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은 써먹기 나름이라

by 배상근

기초 과학이나 철학과 같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지식이라도, 여러 사람의 행동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향을 주고 있기 마련이다. 어떤 집단의 문화 속에서 형성된 행동 양식들은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행동하면서, 축적되어온 지식들이 현실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 나타나는 개별 사건들에서는 지식도 자원으로 봐야 하는데, 어디에서나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개인이나 사회의 변화나 혁신을 일으키고 확산하는 데 쓰일 수도 있고, 이를 가로막는 데 쓰일 수도 있다.

의료체계에서는 지식도 자원으로 보는데, 정책에 참여하는 전문가 집단은 지식이 아니라 행동으로 판단해야 한다.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사람의 행동이고, 지식은 시설이나 장비와 같은 자원에 가깝다. 지식으로 특정한 관점의 이야기로 정책을 꾸며주기도 하고, 현실 문제의 해결방법과 무관한 논쟁을 만들어서 대중의 관심을 유도하면서도 시장 수요를 창출할 수도 있다. 연구결과는 훌륭하더라도 외부로 정책을 얘기할 때에는 온갖 통계와 수치를 내세우면서 시골의 규모가 작은 병원은 실력이 없다고 비난하지를 않나, 방송에 나와서 자신들이 잘하는 한가지 관점의 방법만을 강조하면서 현실 문제를 가리는 것이 현재 전문가 집단의 행동이다. 정책은 집단적인 변화를 일으키게 되고 여러 집단의 반대에 부딪치게 마련인데, 자신들이 속한 집단에 유리한 내용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정책 실행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요즘은 행정부나 전문가 집단은 정책 상품을 만들어내는 공장인 거 같고, 대통령이나 정치인인 상품을 구입하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저게 도대체 뭐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복잡한 제도와 참여 제한

제도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참여를 제한하게 되고, 변화나 혁신을 가로막는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 저소득층 노인에 대한 기초 연금을 도입하였으나, 최저생계비 보장 수준이 낮고 사회 전반적인 복지제도가 미흡하니, 목적이 불분명하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제도를 개선하려 해도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알기가 어려우니, 이는 생계를 위해 다른 일에 종사해야 하는 일반 사람들의 참여를 제한할 수 있다.

건강보험의 보험료에는 집단적으로 위험을 모아 건강한 사람들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의 비용을 보조하는 의료보험의 본질적인 기능도 있으나, 소득별로 차등을 하기 때문에 소득 재분배 기능도 있다. 일반적으로 사회가 일정수준 이상으로 발전해야 의료서비스가 필수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고,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기업이나 마을 등 조직에서 복지서비스의 하나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도를 바꾸려 할 때는 기능이 중복되어 있으면 고려할 요소가 많으니 논란도 증가하지만, 정작 참여는 제한하는 효과가 있어, 필요한 변화를 가로막을 수 있다.

사회가 다원화되고 제도가 복잡해질수록 지식으로 사회 변화에 도움이 되려면, 현재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이 공적 목적에 부합하는지를 간단하게 설명해야 한다. 결국 공공부조는 사회적으로 합의되든 합의되지 않았든 National minimum 수준에 적정한가로 귀결될 수밖에 없고, 건강보험은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질병이나 사고 위험에 대처하기에 보장성이 충분해야 하는데, 정책 내용에서 이를 일반인도 알 수 있도록 설명되어야 추진 동력을 얻을 수 있다. 위에 제시된 내용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복잡하게 나타나고 있는 여러 제도 자체를 단순하게 설명하고 제시하는 것 만으로도 사회 변화에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 문제가 제기되면 언론을 통해 자극적인 이슈를 의도적으로 만들면서도 손쉬운 해결방법은 제시하지 않고 힘있는 조직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법 만을 얘기한다. 언론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당과 광고비를 대는 기업이 관심을 가질만한 얘기들을 보도하기 마련이다. 정치경제적으로 갈라진 여러 집단의 경쟁이 나타나는 상황에서, 여러 전문가 집단은 각자 자기가 소속된 집단에 충성하면서 이를 지식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결국은 지식이 아니라 행동으로 판단해야 하고, 정치 권력은 공적인 행동을 하는 개인이나 조직에 주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어떤 목적을 위해 어떠한 행동 방식을 취하는지, 때로 현실의 조건이 고약한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했는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대체로 지식인들이 변화를 일으킨다기 보다는 생존이 절박하거나 이를 일로써 받아들인 사람들이 움직임을 만드는 것이고, 지식으로 이를 잘 설명해줄 수 있으면 사회 변화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누구라도 자신이 업으로 받아들인 일이 아니면, 전쟁이 아닌 이상 그런 행동이 일상적으로 나타날 수는 없다.

