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으로서의 현신

<미스터션샤인>

by 물 결


얼마 전 국내에서 열린 한 영화제에서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아픔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교수에게 묻는 영상을 봤다. 교수는 실제 전쟁 참상의 아픔을 통감하기 위해 직접 그 전쟁상황을 겪어봐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며, 예술과 문학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고 공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역사물의 작품성이 좋다는 것은 당시의 정세와 참상을 오락적인 요소가 동반되는 드라마라는 매체수단을 통해 대중들에게 효과적으로 잘 전달했다는 뜻이다. 익히 알고 있는 외세침략 역사이면서도 내러티브 와닿는 감정과 여운이 확연히 풍부해짐을 느꼈다. 오늘날을 살고 있는 후손인 내가 시대상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이렇게 미디어를 통하는 것 또는 학창 시절부터 성인기까지 숱하게 한국사 과목을 공부하는 과정을 통하는 것 이외에는 실질적으로 없다. 격동의 역사를 헤쳐나간 선조들이 겪으신 참상에 비하면 몇 만 분의 일 정도의 교과서 속 텍스트로, 미디어로 압축된 것이지만 그것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공부하며 감사를 전할 수 있게 되었다. 미스터선샤인 속 의병들이 고전할 때면 줄곧 그 화면 속으로 뛰어들어 한 명이라도 같이 힘을 보태고 싶었고 열강들 사이에서 유린당하는 조선을 그린 장면들을 보며 피가 끓는 것 같은 분노를 느꼈다. 이 분들이 어떻게 지켜온 나라인데, 하며 울분을 토하기도 하면서.

당시 조선은 약소했으며 어떤 측면에서는 고루하고 우매했다. 민족주의의 근간인 성리학은 그전까지는 조정과 대신과 양반가들의 정통을 견고하게 하는 좋은 체제였지만 동시에 발전을 옭아매는 이데올로기이기도 했다. 고종은 선진문물을 수용하고 외세에 대한 공부와 교류에 우호적이었지만 물질적인 힘과 자본이 너무나 열세한 상태에서 개항을 했기에 실질적으로 동등하게 강대국과 협상을 한다거나 조약을 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일찍이 선진화된 문명으로 선박이며 무기이며 의복과 같은 문화면에서까지 조선이라는 작은 나라가 받았을 충격을 가늠하지도 못하지 싶다.

미스터선샤인 속의 일본군 대위 모리타카시는 말한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너도 제국주의자잖아. 넌 스페인과 전쟁을 했고 미국은 필리핀을 가졌지 일본도 일러 전쟁을 승리하고 조선을 가지려는 것일 뿐이야. 필연적으로 우등한 국가는 열등한 국가를 실망시켜” 다분히 제국주의자의 시각에서 뱉는 이 대사는 힘의 우세인 나라가 열세인 국가를 잡아먹는 것은 당연한 것인가라는 원론적인 물음에 의문을 갖게 했다. 나는 근본적으로 강대국이 타국을 찬탈하는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강대국이 작게는 불평등 조약으로 크게는 전쟁을 해서까지 이권을 빼앗는 이유는 피지배국의 식량자원과 인적자원과 고유한 문화를 원래 본국의 것이었던 것처럼 종속시켜 자국의 영향력을 증대하기 위함이다. 피지배국의 자원과 민족문화를 본인들 국가의 정통에 편입시키면 침략을 정당화할 만큼 우등한 문화와 자원을 갖고 있으니 후대에도 연이어서 그 영향력을 마땅히 증대해도 괜찮은 국가가 되어 침략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제국주의가 저열함과 폭력의 연쇄에 근간을 둔다고 생각한다. 한 국가를 먹는 것에 그치지 않고 후대에 가서는 이전에 찬탈한 것들로 더 많은 국가들을 침략하고 말살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지럽고 위태로운 구한말 약소국이었던 조선은 청 미국 프랑스 일본 등 많은 나라에 의해 위협을 받는 와중에도 그 부당함을 표명할 길이 없다. 이미 대국들이 짜놓은 판에 알맞은 위치에 ‘끼워져 있어야 할’ 존재에 불과했다. 강대국은 외교의 자주권을 침해하는 것을 시작으로 국경 내에 미군이 주둔하고 일본 화폐가 유통되는 등 소란스럽게 그리고 빠른 속도로 조선을 잠식해 갔다. 전쟁으로 이권다툼에 한창인 강대국들은 제국주의의 손길을 뻗어 조선의 주권을 송두리째 흔든다. 이때 이 강대국들이 뻗은 찬탈의 손에 묻어있는 달콤한 ‘선진화’가 고루한 유교문화가 수백 년간 왕실, 관리등용, 신분제 등으로 체제화된 채 살고 있던 천민 양반 공인에 이르는 계층들에게 격동의 파도로 덮쳐왔다.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혁파되어 형식적인 제도는 없어졌지만 뿌리 깊은 멸시는 잔존해 있던 혼란기 속에 악착같이 꼬리표를 없애려 상층부로의 기회를 잡는 천민과 공인들이 넘쳐났고 그중에는 나라를 팔아야 성대한 근대화의 산물들을 얻을 수 있겠다는 사고를 갖는 이들이 등장했다. 그리고 이들은 수많은 의병들을 한민족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잔혹하게 밀고했다. 심지어 동지들 중에서도 일제가 심은 첩자가 있기 부지기수였다. 그렇게 동족을 고문하고 살상하며 일본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도대체 왜일까. 그저 편하게 일제가 주는 돈과 명예와 신문물을 받아먹고살면 오늘날까지 3대 4대가 편한 삶을 살았을 것인데 도대체 의병에게 조국이 무엇이었을까.

