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뒤집히고 뒤집혀 '해피엔딩'에 이르기까지…영화 <플립>
*** 영화 '플립'의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있습니다.
Flipped(플립, 뒤집히다). 영어사전에서는 주로 플립의 의미를 '어떤 것이 확 뒤집히는 것'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영화 <플립>에서 내가 들은 '플립'이라는 단어는 조금 달랐다.
이 영화는 한 마디로 '결핍했던 한 아이의 반성문'이다. 반대편 시선에서 보면 '충족했던 한 아이의 고생기'라고도 볼 수 있겠다. 여기서 결핍한 아이는 남자주인공 '브라이스'이고, 충족한 아이는 '줄리'이다.
'플립'이라는 단어는 영화 초반부 줄리의 목소리로 등장한다. 브라이스가 줄리의 동네로 이사오던 날, 줄리는 브라이스를 보고 '플립'(첫 눈에 반)한다. 브라이스의 그윽한 눈에 빠져들어 그가 이사온 순간부터 그에게 온갖 애정을 쏟는다. 마치 그가 살아오면서 받은 모든 애정을 전해주듯 말이다.
브라이스의 반응은 달랐다. 초면부터 들이대는 줄리가 싫었다. 줄리를 미워했고 상처줬다. 그러나 줄리는 아랑곳 않았다. 미움마저도 애정으로 받아들였다(이후엔 줄리마저도 지쳐버리지만).
영화는 같은 상황을 겪는 두 아이의 시선을 번갈아 보여준다. 영화 초반부, 두 아이의 시각은 정반대였다. 하지만 영화 속 세월이 흐르면서 둘은 접점을 만들어간다. 그 과정 속에서 둘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타이밍이 어긋나기도 하고, 원치 않은 오해가 생기기도 했다.
브라이스는 겁쟁이였다. 초반에 줄리의 호의를 거절하는 과정에서, 중후반부 줄리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발견한 때도 쓸 데 없는 '가오'를 세우거나 주변 사람의 시선을 두려워 해 마음을 숨겼다. 그럴 때마다 줄리는 실망하고 또 실망한다.
속마음은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브라이스와 줄리의 어긋난 상황들이 보여주는 깨달음이다. 영화의 엔딩에서 두 사람이 궁극적 화해에 이르기 직전까지 말이다.
영화가 브라이스의 반성문이라고 볼 수 있는 이유다. 사실 브라이스만의 잘못은 아니다. 영화는 브라이스와 줄리 주변 인물들의 감정과 묘사를 많이 생략했다. 특히 브라이스의 아버지는 '결핍'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다. 브라이스가 더욱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던 근거일 수 있다.
추측건대 브라이스의 아버지는 과거에 자유분방한 사람이었으나 어떤 계기로 이를 포기한 사람일 것이다. (색소폰 연주자였지만 나이가 들면서 음악하는 사람들을 비난한 것을 보면) 그렇기에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채 누군가를 비꼬지 않으면 성에 차지 않는 비뚤어진 사람이 됐다. 아들도 아버지를 똑 닮아버렸다. 줄리를 좋아하면서도 그를 욕하는 친구에게 화도 못 내는 모습에서 말이다.
반면 줄리는 일찍이 마음으로 '충족'된 삶을 살았다. 너무나도 좋은 부모님 덕에 인생의 이치를 미리 들었다. 그의 아버지는 브라이스의 눈이 좋다고 말하는 줄리에게 "부분이 아름다운 사람보다, 부분이 모여서 전체가 아름다운 사람이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 말을 온전히 받아들은 줄리는 브라이스의 전체를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 됐다.
다행히도(?) 브라이스는 줄리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확인한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이 '플립'(완전한 뒤집히기로) 했다고 고백한다. 영화 시작한 지 약 2분만에 줄리의 입에서 나온 플립이, 영화 끝나기 5분 전쯤 브라이스의 입에서도 터져나온 것이다. 결핍했던 한 아이가 충족했던 한 아이의 사랑을 받고 받은 끝에 그의 반성문을 완성한 순간이었다.
영화의 결말은 브라이스가 줄리에게 소중한 뭔가를 선물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브라이스를 제외하고 줄리 인생에 있어 처음으로 가장 소중했던 존재는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했던 '플라타너스 나무'였다. 나무 타기를 좋아하던 줄리가 플라타너스 나무를 잃었을 때 줄리는 브라이스에게 도움을 절실히 요청했다. 브라이스는 마음에 걸렸지만 돕지 않았다.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나, 줄리를 극구 밀어냈던 브라이스가 작은 플라타너스 묘목을 줄리에게 선사하는 것으로 둘의 관계는 새롭게 시작된다. 단 한 번도 제대로 대화해본 적 없이 사랑한 남녀가 진짜 사랑을 시작한 것이다. 그 과정에는 두 사람의 두 번의 '플립'이 있었다.
(사진 출처 : 영화 '플립'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