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 질환이든 경증 질환이든 급성기 치료 이후에 환자가 자신의 행동을 바꾸는 데에는 질병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환자의 진단명을 알려주는 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진료과정에서 형성된 환자-의사관계가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특히 만성질환이나 정신질환과 같이 환자 스스로 행동 변화가 중요할수록 의료기술보다 이러한 기본적인 요소들이 중요하다.
환자 대상의 보건 사업의 효과는 병의원과의 연계 여부가 결과에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 환자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에 결정적인 요소는 자신의 상태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것이고, 환자-의사관계에서 진단과 처방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이후의 행동 변화로 이어지기 어렵다. 먹고 운동하는 방법에 대해 전문가가 아무리 잘 설명해 주어도 환자가 자신의 행동을 바꾸게 되는 것은 자신의 질병과 치료 방향에 대해 아는 것이 먼저이고, 이를 받아들인 후에야 구체적인 방법들이 더해질 수 있다. 환자의 자발적인 행동 변화라는 관점에서 질병의 진단이나 환자-의사 관계는 결정적인 요소이고, 다른 요소들은 부차적이거나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으며, 환자 스스로 조정할 수도 있다.
결과 평가를 엄격히 하는 것과는 별개로 고혈압, 당뇨병 등록관리사업은 병의원과 연계하여 보건사업을 시도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의사의 진료과정에서 나타나는 효과와는 별개로 환자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환자 개인에 대한 교육훈련이나 정보 전달뿐만 아니라 특정 지역 내에서 여러 공동의 사업들이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은 병의원과 보건기관의 연계라는 공적 관점에서의 변화, 혁신의 요소가 실행되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모두 여기에서 파생되는 부차적인 요소이다.
국가 재정에 의해 지원되는 전문질환 센터들이 설립되었으나, 기관 내 급성 질환 치료과정 개선의 관점에서는 분명한 효과를 이야기할 수 있으나, 나머지 환자 치료와 관련된 일들은 공적 관점에서 효과는 불분명하다. 환자 개인에 대한 의료 제공은 의료기관 간의 경쟁에 의해 얼마든지 개선될 수 있으며, 나머지 환자에게 필요한 일들은 개인 대상의 서비스 개선이 아니라 다른 부문에서 변화가 나타나야 하는데 이는 의료기관 내의 협력과 함께 외부기관의 노력도 더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 재정에 의해 지원되는 기관이 모든 공적 서비스를 담당하기도 어렵거니와, 국가 재정지원 부족을 이유로 민간의료기관이 외부 협력을 거부하면 사회적으로 공공서비스 발전이 지체될 수도 있다.
때로 서울의 대형병원에서 특정 중증 질환의 치료효과를 위해 규모의 경제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지방의료 발전을 위해 대규모 시설과 장비를 갖춘 병원을 짓는 것이 우선이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개별 병원의 수익에는 도움이 될 지 몰라도, 사회적 관점에서 적절한 자원 배분이라고 얘기할 수 없고, 외국 사례를 봤을 때도 의료서비스의 질적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기준과도 동떨어져 있다. 무엇보다 병원에 있어서도 경쟁이 있어야 하며, 진료권별로 병상 규모를 제한하는 것은 몰라도 여건이 개선되면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는 일들을 특정 집단에 아무런 경쟁도 없이 맡길 이유는 없다.
어디나 마찬가지이지만, 공적 재정은 공적인 변화나 혁신이 나타날 수 있는 방식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기피 분야의 인력 부족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건강보험 수가 인상도 필요하지만, 관련된 사회 문제에 개별 기관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진료권별로 현실 문제와 관련하여 지원될 수 있어야 한다. 기피 분야든 지역의료든 기관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현실 문제가 개선되면서 변화나 혁신이 나타나지, 이론적인 전문 분야별로 국가 재정을 배분하면, 국가 재정과 관계없이 나타날 만한 전문분야의 기술 발전이나 강조하거나 이념적인 논쟁만 늘어나지, 사회의 변화나 혁신에는 방해만 될 수도 있다. 사회 문제에 협력할 의지가 있는 병의원의 입장에서도 전문분과별 정치 싸움에 참여하는 것보다 지역의 문제에 참여하면서 여러 기관과 다양한 관계를 맺는 것이 정치적인 안정성을 높이는 것이며, 자율성을 높이면서 변화와 혁신의 가능성이 더 높다.