왜 희생으로써 고귀함을 자처했을까. 그들은 고귀한 삶으로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어서 독립운동을 한 것이 아니다. 내가 땅을 딛고 살아가는 나를 낳고 길러준 부모와 가족과 친구가 살아가는 터전이 외척에 의해 강제적으로 파괴당하는 것을 보고 분노와 신체가 앞 다투어 튀어나간다는 것은 당연한 의식이자 사명이다. 그들은 후대에 고귀한 이름으로 기록되고 말지는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를 살아갈 수 있게 해 준 선조들이 일궈놓은 땅과 내 가족을 지켜내기 위해 그저 ‘행할’ 뿐인 것이다. 처음에는 비단 내 주변인을 구하기 위한, 사랑하는 정인과 부모를 구하기 위한 행동이 그들을 움직인 동력이었지만 결국에는 그 ‘주변’을 생각하는 숱한 마음들이 모여 압도적인 문명과 수적인 우세에 있는 제국주의를 가로막는 폭탄이 되고 결국은 민족을 구하는 거사가 되었다. 반면 친일파들은 후대에 본인들의 이름과 족적이 남길 바랐다. 일본이 영원할 줄 알았으니까. 나라를 판 공헌도가 문서에 남을수록 치하받는 돈의 액수가 달라지고 직급이 올라가니 말이다.

의병활동은 제국주의 열강들이 우리 조선에 위협적인 접촉을 해오기 시작할 무렵인 1890년대부터 들불처럼 시작되었다. 그러나 의병이라는 존재는 정미의병 시기 그들을 취재하며 희생과 목적의식을 조명해 준 영국인 기자 맥켄지에 의해 유일하게 이름 하나 기재돼 있는 바 없는 사진 한 장으로 족적을 대신했다. 그들은 일제의 감시에 들키면 안 되었기에 이름이 남겨지지 않아야 했다. 이 세상에 없는 이처럼 살아야 했으니 외롭고 처절한 싸움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나라를 팔아 근대화로부터 어떻게 돈을 뽑아먹을지 궁리하며 사익을 도모하는 넘쳐나는 파렴치 속에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알고 가는 동료들과 그 투지를 횃불 삼아 뭉쳐야 했을 것이다. 수가 열세여도 왜란 병란에 걸쳐 적에 굴복하지 않고 대항했던 선조들은 나라가 넘어가기 전부터 나라가 넘어가는 그 순간까지 처절하게 일본을 응징했다. 애석하게도 나라가 넘어가는 시기였던 한말의 병기 1907년 ~ 1909년은 후대에게 항일운동 암흑기라고 통칭되기도 한다. 오죽하면 이 시기에 의병이 몰살당한 기록이 대부분이어서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 영상물을 제작하려 하지 않는다는 제작자의 말도 있다. 일제는 경술국치를 앞두고 남한대토벌이라는 작전명을 써가며 잔혹하게 의병세력을 살상했다.‘토벌’이라는 단어가 불쾌한 이유는 단순히 살상자 입장의 야만적인 단어여서만이 아니다.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기 직전 완벽하게 세력을 뿌리 뽑았음을 확신했을 일제의 어리석음에 복합적인 감정이 들게 한다.



“언젠가는 그 여인이 내가 될 수 있소”라는 대사가 그러하듯 극 중에서 고애신은 고귀하고 마땅히 지켜져야 할 조선 자체를 상징한다. 주변 인물들은 처음에는 사적인 관계를 지키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지만 그런 사사로운 감정을 넘어 오직 조국의 안위 자체를 바라보고 의거에 참여하는 의병들의 희생정신에 합세하여 결국 독립을 향해 각자의 위치에서 힘을 합치는 것을 돕는다. 자주적인 국가라면 내가 의식주를 영위하고 사회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도움을 준다. 그리고 이 안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한다. 하지만 이전에 이렇게 한 개인인 내가 당연하게 누리는 오늘날의 모든 것들은 선조들이 피와 땀으로 이룩한 결과라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한국사 공부를 하다 보면 거대권력과 외세에 맞서 싸운 의인들과 의병들이 등장할 때면 고결한 정신력과 의지에 감사하면서도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를 매번 생각하게 된다. 나라면 극 중의 희성처럼 총 대신 칼을 들었을 것 같다. 피를 묻혀야만 하는 물리적인 투쟁은 겁이 많아 못하지만 글재주는 있으니 외압에 맞서 국익을 이끄는 글을 씀으로써 용기를 냈을 것 같다. 그래도 만약 그 시대에 별안간 뚝 떨어진다면 확신은 없다. 용기를 갖고 투쟁하는 일체의 행위가 생사와 직결된다는 것을 알고 가는 길은 혹독했을 것이기에 그 길을 기꺼이 걸어간 선조들을 기리는 것으로나마 그 숭고함을 마음에 담는다.


새내기 시절 영화 1987을 보고 나와서는 친구에게 나라면 절대 운동권에 들 용기가 없었을 거라며 울었던 나와는 사뭇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래도 몇 년 사이 여러 시험준비와 여러 콘텐츠를 통해 한국사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덕에 의식의 변화가 있었다. 부당하게 국가의 어떤 가치가 찬탈당하는 과정에서 그 수탈자가 독재권력이든 외세이든 피의 투쟁을 불사하고서라도 다시 되찾았던 이유는 당신들이 밟고 서있던 삶의 터전을 지키는 것을 넘어 후대를 살아갈 나와 같은 후손들에게 국가로부터 마땅히 받고 국민으로서 누리고 살아가야 할 가치를 온전한 형태로 보존하여 물려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나는 개인으로서 존재하기 이전에 국가라는 터전을 이루는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닌 앞으로를 살아갈 후손들에 더 옳은 국가를 이어 주기 위해, 권력에 의한 폭력이 반복되지 않도록 감시하고 공부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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