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언론에서 보도되는 사건들은 문제가 발생한 일들이다. 이는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아무 문제없이 잘 진행되고 있는 일은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언론에 보도할 정도가 되면, 여러가지 문제가 쌓여있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일은 일상 생활과 업무에서 보이지 않게 이루어지고, 아무 행동도 변하지 않고서는 세상에 알려진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다.
이름이 알려진 유명인과 언론사 기자가 방송에 나와서는 유튜브가 언론의 혁신이라고 하기도 하고, 언론의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을 얘기한다. 누구라도 말을 하고 책을 쓸 수도 있지만 이는 자신의 한가지 관점만을 얘기한다. 말로 대화를 하거나, 글로 책을 쓰거나, 영상을 만들거나 오로지 특정한 관점을 자세히 얘기해주는 것이 사회에서 소통을 하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인기가 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좀 더 알려질 수는 있어도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마련이다. 누구나 쉽게 자신의 영상 매체를 가진다고 해서 이것이 달라지지는 않고, 단지 지식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 하나 생긴 것 뿐이다. 도대체 뭐가 혁신인지 알 수가 없다.
이미 다원화된 사회에서 문제만 제기해 놓으면 그만인지 어느 순간부터 공정성을 기하는 듯이 양쪽으로 갈라서 프레임을 만들어 이슈만 만들어내기도 한다.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문제 해결에 필요한 행동 변화가 나타나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언론이 본래 정치 권력이나 자본과 연결되기 마련이고, 자기네들 돈벌이에 충실한 행동일 뿐이다. 요즘은 매체가 다양해져서 이러한 기능은 대체제가 많은데, 사회의 의사소통 기능이 사라지고 변화도 유도할 수 없으면 아무도 신문이나 방송을 안볼 것이다.
아는 것과 행동 변화는 그대로 이어지기 때문에 있는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사회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우선 덕목일 것이다.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에 대한 자극적인 기사가 나오더라도, 때로 아름다운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무엇인가를 막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직접적인 행동변화는 이끌어낼 수 없다.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겠으나 이는 문제가 많이 발생하고 첨예한 갈등이 초래되어 있는 시기일텐데, 온갖 자극적인 기사가 나오는 것이 문제를 가리는 데는 도움이 되어도 제대로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에서 우리나라 선수단을 북한이라고 소개했다던데, 순간 우리나라 언론의 행태가 생각나면서 하는 행동이 북한과 별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묵살하고 일부의 의견만 들어서 정치하는 것을 권위주의 파시즘이라고 할텐데, 4년 내도록 앵무새처럼 3T를 하니, 중국을 막니 하는 프레임을 만들어내던 것이 생각난다. 사회의 의사소통에 대한 기여가 없으면 신문이든 방송이든 인터넷 매체이든 아무런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