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연하 커플의 마흔아홉 번째 편지
줄리에게
안녕? 얼마 만인지 몰라.
브런치에서 줄리에게 편지를 쓴 지가.
먼저, 반가워. 이 글이 올라가면
우리는 오십 번째 글을 채우게 돼.
편지로는 마흔아홉 번째이지.
오십 번째 편지는 줄리가
먼저 보내주길 바라며ㅎㅎ
요즘 나는 '견뎌내다'라는 동사를 종종 생각해.
물론 내가 사회생활에
본격적으로 첫 발을 떼면서
견뎌내는 삶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런저런 상황에 흔들리는 나를 보며
"견뎌야지..."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지.
'견뎌내다'는 동사에는 뭔가 힘이 느껴져.
그냥 흘려보내는 것도 아니고,
기다리는 것도 아닌
견뎌내다는 거잖아.
엊그제 우리는 참 좋은 말씀을 드렸지.
"마음이 너무 약해졌을 땐
섣불리 판단하지 말라"고.
"그저 견뎌냈다가 다시
상태가 좋아졌을 때 생각해보라"고.
그 말을 들으며
기꺼이 끄덕이던 줄리의 얼굴이 기억나.
(심지어 필기까지 했지)
아무튼 나 역시 그 문장이
내 머릿속에서, 마음속에서
꽤 오랫동안 맴돌더라고.
"그래, 견뎌내는거지.
섣불리 판단하기보다 견뎌내보는거지..."
하고 말야.
자주 내가 흔들리고 약한 소리,
부정적인 소리를 할 때마다 줄리가
미간에 잔뜩 힘을 주고 말하지.
(미안해 미간에 힘주게 해서)
"그렇게 약한 소리하면 앞으로
더 힘든 일이 수두룩 한데 잘
견뎌낼 수 있겠어?"라고.
너무 맞는 말이라 사실
할 말이 없어.
그래서 실없는 소리로
말을 돌려보려하면
줄리는 이것마저도 알아채고
나를 혼구녕내지.
그런데 요즘 일련의 상황들을
곳곳에서 보면서
"견뎌내다"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하고 있어,
세파를, 풍파를 견뎌낸
나무가 단단해지듯.
우리의 삶도,
또 나의 존재도
어딘가에 깊이깊이
뿌리내려가고 있는 것 아닐까.
오늘 이런저런 감상에 젖어
이야기가 길었다.
줄리의 생각이 궁금해.
오랜만에 보내는 나의 편지에
어떤 이야길 해줄지.
그럼 안녕!
브라이스에게
으하하하 우리 진짜 오랜만에 편지 주고 받네!!
너무 오랜만이라 이렇게 쓰는게 어색할 정도 :P
몇 달 만에 다시 꺼낸
편지의 주제는 '견뎌냄'이구나.
'견뎌내다'라...
사실 나도 브라이스랑 같은 생각이야.
뭔가를 '견뎌낸다'라고 하면
마냥 멍하니 있는 게 아니라
단단한 의지로 힘든 시간조차도
자신만의 것으로 만드는 느낌이니까.
그런데 가끔은 굳이
견뎌야만 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해.
내가 지금까지 너한테 한 잔소리의 8할이
의지가 약하다, 견뎌내라... 이런 거였는데
갑자기 반대로 얘기하고 있네 그치?ㅎㅎ
지금 내 상황이 일을 쉬고 있기 때문인걸까.
그런지도 모르지.
요즘 나는 사실 무기력증에 빠졌거든. 호호...
스스로 잘 견뎌내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견뎌내고 싶지 않아졌어. 요즘 좀 그래.
그냥 이대로 의미 없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이전에 힘든 일이 생겼을 땐
너무 힘들었지만 한편으론 다른 쪽으로
의미가있다고 느끼는 부분들이 있어서
잘 견뎌낼 수 있었거든.
근데 요즘엔 말 그대로 아무 생각이 없어.
열심히 살고 싶지도, 무언가를 하고 싶은게 있지도,
특별히 지금 시간들이 의미 있는지도 모르겠어.
어쩌면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 요리조리
몇 년 동안 달려오다가 그게 뚝 끊기니까
더 망연자실한 느낌이 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름 준비하는 게 있긴 하지만
사실 너무 재미가 없어...... 허허허허허
무엇보다 예전엔 내가 못견뎌내는 거 같으면
좀 초조했었거든?
내가 부족하고 뭔가 의지가 약한 사람같고
그게 못나보이고.
근데 지금은 그런 생각도 안들어.
뭐 어때서 살다보면 이런 날, 저런 날도 있지!
하면서 말야.
그치만 난 알지.
내가 다시 일어날 의지를 가져야만
또다른 시작을 할 수 있고
시작을 해야만 다시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거.
내가 지금 제대로 견뎌내고 있지 못해서
견뎌낸다는 것에 대해선
오늘 딱히 뭐라 할 수 있는 말이 없네.
다만 견뎌내는 시간도,
굳이 견뎌내지 않아도 되는 좋은 시간들도
우리 인생의 일부니까
덤덤히 받아들이고
잘 흘려보내야겠다는 생각은 든다.
잘 견뎌내고 있는 너에게
더 힘이 되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결국은
내일의 너, 1년 뒤의 너, 10년 뒤의 너를
만드는 과정일테니
너무 힘들이지 말고 조금은 숨도 쉬면서
너의 시간들을 너의 것으로 만들 수 있길.
내가 요즘 빠져 있는
드라마 <품위있는 그녀>에서
어제 나온 독백을 덧붙이며
오랜만의 편지를 마무리할게.
나에게 인생이 어땠냐고 묻는다면
인생의 절반은 슬픔이라고 말하겠다.
희노애락.
압도적으로 노와 애로 점절된 게 인생이었다고.
인생의 한 부분,
그 편린들이 퍼즐처럼 맞춰져 하나의 그림이 된다.
인생은 대체로 미완성으로 끝나는 걸작을 바라는 졸작이지만
때론 졸작이 걸작으로 탈바꿈하는 지독한 행운을 가진 사람도 있다.
ps : 마지막 문장은 드라마 스토리랑 맞는 내용이라
우리의 편지 흐름과는 좀 안맞지만....
참 와닿는 말이야.
'인생은 대체로 미완성으로 끝나는 걸작을 바라는 졸작이다'
인생은 그런 것. 항상 좋을 수도 항상 의미 있을 수도
모든 순간이 내가 주인공일 수도 없는 것.
그래도 또 반대로 좋은 순간도, 의미 있는 순간도 있는 거니까.
그걸 잘 기억하고 그걸 잘 모으는 사람이 되자.
난 그게 제일 중요한 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