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은 현실 변화에 도움이 되어야
최근 체계나 복잡성 등 여러 최신이론들이 나오지만 내가 여기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체계 이론은 현재 나타나는 현상들을 상세하게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데,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을 다시 한번 고찰해볼만한 부분들은 있었던 거 같다. 그러나 모든 이론은 한가지 관점을 보여주는 것이고, 특히 체계 이론은 변화나 움직임에 대한 내용은 거의 담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집단적으로 지나치게 강조하면 개인의 자율성을 막아 조직의 발전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 특히 이를 정치에서 써먹으면 현상 유지나 하면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집단의 이권을 보호하는 데에만 쓰일수도 있다.
의료체계는 면허에 의해 진입을 제한하고, 수련제도가 전문 분과별로 충분히 발전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폐쇄적으로 체계가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의사는 급성기 질병의 진단이나 치료만 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스스로 질병을 통제할 수 있도록 돌보는 일도 하기 때문에 진료 과정의 경험에서 자연스럽게 사회에 연결이 되게 된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환자를 충분히 확보해야 하는데, 이는 의료기술뿐만 아니라 의사-환자 관계가 잘 형성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의료 분야의 발전이 여러 영역에서 나타날 수 있지만, 진료 과정 속에서도 의과학이나 의료기술의 발전뿐만 아니라, 질병 예방이나 건강증진, 의료 제도 상에서의 변화나 혁신에도 얼마든지 기여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의료제도에서 시범사업의 효과는 어느정도 검증이 되어있다. 특히 전문 분과별 사업들은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일들이 아니면 효과가 나타나기 어렵다. 급성기 질환의 진료는 병원 내외에서 협력체계를 갖추는 것이 가능하지만, 나머지 질병예방이나 건강증진 측면의 일들은 전문 분과에서 동의를 얻기 어렵기 때문에, 효과가 나타나기 어려웠다. 보건 기관에서 의료 기관과 협력체계를 갖추는 것이 쉽지는 않으나, 지금은 어느정도 성과가 나타난 사례들이 있기 때문에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가능하다.
특정 분야의 지식을 기반으로 전문 분야를 구분할 수는 있으나, 진료 과정에서는 이런 영역들이 구분되지 않고, 특히 예산을 배분하는 기준으로 쓰기는 어렵다. 진료권 내에서 현실의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결과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다면 국가 예산을 배정할 수 있겠으나, 시범사업이 아닌 이상, 이미 진료 과정에서 하고 있는 업무에 대해 환자나 인구집단 관점에서 검증하기도 어려운 일들에 예산을 배정하기는 어렵다. 특히 전문질환센터나 필수의료 사업과 같이, 전문과별로 진행되는 사업들은 진료권 내에서 효과에 대해 환자나 인구집단 관점에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코로나 시기 이후로 이러한 원칙들이 거의 무너져 있는데, 쓸데없는 지식으로 정치 싸움에나 써먹는 일은 전문 분야와 사회 모두에 별 도움이 안된다. 필수의료를 이야기하면서 분야별로 대규모 예산을 배정해놓고, 결과에 대해 모니터링하고 검증할 수 있는 지역에 자율성을 주지는 않는다. 의료 제공에 대한 수가는 건강보험에서 엄격하게 논의가 되고 있는데, 공공 사업에 쓰는 국가 예산의 효과에 대해서도 모니터링이 엄격하게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어떤 변화나 움직임에 대해 말해주지도 않는 지식이나 내세우면서 이를 막는 일도 없어야 하고, 기본적인 원칙을 다시 세우는 일부터 되어야 할 것이다.
의료전달체계에서의 리더십과 협력
면허나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 중심으로 운영되는 의료체계에서 부문별 협력이나 지역사회 참여는 늘 어려운 문제이다. 병의원의 의료제공에서도 환자 의뢰체계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인구집단의 건강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협력과 참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요즘은 보건기관에서도 분야별로 서비스 제공체계를 갖추어가고 있지만, 의료기관과의 협력이 안되니 환자보다는 건강한 사람 위주로 이용하게 되고,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요구를 다루지는 못하기 때문에, 전반적인 인구집단의 요구를 충족하지는 못한다.
