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랜드>
마지막 10분의 환상 같은 꿈은 모든 클리셰로 점철된 앞 장면들을 모두 살려낸다. 러닝타임 마지막 10분은 관객에게 주고자 하는, 그리고 선사할 수 있는 모든 감정을 담았다. 게다가 나는 '그때 내가 그랬으면 좋았을걸'이라는 말이 주는 아련함을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호불호가 갈린다는 평을 떠나 너무나도 큰 기대를 하고 봤던 영화였다. 혹시 안게 될 실망감을 생각하면 계속 안 본 영화로 남겨둘까도 했다. 영화는 끊임없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고 그 어딘가에서 만나 사랑하고 고통을 겪는 두 사람의 시간을 그린다. 말미에는 각자의 위치에서 성공한 후 마법처럼 우연히 재회해 그야말로 '영화'같은 눈빛을 주고받으며 끝난다. 사실 영화는 끊임없이 현실과 꿈 사이의 고뇌에 대해 설명하려 하지만 이 설명이라 함은 사실 그 개념이 가진 무게를 깊게 담아내는 데에는 실로 부족했다. 되려 두 사람 간의 갈등을 엮는 도구로 쓰인다는 느낌이 강했다.
두 사람이 말다툼을 하는 장면에서 "불안정한 내 모습을 보며 너도 똑같은 자신의 처지에 위안을 얻으려고 했던 것이 아니냐"는 대사가 현실적이어서 참 좋았다. 세바스찬이 연인의 통화내용을 듣자마자 그렇게 부정해 왔던 틀에 자신을 욱여넣기 시작했던 장면도. 결국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에서 조금은 벗어난 시작이었지만 꿈을 이룬 남자와 포기하려던 순간에 만난 기회로 자신이 시작부터 매달렸던 꿈을 끝내 이룬 여자의 결말. 주인공 둘 모두가 이상을 이뤘다는 결말 자체는 사실 비현실적이고 영화적인 향기가 가득한 이야기다. 두 사람의 사랑까지 해피엔딩이었다면 완벽한 동화였겠지만. 이 동화는 두 사람의 마지막 재회의 순간 찰나로 스쳐 지나가버린 후 현실로 복귀한 채 끝을 맺는다. 두 사람의 행복한 재회를 기다리던 관객에게 여운의 그늘을 남기며.
그럼에도 그 모든 부족함을 채워주는 건 함께하는 이가 그 사람이었기에 이뤄냈던 꿈이라는 것. 꿈을 꾸는 내 옆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또는 날 믿어주는 단 한 사람이라도 그 길에 함께한다면 그 꿈이 얼마나 고되고 비현실적인가의 문제는 의미가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라라랜드>는 실현되든 아니든 꿈을 꾸는 그 순간을 사랑하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연인, 또는 함께하는 소중한 이들과 함께 꿀 수 있는 꿈이라면, 그 안에 계속 잠겨있어도 좋을 듯싶다. 그들이 혼자였다면 결코 이어가지 못했을 꿈. 이 영화가 관객에게 선사하는 또 다른 여운이다.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꿈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