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근로자들이 정리해고를 당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회사에서 조직적으로 일을 못하게 해서 나가게 하는 사건이 나온다. 시장에서 생존해야 하는 기업이 위계적으로 운영되는 방식으로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러나 요즘은 노동조합도 잘 조직되어 있고, 마음에 안드는 의사결정자들을 비슷한 방식으로 공격하는 일도 있다. 생계형 파시즘 기업이 정부, 기업, 학교 등에서 뭉쳐 연합하면 자신들의 눈에 보이는 이권을 위해 정치적 신념뿐만 아니라 여러 지식에 의한 온갖 기준들을 내세우면서 현실에서 운영되는 조직 내부의 질서도 어지럽히고 여러 일을 방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경제적 이익에 의해 위계적으로 운영되는 조직은 논리가 아니라 경쟁에 의해 운영되기 마련인데, 정치적 변화와 혁신은 리더가 유도할 수는 있어도 경쟁으로 나타나 수는 없다.
누구라도 어떤 일을 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달린 일이고 억지로 하게 할수는 없으나, 집단이 어떤 일을 방해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코로나 시기에 방역을 이유로 여러 기관의 개인정보가 연결되었다는 기사도 있었는데,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도 이러한 행동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직접 만나는 장소에서는 정보나 지식의 전달뿐 아니라,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행동 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으나, 정보통신 기술은 이러한 상호작용이 없기 때문에 직접적인 행동 변화에 영향을 주기 어렵다. 제대로 통제되지 않을 경우, 인터넷이나 통신기술과 함께, 최근 AI 등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은 기존 사회의 구조를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게 되고, 이는 변화나 혁신을 막는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자본주의 사회의 다원화된 조직들은 사회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을 수 있는데, 자신들의 분야에서 주도권을 유지하면서도 시장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방향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들이 사회적인 기부나 봉사 활동에 참여하기도 하지만, 자신들의 시장을 없애는 일을 직접적으로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현대가 버스나 철도 회사를 운영하는 것은 필요하지도 않지만, 다른 조직에서 별도로 운영하는 것이 공적 가치를 구현하는 데 더 효과적이다. 마찬가지로, 정치에 참여하는 생계형 파시즘 기업들도 사회 문제를 이슈로 만들어 법이나 규제를 만들고 정부 재정을 얻어내면서도, 얼마든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을 수 있다. 국가 내에서는 자신들이 정치적인 주도권을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기에 상대적으로 잘하는 것처럼 보이면 되고, 문제가 적당히 존재해야 정치경제적 시장을 유지해서 자신들의 조직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기에 프레임을 만들어내서 각종 예산을 받아냈던 이후로, 여기저기에서 언론을 통한 사건사고의 보도와 공포장사가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사건들을 언론에서 보도하면서 특정집단의 정치경제적 이익에 부합하는 해결방법만 얘기한다는 것이다. 코로나 시기에는 3T냐, 중국을 막느냐를 얘기하고 다녔고, 4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각종 통계를 들먹이면서 질병청의 관리 능력을 강조해준다. 배터리 회사에 화재가 나니, 초기부터 돈이 많이 드는 시설의 설치 부족을 들먹이더니, 한참 지나서야 외국인 노동자 고용, 교육 부족 이런 얘기를 하고 다니면서 책임자 처벌이 필요하다는 듯한 뉘앙스만 풍기고 다닌다. 딥페이크가 문제가 되니 돈을 많이 버는 연예인들이 뉴스에 나오더니, 마지막에는 학교에서 처벌이 부족하다고 변호사가 떠들어댄다. 언론을 통해 관심을 집중시키게 되면 문제 해결방법이 제시되기 마련인데, 아무리 봐도 기자의 관점이 아니고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관점만 그대로 보여준다.
코로나 시기에 보건이나 의료계에서 하는 짓을 배웠는지, 보면 볼수록 가관이다. 그러나 의료체계에서 저런 행동을 해도 문제가 덜한 것은 질병 문제는 진료 과정에서 해결이 되기 때문인데, 진료를 받으면 환자에 맞게 치료와 설명을 해주기 때문이다. 집단적인 문제는 자신들의 일이 아니라는 듯이 분리해서 대응하다가, 코로나 시기에 갑자기 발생한 대규모의 문제에 대처하지 못한 것이 문제이지, 환자 진료에서 문제가 생겼던 것이 아니다. 아직도 코로나 방역을 질질 끌면서 무슨 문제가 남아있는 듯이 기사나 보도들이 나오지만, 자신들이 해본 적이 없으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 뿐이고 오미크론 이후에 남아있는 문제는 없다. 코로나든 응급의료든 없는 문제를 만들거나 해결방법이 없는 문제를 이슈화시키는 것은 그저 혼란을 만들어내는 것 뿐인데, 정치 과정에서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은 방법이 없다.
