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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이스와 줄리 May 23. 2017

아무말대잔치

아무말이라도 늘어놓고싶어 문득

20170523 20:20 부산->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


오랜만에 내 개인 생각을 담은 글을 쓴다. 그동안 참 많은 글을 써냈다. 하지만 나의 생각보단 내가 보고들은 것들을 담아냈다.


지난 몇 달은 돌이켜보면 신기하고 재밌었다. 유수의 정치인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귀찮게도 해보고, 말도 걸어봤다. 물론 주로 내 역할은 그들의 말을 최대한 그대로 받아적은 뒤 편집하는 것이었다. (왠지 같은 얘기를 몇달 전에도 했던 느낌이 든다)


그런데 어느순간부턴 '내 이야기'를 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아니 원래 몰랐는지도 모르겠다. 현상, 상황, 팩트는 그대로 표현하면서 내가 생각한 주제는 은근히 담아내려다보니 내 풍성한 생각들은 요새 부쩍 지워진 상태다.


지금도 아무 문장이나 늘어놓으며 '아무말대잔치'를 벌이고 있지만 어떻게 하면 생각을 흥미롭게 풀어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아무 문장으로 분량은 너끈히 늘어낼 자신은 있다.


새로운 사실 하나 없는 문장들이지만 가끔 이런 걸 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단어를 명확하게 집어내지 못하고 중구난방으로 길~~게 말하는 몇몇 정치인들을 비판한 적 있다. 오늘 내 글도 그런 대열에 들어가는 셈이다.

 

멋진 글을 쓰고 싶다. 숨막히게 빨아들이는 문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면 읽는 이가 경악할만한 사실, 상상들을 풀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능력은 내게 별로 없는 것 같다. 묵묵히 성실하게 문장을 만들어낼 줄은 알아도, 뭔가를 뾰족하게 드러내는 건 아직인 것 같다. 연필을 깎아나가듯, 내 문장을 다듬어가는 수밖에.


상념들은 이쯤에서 접어두고, 사실들을 늘어보려고 한다. 글로 밥을 벌어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이 된 지 어느덧 6개월차에 접어들었다. 막내의 신분은 여전하지만 꽤 사람처럼 일하고 요령도 피울 줄 알게 됐다.


요즘도 가장 자주 연락하는 사람은 여자친구다. 여가 시간에 가장 많은 시간을 내어 보고 싶은 사람도 여자친구다. 그만큼 의견 충돌을 빚기도 하고, 내가 징징대는 대상도 여자친구다. 희노애락을 함께 누릴 수 있어 좋다.


솔직히 요샌 내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모르고 산다. 이 말을 하고 싶어서 이렇게 빙빙 돌렸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변한 것은 예전에는 무작정 집에 들어가 잠만 자고 싶었는데, 대선이 끝난 이후 집에서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졌다.


음악, 만화책, 드라마, 운동, 친구들과의 만남, 가족과의 대화, 신앙생활, 언어 공부, 미래 설계 등등등 슬슬 다른 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 그래서 이렇게 집에 와서 아쉬워하며 잠드는 나를 보고 이제 내가 '직장인'이 돼가는구나 싶었다. 일을 열심히 하면서 일하기 싫어하고, 월요일인데 수요일인가 싶고, 매일매일 괴로워하며 일어나면서도 꾸역꾸역 일어나는, 그런 와중에도 퇴근 후엔 새로움에 대한 생각이 되살아나는, 뭐 그런 것들 말이다.


앞 문단을 채 마무리하지 못한 채 비행기가 착륙했다. 한 25분만이었던 것 같다.


이 밖에도 늘어놓고 싶은 아무말이 많다. 사실 아무말 아닌 아무말도 있다. 오늘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도식이 있던 날이었다. 업무 차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봉하마을을 찾았다. 노 전 대통령의 임기 시절, 난 정치에 무지했다. 당시 내 위의 학번이 내신-수능-논술이라는 죽음의 트라이앵글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분노가 가득찼다는 정도만 기억한다. 그런 뒤에 세상을 조금 알게 되고, 노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조금씩 듣게 됐다.


여전히 나는 그를 잘 알지 못하지만, 인생 첫 방문한 봉하마을, 그가 세상을 떠난 날을 기억하려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그 감정에 조금이나마 함께할 수 있었다. 뭉클하기도 하고, 노 전 대통령의 육성과 그를 이어가려는 문 대통령의 인사에 마음이 따끔했던 것도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다만 이 감정을 다 풀어내기엔 아직 부족하다. 그 감정에 100분의 3도 모른다. 그나마 이 자리에 함께했다는 데 감사하다. 그리고 하나 더, 아직까지 소중한 사람을 잃은 바 없는 내가 누군가를 잃었을 때, 어떤 기분이 들까. 두렵기도 하고 무서웠다. 아마 이런 자리들을 통해 조금씩 배워나가는 듯 하다.


이것 말고도 요즘 간직하고 있는 '아무 생각'들이 참 많지만 오늘은 이쯤에서 '아무말대잔치'를 마무리하려 한다. 혹시라도 이 아무말을 끝까지 읽었더라면 인내심이 굉장하신 거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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