요즘은 기업이든 노동조합이든 모두 그럴듯한 지식을 내세우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에 상품 팔듯이 정치적 주장을 한다. 어떤 명성이 있는 사람이나 조직을 앞세워 지식을 얘기하지만, 결국은 현실에 결과로 나타날 수 있는 변화를 살펴볼 수밖에 없고, 사람이나 조직의 명성이나 어떤 지식의 탁월함은 고려할 요소가 아니다. 언론을 통해 이슈가 만들어질 때마다 정치적 세력의 확장이나 시장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유명인이나 지식을 이용하여 그럴듯한 이야기나 이미지나 만들어내는 것은 사회 발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우리나라처럼 이미 먹고살 문제가 없는 나라에서 지식인들은 이러한 변화를 막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하는 행동이 없다

코로나 시기에도 초기 대구 시기를 제외하면 전문가 집단은 어떤 일도 한 것이 없다. 방역 정책과 산업에 의해 정치경제적 이권이 주어진 이후에는 이를 옹호하는데 여러 집단이 앞장섰다. 방역 정책에 대한 찬성도 반대도 초기에 나타났지만, 이후에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심지어 오미크론 이후에도 방역 정책이 유지되는 가운데, 서로 자신들의 지식 자랑만 늘어놓았다.

이번 의대정원 사태도 마찬가지다. 초기에 2000명을 호기롭게 꺼내놓은 것을 완전히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고, 여기에 반대해서 전공의나 학생들이 반대하고 나선 것도 마찬가지로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후에 무슨 게임하듯이 서로 지식 자랑을 하면서 잘났다는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다. 정책 방향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는 일은 이를 내놓은 전문가 집단도 공무원 조직도 하지 않고 있다. 어차피 벌어진 일이고 진행될 것은 분명하니, 우리 조직의 능력을 홍보하면서 주도권을 유지하려는 행동 뿐이다.

이번 정책에 찬성한 지방대학병원들은 말그대로 초토화가 되고 있다. 언론에서 저 찌질이같은 빅5병원들을 홍보하는 것을 보고있으면 코웃음이 나올 지경이지만, 자기들의 이권은 기가 막히게 챙기는 조직들이 하는 일은 조금도 없이 말같지도 않은 홍보는 끝까지 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치권 상황에 맞게 공공-민간으로 나누어서 각종 문제를 정치 싸움에나 활용해먹던 사람들이 이슈가 터지니 대학, 병원, 제약회사, 학회 등을 총동원해서 마지막까지 동일한 행동을 반복할 기세이다. 그동안에 의사 부족 문제가 심화된 지방병원들은 내년까지 해결될 방법이 없으니 버티는 것 뿐이고, 다른 방법이 생길 수가 없다. 이 상황에도 방송에 의사들이 나와서 말같지도 않은 지식 자랑을 노골적으로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더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하기야 나도 오미크론 시기나 일부 몇가지 글을 제외하면 별로 변화가 나타날 만한 행동이 별로 없다. 쓸데없는 오지랖에 지금까지 글을 쓰고 있을 뿐이지만, 그래도 이런 글을 쓰는 것이 별 효과가 없다는 것 정도는 안다. 아직도 본인들이 무슨 개혁이라는 것을 한다는 식으로 얘기하고 있는 것을 보고있으면, 코로나 이후로 의료 사태가 왜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지를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전공의나 의대생 대표들이 하는 행동도 모두 선배들한테 배워서 하는 행동들인데, 하는 일 없이 조직 홍보나 하는 것은 웰빙정치이고, 개인 의원들이 참가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제정신이면 저런 행동을 따라갈 사람은 없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그래도 훌륭하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이번 정책을 추진하고 밀어부친 대통령이나 지방대학 총장들이다. 어차피 예상된 반대는 각오하고 있었던 것이고, 증원된 숫자가 줄어들 것도 정해진 수순이다. 예상을 뛰어넘는 것은 전문가 집단과 공무원들의 무능과 찌질함이다. 전공의나 학생들이 나가있는 상황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화려한 지식을 늘어놓으면서 하는 일은 조금도 없이 소속된 조직의 홍보만을 하고 있는 것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웰빙정치가 나타나는 방식을 너무나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각종 세부항목을 늘어놓으면서 저 조직들이 지식 자랑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고 있는 복지부는 아무리봐도 일을 막으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 이후로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개인이나 조직에 대한 비난, 심지어 특정 지역에 대한 비난 등을 서슴치 않고 있는데, 그렇게 한다고해서 이미 각오하고 한 일들을 진행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전공의나 학생들은 내년에라도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 저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바꿀 능력이 없어서 저러고 있는 것이지, 의도적으로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감염 위기시 코로나가 감기라고 하는 것도 능력이고, 집단의 변화나 혁신을 주도할 만한 행동을 하는 것도 능력이다. 지금이라도 분명하게 정책 대안을 제시하든지 아니면 적절한 수준에서 합의하고 끝내든지 해야하지만, 이도저도 안하고 있다. 전공의나 학생 대표들도 하는 행동이 비슷한데, 저런 행동을 따라간다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고 시간만 낭비한다. 자신이나 소속된 집단의 정치경제적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은 평생토록 해온 일이라 끝까지 할 것인데, 능력을 키워서 남들이 반대할 만한 일도 시도하는 것은 몰라도 웰빙정치는 따라할 만한 일이 아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자기 일은 스스로 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