원래 규모가 큰 일을 좋아하는 성격은 아닌데, 코로나 시기에 의도치 않은 행동들을 했다가 평생 해보지 못한 경험들을 하고는 했다. 정보통신 기술이 발전하니 여기저기 모르는 곳에서 문자도 전화도 오더라만은, 코로나 시기에 여러 기관의 개인정보가 연결된 것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정보통신 기술 발달이 아니어도 보안은 사람을 중심으로 뚫리기 마련인데, 가족이나 친구들이 위로인지 소통인지를 해주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기업에서 조직의 업무에 맞지 않는 사람을 나가게 하듯이, 주위를 엉망으로 만들어보겠다는 의도는 알겠는데 그저 좋은 경험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생계형 파시즘 기업들이 조직에서의 지위와 돈을 통해 연합하기 마련인데, 주위를 보면 괴로워하는 사람도 즐기면서 같이 노는 사람도 있는 거 같은데, 지금처럼 혼란한 시기에는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겠다고 온 동네를 엉망으로 만들고 다니는 바보들과는 연합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위기 상황에서 변화할 줄 모르면 살아남을 수 없고, 쟤들은 살아남더라도 행동하는 수준이 떨어져서 어울릴 애들이 아니다.
지금은 무엇보다 공식적인 정치과정이 회복되어야 한다. 의료개혁을 얘기하면서 의대정원 증원 만으로는 개혁이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문제의식이 명확해야 하는데, 병상이나 인력과 같은 의료자원은 국가가 통제해야 하고, 진료권 내에서의 활동은 면허와 교육수련제도를 기반으로 현실 문제를 철저하게 자율적으로 해결해나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각종 분야를 세부적으로 나누어서 화려한 지식을 얘기하면서 국가에서 해결해나가는 것처럼 꾸며봐야 생계형 파시즘 기업들이 언론을 통해 각종 문제를 만들어가며 현실에서의 움직임을 막는데나 도움이 되지, 의료분야처럼 인력의 질적 수준이 높은 곳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생계형 파시즘 기업들은 자신들의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이나 지원하지,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고용하지 않는다. 의료 정책은 복잡할 것이 없고, 병상제한이나 건강보험 재정과 같은 중요한 문제만 조정하고, 나머지 일들은 공정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관리만 하면 된다.
아직도 반대편에서도 병상제한 등의 얘기는 하지 않고, 무리한 추진이었다느니 장기적 과제들을 제시한다는 얘기를 하고 있지만 정치적 행위로 봤을 때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2000명을 던져놓고는 이것이 무리한 일이었다고 하면서 대규모 재정에 의한 생계형 사업들을 무더기로 얘기하는 것은 무슨 코미디가 따로 없다. 저런 사람들을 위로한다고 재정을 투입한다고 해서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데, 절대 현실 문제를 해결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과정이 회복되려면 정책에서 변화나 혁신이 행동으로 나타나야 하는데, 생계형 파시즘 기업들이 그런 일을 하지는 않는다. 요즘은 대구경북에서 행정통합이 논의되고 있는데, 진료권별 병상제한뿐 아니라 건강보험도 재정분리를 해서 의료체계에서 재정과 의료제공을 연계시키면 의료개혁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대규모 재정 지원을 하고 이슈를 만들어봐야 생계형 파시즘 기업이나 좋아하지, 진료권 내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 의사들은 바빠서 더이상의 일을 할 생각도 없고 재정지원도 신경쓰지 않는다.
코로나는 저절로 끝날 것인데 저런 일을 마지막까지 이슈로 만드는 것은 내가 보기엔 자살행위인데, 머하는 건지 모르겠다. 우연히 오래 글을 쓰고 있지만 이런 일에 어울리는 사람도 아니고, 이제 끝나가는 상황에서 정치 과정이 개선되길 기대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