의료전달체계에서 진료권 내 기관별 협력을 위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은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에 대해 환자뿐 아니라 의뢰하는 기관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대상자 의뢰도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의사소통도 되지 않고 서로 인정하지도 않는다.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은 의료기관의 환자들이 타 기관에 의뢰되면서 갖추어갈 수 있고, 보건기관에서는 규정을 만들거나 재원 조달을 통해 의료기관에서 필요한 일들을 지원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 환자의 문제를 함께 다루어가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자원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어쩔 수 없이 협력이 필요하기도 하며, 지역별로 협력이나 참여의 정도는 많은 차이가 있고, 하기 나름이다. 의사 인력을 제외하면, 우리나라가 자원이 부족하다고 얘기하기도 어렵고, 어떤 기관이라도 리더십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의료전달체계가 환자나 인구집단의 요구에 맞게 잘 조직되어 있으면, 작은 단위에서부터 필요한 일들에 대해 행동이 나타날 수 있지만, 현재와 같이 전문 영역별로 시장 중심으로 발전해서 환자 요구와는 동떨어져 있으면, 누구도 현실 문제에 대해서 쉽게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렵다. 의료체계가 불균형한 상황에서 영역별로 필요한 예산을 배분하더라도, 전문 영역별 관점에서 일부 서비스가 발전하는 데 영향을 줄 수는 있으나, 환자나 사회적 요구를 수용하는 데는 별 도움이 안될 수도 있다. 환자의 요구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개인이 수용하게 되고, 집단별 요구는 각 단위별로 기관에서 반영한다. 현재는 대학, 병원, 공공기관 모두 의료체계의 문제에 대해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은 지식이나 권한의 크기, 재원 규모 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학문적 지식을 추구하는 것은 우수한 개인이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을 수는 있으나, 이런 일이 현실 문제와 당장 직접적인 관련을 가지는 것은 아니고, 필요한 일들이 나타나지 못하면 현실에 쉽게 수용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본래 능력이 우수하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것이 현실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학문적 성취는 개인의 능력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볼 수 있으나 이것이 리더십과는 관계가 없고, 더구나 이것이 현실의 성과와 연결되는 것은 개인 능력이 아니라 운이나 외부 상황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게다가 현재 의료체계와 같이, 현실의 불균형한 구조가 인구집단의 요구와 맞지 않는 경우에는, 조직에서의 사회적 지위도 특정 집단의 발전에는 부합할지 몰라도 사회적 관점에서 현실에서의 성과와 연결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분업화된 사회에서 시장 이익으로 전환되지 못하는 일들은 측정되지 못하고, 보이는 것으로 판단할 수 없다.
오랜기간 기본적인 제도를 운영하지 못하면서 여러 문제들이 누적된 의료체계에서 개인이 리더십을 발휘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대학 교수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소속된 대학이나 병원의 입장에 따라 지식을 이야기하기도 하며, 전문 영역별로 자기 분야의 이익을 추구하는 일은 과학적 사실이나 기본적인 논리도 무시하는 등으로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 시기에 프레임을 만들어서 양쪽에서 예산을 요구하면서 방역을 옹호한 사건이나, 필수의료를 얘기하면서 지역별로 의료전달체계 구축에 필요한 통제 기전들은 얘기하지 않으면서, 분야별로 예산 다툼에 쓰이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누구나 쉽게 판단할 수 있다. 모두 권력을 집중시키는데는 필요할 지 모르나, 현실에 필요한 일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 하나는 일반 인구집단을 통제하는 데 쓰였고 다른 하나는 개념적으로 맞지 않는 전문 영역별 예산 배분을 통해 개인이나 조직의 자율성을 일부 침해할 수 있다. 이제는 아무리봐도 이론적 지식을 통해 개인이나 집단의 리더십을 기대하기는 어렵고, 모든 일에서 방향성을 명확히 하는 것과 함께, 기본적 단위의 활동에서부터 필요한 일들을 해나가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정치 능력을 발휘해야
정치는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권력과 자원 배분으로 이어지므로 사람들의 집단 행동을 만들어내게 되고, 결국은 어느정도 폭력을 수반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행동이 개인에서 일어나는 변화나 혁신을 직접적으로 일으킨다기 보다는, 현재의 행동을 막거나 방향을 바꾸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정책으로 나타나는 성과가 많아 보이고, 여러가지 관점으로 말이 많아도 이는 결국 권력이나 국가 예산을 얻기 위한 경쟁이나 싸움일 뿐, 특정한 행동을 막을 수는 있어도 변화나 혁신을 직접적으로 유도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사회 전체에서 변화나 혁신이 나타나는 방향으로 자원을 배분하는 것이 정치의 능력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시장 경쟁이나 국가 정책의 의사결정 과정이나 직접적으로 개인의 변화나 혁신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자원 분배에 의해 행동의 방향을 바꾸게 할 뿐인데,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 추구하면 결국 경쟁력이 떨어지고 그 결과로 사회도 퇴보하게 된다. 기업이 아무런 혁신없이 규모를 키워서 남이 해놓은 일을 이용해서 시장의 이익을 독차지하기도 하고, 국가 정책에서 법과 제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면 특정 분야의 발전이 끝없이 지체될 수도 있다. 기업도 자신들의 핵심가치를 알고 구성원들이 끊임없이 혁신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하지만, 국가도 공적 영역에서 공무원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변화와 혁신할 수 있도록 의사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경제학에서 시장과 국가의 영역을 구분하기도 하지만, 의사결정 과정에서 이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워 정치 지도자의 능력에 좌우되기 마련이다.
