 빠진 복지제도로 인해 고생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중에 두 아이를 혼자서 키우는 엄마, 케이티의 모습. 낯선 지리에 길을 잃어 그녀는 복지 수당 면접날 지각했다. 그 때문에 케이티는 수당 대상자에서 제재 대상자가 됐다. 며칠을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못한 채 아이들 음식만 겨우 챙기던 케이티. 주인공 다니엘의 도움으로 식료품 보급소에 가게 된 그녀는 음식을 담다 참지 못하고 통조림을 뜯어서 입에 털어넣고 만다. 놀래서 다가온 봉사자를 보고 정신이 든 케이티. 이내 눈물을 흘리며 죄송하다는 말을 연신 내뱉는다. 너무나 당황스럽지만, 너무나 개연성이 뚜렷한 상황을 보면서 충격에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과연 저 상황은 영화 속에만 벌어지는 것인가. 내가 눈길 두지 않은 어느 곳에서 지금도 벌어지는 것 아닐까. 


이후에도 비슷한 감정과 상황은 다른 장면으로 반복된다.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까지. 슬픔과 분노는 함께 다가온다.  마지막에 케이티는 다니엘의 유언이 돼버린 마지막 글을 대신 읽는다. 그 내용 중 일부. "나는 개가 아니고 인간이다. 나는 인간적 존중을 받을 수 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머릿속에서 떠오른 것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소리없이 괴로워하던 사람들. 몇 년 전 수면 위로 떠올랐던 '송파세모녀 사건'. 그런 비극을 막기 위해 '송파세모녀법'도 마련됐다는 뉴스를 봤다. 최근에는 어려운 이들을 위해 건강보험료 제도도 개편했다고 한다. 동시에 궁금했다. 여전히 우리가 눈길 두지 않은 곳에선 절차주의로 인해 질병, 구직, 기본수당 모두 받지 못한 채 괴로워하는 이들이 없는지. 물론 지금 당장 내가 세상을 한 번에 바꿀 순 없다. 그러나 책임감을 느끼고, 또 느낀다. 그리고 노력해야겠다,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이런 고민이 점점 깊어지다보면 결국 '생각과 행동'의 중요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영화를 보기 전 우연히 엄마가 이런 이야기를 전했다. 그 말도 왠지 다시 떠오른다. "모두가 고민하고, 참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많은 사회다. 그래서 정말 지도자를 잘 뽑고, 올바른 생각을 하는 정치인들이 필요하다." 더없이 엄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설날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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