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지향점
낭만’이라는 단어는 어느샌가 ‘오글’거 린다는 꽉 막힌 인상을 주는 일갈을 대체할 멋스러운 개념으로 탈바꿈되었다. 돌아보고 싶은 순간을 회고하고 덧없이 감정을 그려내는 이들에게 더러 ‘오글’거 린다는 말을 던져 감정의 서술을 망설이게 만드는 양상에 애석함을 느끼던 차였다. 이런 의미에서 마케팅과 예술 분야 등지에서 ‘낭만’이라는 단어의 긍정적인 부상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중은 AI를 위시한 대대적인 변혁으로 설명되는 전례 없는 현대사회의 흐름 위에 표류 중이다. 문명의 발달로 누구나 급진적인 문화 생산의 주체로 변모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덕에 급격한 유행의 소비, 금세 휘발 되는 정치 사회 연예면의 이슈들, 개인주의 심화 등 대한민국이 갖고 있던 대표적인 정서인 ‘정’과 ‘낭만’이라 불리던 소중한 가치들은 한 해가 지날수록 들이마시며 체감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렇게 먼 과거도 아닌데 불과 1년 전 일을 돌아보면 아득하게 느껴지는 때가 많다. 예전에는 10년 사이에 걸쳐 일어났을 법한 사건들이 근래에는 단시간에 부상이 되었다가 쉽게 사라지는 현상이 심화된 탓이다. 하나하나의 에피소드와 장면들과 미디어를 찬찬히 뜯어보고 이해하며 그에 감정을 투영하고 소화할 여유가 대중에게 더 이상 주어지지 않는다. 이 사회의 흐름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논란’의 정서에는 ‘자극’과 ‘분노’가 중심을 이룬다. 갈등을 유발하는 사건들이 쉴 새 없이 뉴스와 미디어를 통해 송출되고 대중의 눈과 귀를 관통한다. 이 갖가지의 자극은 실시간으로 우리를 호도한다. 대중은 일방적인 정보와 자극에 휘돌 되는 상황에 실로 많이 지친 상태다. 스마트폰 없이 초등학교 놀이터에서 시소를 타며 친구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 만으로, 책의 한 구절을 읊는 것 만으로 마음이 충만하여 타오르던 순간은 이제는 8090년대 생들의 기억 저편 어딘가에 꺼지지 못한 채 타닥이는 위태로운 모양으로 사그라들어 있을 뿐이다.
지금은 문명으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난 형태의 존재로서는 기쁨과 긍정적인 자극을 찾을 기회를 만나기 쉽지 않다. 도태되기 두려운 인간의 본능이라 말하고 싶지도 않다. 문명을 통한 자극만이 가득한 환경이 대중들을 감싸고 있으니 어쩌면 만들어진 본능이다. 그렇기에 이 세대의 마음을 울리는 콘텐츠는 갖가지 문명의 이기로부터 의식이 결코 속박되지 않던, 각자의 화려함을 본인만의 낭만으로 써 내려갔던 매일을 담아내기만 한다면 반을 성공을 하고 들어가는 추세다. 일례로 최근 몇 년 간의 대중문화를 이끌어온 트렌드의 시초는 ‘레트로’ 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대의 향수를 호출하며 소중한 기억을 상기시켰던 ‘응답하라’와 같은 키워드는 대중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최근 리메이크작인 '접속’은 그 시절에만 가능했던 아날로그로 소통하는 사랑이야기를 그려 신세대에 새로운 방식의 사랑을 알려주기도 했고, 음악예능 ‘슈가맨’은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 청년기를 보냈던 이들을 추억에 데려다주었다.
시대의 낭만이란 어느 세대에게든 물어봐도 지나간 과거를 미화하며 ‘회상’하는 데에 있다 할 것이다. 미화라는 단편적인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과한 감이 있지만 비단 한국뿐 아니라 현대화가 가속되며 각박함을 느끼는 대중의 피로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공감할 이야기일 것이니까. 하지만 우리 세대가 기억하는 아날로그로 느낄 수 있던 낭만이라 불리는 것도 당시 기성세대들에게도 새로운 문명이자 낯섦이었을지 모른다. 시대가 변하며 퇴색되어 가거나 더러는 잊히는 가치들은 어쩔 수 없이 차치하고 흘려보내더라도, 피어나는 따뜻함과 낭만을 현시대에서 표현할 수 있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남겨놓으려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과거가 주는 낭만이라 함은 사실 그것을 보존하여 소중한 가치로 창조하고 기록하려 애썼던 이들과 그 과정들의 총체인 것을.
좋은 순간은 너무 빨리 잠식되며 흘러가버리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가 진정으로 찾아나가야 할 휴머니즘이 자잘한 감정과 소란들이 쉼 없이 시작되고 사장되는 현시대에 더더욱 빛을 내기를 청중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