집단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것은 사회의 의사소통 기능을 하게 되는 언론이나 지식인들도 마찬가지인데, 특히 언론 기사나 지식이 기업들의 상품이나 국가 정책의 홍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면 영향이 광범위하게 나타나게 된다. 언론은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지식인들은 여러 이론과 근거를 이야기할 수 있지만, 어떤 지식이나 이야기라도 자원 분배의 기반이 될 수는 없다. 정치 논쟁에서 활용되는 지식이나 이야기들은 과거에 완성된 것들이지, 현재의 변화나 혁신을 일으키는 것일 수 없다. 기사는 현실을 있는그대로 보여주고, 지식은 특정한 부분을 완결성있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현실에서 변화를 기대할 수 있으나, 정치에서 자원 배분의 효과는 이와는 완전히 다르다. 여러 원칙들이 있으나 결국은 공적 영역에서의 변화와 혁신이 나타날 수 있는 곳으로 자원 배분이 나타나야 하는데, 법과 제도에 기반한 과정들과 의사결정자들의 리더십, 주민들의 참여 등 여러가지 요소가 관련되고, 집단의 일에 논리적인 정합성은 있어야 하지만, 결과를 한가지 관점에서 얘기하기 어렵다.
때로 언론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특정한 문제를 이슈로 만들기도 한다. 지난 정부에서 쉐도우 캐비닛이라는 말도 있었는데,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전문가 집단을 가리키는 말로 썼었고, 소득 기반 성장을 포함한 여러 정책 전반에서 추진력을 얻기 위해 얘기하고는 했다. 그러나 이는 결국 정치 권력의 배분의 문제일 뿐, 사회 전반의 동의를 얻을 수 없는 지식으로 논쟁을 만들어내면 현실에서 경쟁도 나타나지 않고, 이론적인 기전 하나만으로 권위를 앞세워 밀어부쳐서 사회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요즘은 돈을 많이 버는 연예인들도 기획사에서 사업을 운영하니, 이상한 개념을 만들어 써먹기도 한다. 어느 순간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을 여기저기서 써먹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감정이고, 팬클럽이 가서 봉사활동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도 연예인 홍보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사회에 직접적인 변화를 유도할 수 없다. 예술은 어떤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고 의사 표현은 자유이지만, 어떤 예술이라도 내용이 완결성을 가지고 전달되지 못하고 권력이나 돈과 연결되면 연예인의 유명세를 권위주의로 바꿔서 얼마든지 집단적으로 써먹을 수 있다. 하기야 우리나라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사건사고를 보고 있으면 저런 폭력이 없기는 한데, 나같은 소시민이 무슨 상관이겠냐만은.
우리나라는 경제 발전 시기에 국가에 의해 자원을 집중시키던 시기를 지나, 사회가 다원화되니 국가의 의사결정이 비합리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지역별 경쟁을 시켜도 이미 잘 정립된 문제들 외에 빠른 발전이 나타나기 어렵다. 세부적인 분야별로 이슈가 되어봐야 이를 기반으로 자원 배분을 할 수는 없는데, 특정 분야의 발전을 직접적으로 유도하기도 어렵거니와 이론적으로는 이미 충분히 발전해서 더 할 일이 없을 수도 있다. 코로나 이후로 보건과 안전 관련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전문가들도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대부분 지식이 없다기보다는 실천이 안되는 경우가 많고, 공적 영역에서 변화나 혁신할 내용이 없는 곳에 자원을 배분하기도 어렵다.