고혈압당뇨병등록관리사업도 초기 특정 지역 전체에서 병의원과의 연계를 기반으로 보건 사업이 나타난 것이 혁신이며, 그 이후는 당시에 나타난 일들을 기반으로 한 연구 사업에 가깝다. 심뇌혈관질환 센터도 의료진이 문제로 받아들인 기관 내 급성기 치료과정의 개선만이 공적인 혁신에 가깝고, 다른 전문 질환센터도 잘 설정된 공적 문제가 개선된 것만을 효과로 이야기할 수 있다.
코로나 시기처럼 정치 논쟁을 만들어내고 국가 예산을 따내서 내부 집단 내에서 정당화시키는 것은 이를 유지하기 위해 불필요한 논쟁이 끝없이 이어지기 마련이고, 시간이 지나면 불필요한 자원과 에너지 소모가 심해진다. 결국 이러한 정치 논쟁이 심해질수록 조직과 개인의 자율성을 떨어뜨리면서 정치적 불안정도 심해지는데, 이런 방식으로 변화나 혁신이 지체되면 코로나가 감기라는 이야기도 못하게 된다. 코로나 이후에 만들어진 정치적인 지원 속에서 대규모 의대정원 증원과 여러 분야에 국가 재정을 지원한 것만으로 공적인 부문의 변화가 나타나지는 않는다. 여러 전문 분야에서 세부적인 문제를 가지고 언론을 통해 끝없이 논란을 만들어내고 있으나, 해결방법과는 동떨어진 논쟁들이다. 어차피 의료 부문의 변화나 혁신은 단기간에 나타날 수가 없고, 이를 유도하기 위한 법이나 제도를 명확히 하는 것이 더 낫다.
코로나 시기에 자신들의 행동이 비판받는다고 생각하는지, 말그대로 모든 집단이 각자도생이다. 코로나 시기부터 국가 정책에 밀접하게 관여한 전문가 집단은 이번 사태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데, 자신들의 정치적 생존을 위해 세부적인 문제에서 온갖 논란만을 만들어내면서 변화나 혁신을 막는 방식으로 행동을 지속하고 있다. 이제는 2000명을 막는 것을 정치적 성과로 이야기하기도 하는 것 같으나, 이미 전공의는 사직했고 의대생은 그만둔 마당에 그런 일을 성과로 보기는 어려운데, 애초부터 정해진 수순이었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국가기관의 행동인데, 저들과 영합한 복지부나 질병청은 전폭적인 지원 속에서도 끝없이 논란만 만들어내면서 자신들의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한 일만 하고 있을 뿐, 국가기관으로서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할 일이 없으면 돈 더 준다는 얘기 그만하고 적당히 마무리라도 해서 부족한 인력 상황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는 의사들이나 좀 도와주는 게 낫겠다.
일반적으로 감염 유행과 같은 위기 상황이 지나가면 집단에서 불필요한 일들이 정리가 된다. 이번 겨울에도 독감 예방접종을 한다고 홍보하고 있던데, 어떤 일들이 나타나더라도 결국은 정리가 될 수밖에 없다. 더이상 비합리적인 집단 공포는 생길 수가 없는데, 아무리 잘해도 감염 관리 업무는 지나고나면 푸대접받는 일이 흔한데, 이정도 행동을 했으니 어떻게 될지 예상조차 하기 힘들다.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이번 위기를 지나가는 것이 전반적으로 기본적인 일들을 점검하면서 발전으로 나아갈 수 있는 분명한 기회이다. 이제와서 코로나가 감기라고 하면, 훌륭한 사람들이라고 해주면 될 것인데, 자동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현실 문제와 동떨어진 일들로 복잡한 지식을 자랑하면서 싸우고 있으면, 전문가를 존중해주면서 무슨 일을 할 것인지를 물으면 될 것이다. 국가 권력과 재정은 무슨 일을 하는 사람들한테 배분해야 하는데, 이미 의료시스템이 잘 발전되어 있어서 연구 외에 전문 분야별로 재정을 배분할 일들은 그리 많지 않다.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면서도 진료권별 문제에 맞게 어느정도 자율성을 가지고 의사결정이 될 수 있도록 해야 공적인 관점에서 필요한 변화나 혁신이 나타날 수 있다. 코로나 시기에 생긴 저 헛바람들이 사라지는 시기이니 원칙을 지키는 것을 넘어 여러 분야에서 변화나 혁신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저 헛바람들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보니 이렇게 기분이 좋을수가 없다. 나도 헛짓 그만하고 내 일이나 하러 갈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