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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이스와 줄리 Jul 16. 2017

'내 사랑'보다 'Maudie'인 이유

'로맨스'라기보다 '인생'을 그린 영화, '내 사랑'

*** 영화 '내 사랑'의 결말을 포함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영화는 아름답다. 그러나 실제 인생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았을 거다. 


영화 '내 사랑'은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다. 원제는 'Maudie'다. 주인공 모드 루이스의 애칭일 게다. 한국에서 개봉하면서 감성적인 제목과 포스터를 얻은 채 아름다운 '로맨스' 영화로 둔갑했다. 


영화의 장르는 로맨스가 맞다. 신체적, 정서적으로 결핍을 느끼는 남녀가 만나 서서히 사랑에 빠지게 되고 평생을 '예술가의 집'에서 사는 과정을 그렸다. 배우들의 아름다운 눈빛과 이들의 감정선은 보는 이들을 영화로 빠져들게 한다. 


그러나 마지막 엔딩 크레디트에서 실제 영화의 기반이 된 모드의 그림들을 보고 있자니, 과연 이것이 로맨스 영화이기만 했을까 싶다. 어쩌면 장면 속에 나타나지 않은 행간을 통해 인생의 지난한 과정을 되짚게 하는 영화였을 지도. 


관절염을 앓아 절뚝이며 걸을 수밖에 없는 여성 '모드'가 문맹의 거친 남성 '에버렛'을 찾아가 가정부 노릇을 시작한 된 계기는 순전히 '독립' 때문이었다. 모드는 심신이 미약해 가정에서도 방치됐다. 이를 벗어나고 싶었다. 


이에 화와 욕을 달고 사는 거친 남성의 가정부 채용 공고를 불쑥 챙겨 든다. 그는 독립을 위해 한 남성의 수발을 들길 자처한다. 


두 사람의 동거는 거칠게 시작됐다. 에버렛은 폭력적이었다. 모드는 보기에 약해 보였지만 끈기가 있었다. 끝내 에버렛의 비위를 맞춘다. 또 모드는 '그림 그리기'에 대한 욕구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에버렛의 "알아서 집을 잘 바꿔놓으라"는 지시에 집안 곳곳에 자신의 그림흔적을 남긴다. 


우연을 계기로 모드는 자신의 그림을 하나둘씩 팔 수 있게 된다. 그림이 알려지는 과정을 거쳐 어느 순간 에버렛은 모드의 조력자가 된다. 


둘은 결혼도 했다. 모드가 숨을 거둘 때까지 두 사람은 투닥거리며 자신들의 작은 집을 '예술의 집'으로 만든다. '결핍'으로 시작된 이들의 삶은 '예술'로 끝난다. 


다수의 관람객들이 눈물을 쏟은 대목은 모드의 죽음이 가까워졌을 때였다. 남편을 두고 먼저 떠날 것을 직감한 모드는 에버렛에게 "(집을 지킬) 개를 더 키우라"고 한다. 에버렛은 "당신이 있는데 왜"라고 답한다. 


이후 모드가 숨을 떠나는 순간 에버렛은 회한의 표정을 지으며 "왜 당신을 부족하다고 여겼을까"라고 말한다. 모드는 "난 사랑받았어"라고 짧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떠난다. 


이들의 마지막은 슬프기도 했지만 아름다웠다. 사랑받지 못했던 한 여성은 한 남자에게 사랑받았다고 고백하고 떠날 수 있었다. 


영화의 아름다운 장면을 걷어내고 이들의 실제 삶은 어떠했을까 상상해봤다. 물론 영화 속에서도 두 사람의 위기는 종종 드러났다. 하지만 실제 삶은 더욱 어렵지 않았을까. 남편의 마지막 고백은 끝내 회한이었다. 아내는 사랑받았다고 말했지만, 우리가 보지 못한 삶의 행간에는 더욱 어려운 장면들이 있었을 것이다. 


남편은 아내의 유명세를 질투했다. 아내의 수발을 들게 된 자신을 견디기 힘들어하기도 했다. 이내 후회하고 아내의 마음을 보듬기도 했지만, 이미 두 사람의 머리가 하얗게 센 뒤였다. 


영화에선 이들의 삶이 많이 생략됐다. 이들은 순식간에 상황에 적응했고, 순식간에 늙었다. 모드는 몸이 약했는데도 불구하고 너끈하게 집안일들을 해냈다. 거기에 왕성히 그림을 창작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기까지 정말 많은 세월이 걸리지 않았을까. 에버렛은 모드를 때린 적도 있었고, 그를 성적으로 무시하기도 했다. 과연 둘은 그 갈등을 어떻게 봉합했을까. 이런 아픈 장면들은 쉽게 알려지지도 않았고, 감독도 보는 이의 상상에 맡겨두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원제인 'Maudie'에 더 정이 간다. 한국 버전의 제목 '내 사랑'은 남편 에버렛의 관점에서 '내 사랑'인 아내 모드를 보는 것이 될 게다. 원제는 '모드'로 불리던 아내가 남편에게 '모우디'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남편의 사랑이 담겨 있다는 관점은 비슷하다. 하지만 아내의 이름이 '내 사랑'으로 둔갑했다는 점은 아쉽다. 영화의 장르를 로맨스로만 보고 싶지 않은 이유와 비슷하다. 이 영화는 늘 이름을 딱딱히 부르던 남편이 어느 순간 애칭으로 부르게 된, 한 여성이 지난했던, 어려웠던, 끝내 성취를 해낸 그런 인생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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