이번 선거에서 야당이 압도적으로 이겼으나 별다른 움직임이 나타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세부적인 지식이나 사건에 기대어 이슈를 만들어낼 수는 있어도, 현실에서 변화나 혁신이 나타나는 것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아무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 자원 배분을 해도,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면 정해진 일은 해도 행동은 변화하지 않는다. 역사로 논쟁을 벌여도 어느정도 완결성을 가지고 해야 하는데,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된다는 식으로 내용없는 논쟁만 한다. 과거 대통령 이름붙여서 기념하는 것도 반대하는데, 어디라도 돈만 주고 동상 세우고 건물에 이름붙여서 기념하는 일도 많은데, 그걸 보고 그대로 따라가는 사람이 누가 있다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소득기반 성장을 아무리 얘기해도 근로자나 기업 모두 자신들이 기대하는 바에 따라,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행동한다. 기본 소득 25만원이 아니라 복지제도 완비를 이야기하지 않는 이상, 아무런 기대도 변화도 있을 수 없다.
경제가 빠르게 발전하던 시기를 지나 발전 속도가 느려지는 시기가 되니, 자기 것을 지키려 집단적인 경쟁과 다툼이 증가한다. 정치적인 통합은 힘있는 집단끼리 타협하면서 특정 집단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사회 변화나 혁신이 나타날 수 있게 하여,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통합이 될 수 있으면 될 것이다. 이런 것이 리더십이고 능력인데, 이미 문제가 쌓여있는 뻔한 일들부터 진행하여 사회에 움직임을 나타나게 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의료 문제는 빨리 정리해야
더이상 나올 것이 없는 의료 문제는 빨리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공의나 학생들은 스스로 그만둔 것이고, 지금은 더이상 어떻게 할만한 방법이 없다. 의료개혁으로 사회 곳곳에 쌓여있는 문제들을 정리할만한 동력을 얻으려 한 것으로 보이지만, 보수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집단이 빠르게 변화하기는 어렵다. 본래 의사들이 행동하면서 변화나 혁신이 나타나는 것은 환자를 대상으로 일어나지, 집단적인 일에 익숙할 수가 없다. 게다가 현재 의료정책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지식은 많을지 몰라도 변화나 움직임을 일으키는 일에 대해서는 전혀 경험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코로나 이후에 의료 정책을 전환할 기회가 생겼음에도 의대정원 숫자로 집단 싸움을 일으키고, 국가 예산을 전문 분야별로 배정하는 등, 모든 변화의 동력을 갉아먹는 방법만 쓰고 있다.
어차피 여당이 아니라 야당이라도 정치인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은 의료개혁을 추진할 것이다. 지금은 의사협회 등의 전문가 단체나 대학, 정부기관 어디라도 먼저 나서서 병상 제한 등의 의료체계에 대한 통제제도를 이야기하는 것이 이 상황을 정리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국회의원에 당선된 여러 의사들이 있는데, 공적 영역에서의 변화나 혁신을 주도할만한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정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라, 지금처럼 동력이 충분할 때는 먼저 행동에 나서서 주장해야 나머지 일들이 정리가 된다. 배정된 예산이 많다고 세부적인 문제를 잘 알고 있다고 아무리 주장해봐야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데, 자기들 마음대로 해보겠다고 저 난리를 치고 있는 사람들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시간을 질질 끌면서 세부적인 문제를 계속 이슈로 만들어내는 것은 변화를 막는 것이지, 개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전공의나 학생들이 이 상황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정권이 바뀐다 해도 다시 추진할 것이다. 어차피 의대정원은 지금이 아니라도 추후에 조정될 가능성이 높으니, 의미없는 행동 그만하고 빨리 돌아오는 것이 나을 것이다.
정치나 지식이나 집단적인 일은 무엇을 막아서 변화를 유도하는 일에 가깝고, 그럴듯하게 꾸민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 어차피 오래시간 뒤에 결과가 나타날 것이니, 그냥 원칙대로 밀어부치고 끝내야 한다. 정부나 대통령이 이정도면 많이 기다린 것이고 더이상 지체할 이유도 없다.
어차피 글이나 지식은 무언가를 막는 효과는 있을 수 있어도, 직접적인 변화를 유도할 수는 없다. 지금도 이번 사태로 고생하고 있는 대학이나 병원의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면서 나도 이만이다. 이제 슬슬 끝날 때가 되었을 것인데, 코로나로 또 삽질을 하는 것을 보니 더 빨리 끝날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