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나 진보에 대한 개념은 대부분 유럽이나 미국에서 발달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나타나는 사건들을 설명하기에는 적절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사전적 의미로 보면 보수는 전통적인 제도나 가치를 지키고 보전한다는 것이고, 진보는 기존의 제도나 가치를 지키는 것보다는 변화나 개혁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당들의 행태를 외국에서 발전된 개념에서 세부 항목들을 분류해서 보면 여러가지가 섞여서 나타나기 때문에 보수당, 진보당을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정당이나 개별 정치인들의 행동이나 말을 포괄적으로 보고 우리나라 사회의 기준에서 전통적인 제도나 가치를 지키는 것을 중시하느냐, 변화나 개혁을 중시하느냐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그런데 현실에서 나타나는 사건이나 사람에 대해서 보수나 진보의 기준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데, 우리나라와 같은 유교 문화권에서 이를 기준으로 행위가 설명되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철학적인 의미에서 변화나 혁신의 관점에서는 전통적인 가치를 잘 지키기 위해 행동을 해도 사회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고, 새로운 시도를 통해서도 사회 발전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 개별 사건이나 사람의 행동에서 드러나는 여러가지 결과로 보수나 진보의 스펙트럼을 구분할 수는 있겠으나, 이보다는 사회 전반의 발전을 이끌어나가고 있는가를 보는 것이 오히려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방법을 선택하고 행동으로 이어지느냐 하는 것은 사람마다 성향이나 생각이 다를 수 있어서 이를 통해 옳고 그름을 얘기할 수는 없고, 높이를 얘기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우리나라는 진보나 보수를 구분하면서 서로 편가르기를 하는데 써먹는 경우는 많아도, 자신의 의견을 명료하게 얘기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누군가가 보수나 진보라고 얘기를 하면 저 사람이 어떤 집단에 포함되어 있는가를 나타낼 뿐, 이념이나 생각을 드러낸다고 얘기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가족이나 사회 내에서 사람들 간의 관계와 같은 부분에서는 매우 보수적이지만 시장에서 경쟁하는 경제 활동에서는 변화를 매우 빠르게 수용한다. 사회 문화 자체가 그다지 이질적이지 않은데, 정치에서 보수, 진보로 나누어서 싸우는 걸 보면 편가르기말고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기 어렵다. 그냥 차라리 구체적인 정책 내용을 보고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변화시키려 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나은데, 어떤 방식이 더 나은지를 판단하는 것은 사람마다 성향의 차이가 있고, 개별 사건마다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골치아픈 일은 좌우를 나누면서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편가르기에 써먹는 일이다. 대부분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고 싶은 사람들이 집단을 나누어 변화가 나타나는 것을 막기 위해 저런 행동을 한다. 과거 우리나라 운동권이 비판을 받는 것도 이런 이유인데, 현재 나타나는 전반적인 행동은 극단적인 보수주의인데, 구체적인 정책이나 행동은 설명하지 않은 체로 자신들이 익히고 갈고 닦은 정치 기술만 쓰면서 이권만 지키려 한다. 언론, 대학, 기업 등의 홍보 전략에서도 이야기 만들기나 이미지 정치를 하기도 하는데, 외국에서 들여온 개념으로 좌우를 나누든 이미지 정치를 하든 현실과 연결되지 않으면 하는 일 없이 먹고 논다고 한다.
가끔가다 극단적인 보수나 진보에 대한 얘기도 하지만, 이런 행동도 마찬가지로 정치적인 이념 구분보다는 구체적인 정책 내용이나 행동을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이번 대통령의 계엄이나 야당의 정부 예산 자르기와 탄핵 사태에 대해서도 이러한 행동을 통해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변화시키려 했는지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대통령의 계엄은 그동안의 관례를 깬 것이지만 쓰여진 법 규정을 어겼다고 보기는 어렵고, 정치적으로는 능숙하게 보여지지 않지만 야당의 행동에 대비하면 법 질서를 지키기 위한 의도는 명확하게 보이고 있다. 진보를 표방하는 야당의 행동은 삼권 분립을 무시하고 있으며, 계엄 이후에는 법 질서를 깨는 일부 고위 관료들과 결탁한 행태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일부 특정 집단의 이권 지키기에나 관련된 행동이지, 민주적 질서를 지향하는 정당의 행동이라고 보기 어렵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언론의 극단적인 선동 행태에 제동을 걸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사회적 권력을 가지고 있는 특정 집단의 이권 지키기에나 관련이 있지,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때로 모든 사람이 극단적이라고 얘기해도 사회 발전에 필요한 경우가 있다. 전쟁이 나면 어찌하고, 감염 유행이 터졌는데 전파를 막을 수 없는 경우는 어찌할 것인가. 그냥 대놓고 밀어부쳐야 할 때가 있다. 구체적인 내용과 행동을 보고 판단을 해야 하고, 보수, 진보와 같은 이념으로 설명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