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을까

by 배상근

우리나라는 민주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중앙의 권력이 실질적인 위협을 받았던 적이 없다. 우리나라의 산업화는 중앙집중식으로 진행되었고, 다른 나라의 사례들을 고려해서 철저한 검증을 하면서 실행했기 때문에, 제도적 혁신과 함께 그 과정에서 일반 사람들에게 경제적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면서 사람들의 의식도 바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민주화도 달성되었다. 민주주의 제도가 성숙되는 과정에서 어느 나라도 순탄하게 진행되지는 않는데, 우리나라는 시민들의 결집과 의사 표현이 영향을 주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정치적인 혁신에 있어서는 중앙 권력이 이미 그 방향으로 가고 있는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하나 보탠 정도였지, 방향을 바꾸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까지는 서구의 경험에서 어느정도 정립된 근대 국가의 발전 단계에 맞게 국가를 운영했다고 볼 수 있고, 정치 경험이 풍부하고 권력을 능숙하게 다루었는데, 전반적인 국가의 방향에 있어서는 전직 대통령과 완전히 다르게 이끌고 간 적이 없었다.

그러나 서구에서 흔히 발견되는 시민들의 결집과 요구가 국가 운영의 방향에 영향을 주고 서로 경쟁하면서 정치적 변화나 혁신이 나타나는 것이 실질적으로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민주주의 제도가 처음으로 나타난 서구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충분히 겪었고, 나라마다 역사적 경과와 조건에 따라 다양한 경로와 특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역사적 경로에서 결정적으로 없는 것은 이러한 시민들의 결집과 이에 의해 국가 운영의 방향이 바뀌어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는 경험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사기에 가깝고, 그 이후에 적폐 청산으로 정치가 달라진 것은 없다. 몇 번의 정권 교체가 있었지만, 이 과정에서의 경쟁으로 국가 차원에서 정치적인 변화나 혁신이 나타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서구 민주주의 정치의 관점에서 보면,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가 민주적 제도의 경험이 가장 풍부하지만, 민주주의의 장점을 확실히 취하기에는 아직은 경험이 부족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계엄 사태에서 있었던 일들 중에 백골단 사건이나, 서부 법원 침입 사태에서 나타난 젊은 사람들이 가장 안타깝고 아쉽다. 수사기관이나 법원의 행동은 명백한 범법 행위이고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었는데, 여기에 확실하게 저항한 사람들을 옹호한 의원은 비난받았고 법원에 침입한 사람들은 수사받는 신세이다. 이번 계엄 사태에서 반대에 초기부터 가장 앞장서고 있는 윤상현, 김민전 의원은 모두 미국 대학에서 정치학 전공으로 공부한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정치에서 이런 방식의 행동이 일부라도 성공했었으면 장기적으로 두고두고 좋은 영향을 미쳤을 것인데, 이론적으로 민주주의 제도 운영에 이러한 일들을 일상적으로 경험할 수 있어야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언론이 이야기를 만들어서 억지로 민주주의처럼 꾸며내서는 제도가 성숙할 수가 없다. 이번에 사회적 결집이 나타나니 여러 영역에서 젊은 사람들의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다양한 결실들이 나타났으면 좋겠다.


과거에 김영삼 대통령이 하나회에 소속된 장성들을 한번에 척결할 때, 이를 훌륭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는 전두환이나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 여러 사건들이 나타나면서 시민들의 민주적 의식과 역량이 높아졌고, 그런 상황에서 권력이 교체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이러한 일들의 기반을 만든 것은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초기 제도 설계를 충실히 하면서 경제적 기회가 고르게 주어지고 경제 발전 과정에서 여러가지 정치적 발전도 함께 나타났기 때문이다. 오히려 권력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사회 변화가 너무 빠르게 진행된 것이 IMF 사태를 불러온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는데, 하기야 지금처럼 오랜기간 정치적 변화나 혁신이 나타나지 않는 상황에서는 저런 시기가 그립기만 하다.

국가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정치적인 변화나 혁신이 온전하게 전파되는 것이다. 경제적 기회가 고르게 주어지고 사회적인 불평등이 감소하는 것도 정치적 변화나 혁신의 결과물인 경우가 많은데, 어디에서든 누군가가 했었던 일들이 사회적으로 전파되어 다른 사람들도 익혀서 자신들의 일에 이용하게 되면 조직이나 사회가 변화하고, 제도도 이를 반영하면서 바뀌게 된다. 코로나 시기에 방역산업과 공포마케팅이 유행처럼 퍼졌지만, 오미크론 이후에 여러 사람들이 집단 유행에 대처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은 정치적인 변화나 발전, 혁신으로 볼 수 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특정한 문제를 온전히 해결할 수 있고 이를 여러 사람들이 익혀서 역량이 높아지면 이것이 정치적 변화나 혁신을 일으킬 수 있다. 원래 감염 유행은 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조직이 소통하고 내부 기강이 세워지는 데 도움이 된다. 대부분 정치적인 변화나 혁신은 전쟁에서 나온다고 하는데, 위기 상황을 집단적으로 극복하는 과정에서 작은 일이지만 조직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코로나 관련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저 마무리될 때까지 이어줄 수 있으면 되는 것이었는데, 이렇게까지 오래 글을 쓰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코로나 방역으로 많은 자원이 투입되면서 정치적, 경제적 힘의 균형이 바뀌었기 때문인데, 이를 제대로 인지할 수 없었던 것도 있고, 그전부터 이어진 여러가지 사회적 문제들이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함께 노출되었던 것도 있었던 거 같다. 어차피 모든 사람들이 불가피하게 익혀야 하는 상황이었고, 내용을 설명하는 거 외에는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일도, 할 일도 없었다. 지금처럼 사회에 혼란이 초래된 상황이 아니라면, 의사들이 집단적인 일을 익히는 데 단기간에 경험하기 좋은 일 정도로 보면 된다.

대통령의 계엄은 선거에서 정당하게 선출된 공식적인 대표자가 권력을 사용한 것이고, 이후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회적 결집이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다만, 이번 사건이 정치적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사회 여러 영역에서 사람들의 행동 변화가 나타나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치적 변화나 혁신은 전쟁이나 위기를 극복하는 데서 오는데, 이번에 나타난 사회적 결집이 여러 분야에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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