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의료계가 제일 나은 거 같은데

by 배상근

요즘 정치나 언론, 법조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의료계가 제일 나은 거 같다. 아무리 정치적으로 사건들이 생겨도 집단적으로 기본적인 의료 기능이 발현되는 데에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법률 기관도 법에 쓰여진 내용만을 지키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기반으로 현실에서 행동들이 나타나 사회 질서가 유지되어야 하고, 언론도 사실 보도만을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의사소통 기능이 되어야 하며, 정치도 하나마나한 정치 이론이나 얘기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변화를 이끌어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게 지금 현실에서 구현이 되나.

경제 관료 출신인 권한대행은 기재부 조직에서 정치와 경제 분리라는 헛소리를 해주니, 국방부나 경찰조직이 정치적인 영향을 받아 경호처 지휘권을 뒤흔드는 데도 가만히 보고 있고, 일개 법원이 사법질서를 뒤흔들고 있는데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다. 기본적인 법질서가 무너지는 데도 가만히 쳐다보고있는 저런 행동들이 모여서 사회 질서를 무너뜨린다. 법에 명시된 일이라도 사람들의 행동으로 현실에서 구현되어야 사회 질서가 나타나는데, 지금은 법에 의한 질서가 무너지면서 사회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넘어 행정 기능조차 권력에 의한 무질서로 퇴행하는 중이다. 애초에 국회에서 다수당이 행정부에서 요구한 주요 예산을 아무런 논리도 없이 대거 삭감한 것 자체가 전례가 없는 일이고, 이는 삼권 분립 위반이다. 법 규정으로는 가능하다고 해서, 법이 목적으로 하고 있는 기본적인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 정당화되지는 않고, 법 질서를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권력을 쓰는 것은 정치적인 변화나 혁신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제는 정치 갈등이 극심해지니, 멀쩡하게 돌아가던 행정 조직 내부 질서마저 무너뜨리고 있다.

우리나라 언론은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다. 이번에는 대통령 지지율이 다시 오르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던데, 온갖 세부적인 법조항들을 얘기하면서 자극적인 얘기들만 하고 있다. 경찰에서 대통령 경호처장을 조사하려 하지만, 경호 임무를 이유로 거부하고 이후의 결과는 책임을 지겠다고 하고 있다. 이는 정치적으로 대통령을 옹호하는 것 여부에 관계없이, 정치적 압박 속에서도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는 것이고, 이번 탄핵 사태와 관련되어 정치인들을 제외하고 개인의 의지가 나타난 유일한 사건이다. 최소한의 잔머리라도 있으면 민주주의 파시즘을 하다가도 저런 사례라도 꾸며줘야 넘어갈 수 있을텐데, 이제 그런 일도 안한다. 이제 대통령 지지율이 올라가는 것 같으니, 나중에 요상한 권위주의 파시즘도 할 거 같은데, 참으로 가관을 볼 거 같다. 이미 자신들의 수준이 바닥으로 떨어진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다.

의사는 겉으로보면 고수익 상위계층처럼 보이지만, 알고보면 고급기술을 적용하는 생계형 현장직 노동자에 가깝다. 어디나 비슷한 문제가 없을 수는 없지만, 일의 특성상 권력이 평등하게 분배될 수밖에 없고, 상대적으로 큰 문제들이 누적될 가능성은 낮다. 군대나 경찰 등도 자본에 의해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은데, 이는 운영 목적에서 지휘명령체계를 충실히 따라야 하고, 이를 철저하게 교육하고 훈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종교가 아닌 이상, 개인의 수련을 강조할 수 있는 조직은 별로 없는데, 일 자체의 특성에서 윤리 의식이 강조될 수밖에 없기도 하다.

현실에서 각각의 조직이 운영되는데 중요한 것은 한명 한명이 충실하게 교육 수련이 되어있느냐이다. 어떤 조직이라도 유사한 문제들이 생기게 마련인데, 이에 대처할 수 있을 정도로 수준이 안되면 공들여 만들어놓은 일들이 한번에 무너질 수도 있다. 특히 고위직에 올라갈수록, 독립적인 업무를 할만한 직위에 있을 때 이런 일이 생기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전공의나 의대생들은 빨리 돌아와야 하는데, 정치는 많은 수련이 필요한 일이고, 정치인들도 일로써 인생을 걸고 할 것이다. 집단으로 모여서 아무리 얘기해봐야 의사가 되어서 일하는 것보다 중요하지 않다. 집단으로 의견을 표명하는 정도만 해주면 나머지 조정하는 일들은 정치인들이나 공무원들이 하게 마련이다. 하는 일이 없으면 돌아와야 되는데, 언론이 자극적인 이슈를 만들어내면 정치인들도 지지층을 대변하고, 기업은 자신들의 이익을 주장하고, 대학 교수들은 지식을 자랑하고, 시민단체는 민주주의를 얘기한다. 그러나 하는 일이 없으면 자기맘대로 안되면 연예인 내세우고, 명태균 같은 사람이나 내세우는 것과 행동이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의대정원 2000명을 내세웠다가 줄이겠다고 하는 식으로 정치 기술을 발휘하는 것까지는 그렇다 하더라도, 문제는 이후에 의료분쟁 조정, 병상제한, 의료광고 제한, 건강보험 지역별 분리 등 다른 일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이다. 전공의와 의대생을 내세워서 학교 교육과 수련을 엉망으로 만들어낸 이후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나, 2000명을 주장했다가, 줄이겠다고 했다가 세부 영역의 사업들을 우르르 얘기하는 것이나, 명태균을 내세우는 언론의 파시즘 쇼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데, 해당 영역의 관점에서 하는 일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냥 대충 훌륭하다고 해주면 된다. 니가 힘이 세구나, 돈이 많구나, 지식이 많구나, 이야기를 잘 만들어내는구나.

그런데 아무리봐도 지금까지는 의료계가 제일 나은 거 같은데, 이는 공식적인 정치 행위를 능숙하게 한 것이 아니라, 병의원에서 자신들의 일을 충실히 하기 때문이다. 권력과 자본, 언론 등이 똘똘 뭉쳐서 엉망진창을 만들어내는 데도 버티고 있는 것은 의과대학 교육과 전공의 수련과정이 충실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의료 기능이 사회에서 집단적으로 발현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런 일을 할 것이 없으면 빨리 끝내기라도 하는 것이 나을 거 같다. 아무런 기대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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