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에 대하여

by 배상근

예전에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10000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책이 나온 적이 있다. 재능과 노력 중에 어떤 것이 중요한 지는 어린 시절에 많이 얘기하는 주요 주제다. 그러나 이론적으로는 그런 단순한 계산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쟁이나 경쟁에서 능력이 생긴다고 나온다. 국가는 전쟁으로 만들어지고, 개인의 능력은 생존하기 위한 경쟁에서 길러진다. 경제적인 기회와 유인에 의해 사람의 능력이 발전할 것처럼 보이지만, 반복적인 일로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사람의 능력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기회에서 새로운 일을 시도하고 경험을 쌓으면서 능력이 높아진다. 요즘은 AI가 나와서 사람의 창의성도 발휘하는 것처럼 얘기하지만, 여러 분야의 따라하기 기술을 모아서 하는 것일 뿐, 사람의 고유한 일은 대신할 수 없다.


어린 시절에 남자 아이들이 많이 하는 농구, 축구 같은 운동을 꽤나 많이 한 편이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운동에는 소질이 별로 없어서 잘 늘지가 않았다. 그러다가 중학교 2학년 때쯤에 같은 반 친구들 중에 농구하는 애들이 생겨서 1년 정도는 매일 어두워서 공이 안보일 때까지 농구를 하였는데, 이후로는 다른 운동을 해도 기본은 했었던 거 같다. 이 친구들과 오래 했으면 농구도 더 잘했을 거 같은데, 고등학교 갈 때에 전부 여러 학교로 흩어진 이후에는, 그저 취미로 했었던 지라 내 농구 실력은 거기서 끝이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동아리를 가입해야 하는데 처음에는 농구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운동은 어릴 때 어느정도 충분히 했기 때문에 아무런 욕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동아리에서 열심히 해서 실력이 늘었던 친구도 많았었는데, 지금도 같이 어울려 놀면서도 농구를 더 열심히 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운동에 재능은 없는 애가 열심히 뛰어다니다 보니 가장 많이 늘었던 것이 수비이다. 되돌아보면 한참 몸이 건강할 때의 수비력은 꽤 괜찮았던 거 같은데 동네 농구에 너무 심하게 하면 게임이 재미없어지고 욕 먹어서 친한 친구들 외에는 제대로 했던 적은 별로 없다. 그런데 동아리 등에서 성인이 배우면서 가장 안 늘고 가르치기 어려운 것이 수비이다. 무엇이든 어느정도 제대로 하려면 숙달될 때까지 신경써서 해봐야 하는데, 원칙도 없는데다 대충해서 익힐수도 없기 때문이다. 프로 선수라면 몰라도 동아리 생활에서 공격 기술이 느는 것은 본 적이 있어도 수비가 느는 것은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예전 미국 프로농구 유명선수가 수비시 손으로 땅을 짚기도 한다고 들은 적이 있는데(당시에 TV에서 미국농구가 안 나와서 본 적이 없다), 극단적으로 자세를 낮춘 상태에서 공격적으로 수비하면서 방향 전환에 대응하려면 필요할 수 있다. 한참 밥먹듯이 농구하던 시절에는 몸도 갖춰져 있고, 경기 막판에 집중력이 올라오면 저런 게 되기도 했었던 거 같은데, 고3 이후로 체중이 늘고 취미로 운동하니 저런 기술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도 게임에 들어가서 상대와 부딪치면서 상대방의 실력이나 내 몸 상태에 맞게 적정 수준의 거리를 찾고 방법을 찾는 것은 자동으로 된다. 그 시절에 매일 밥먹듯이 하다보니 익혀져 있는 것인데, 이를 다른 사람이 가르쳐줄 수는 없다. 자세를 낮춰라, 거리를 적당히 유지해라, 집중해라는 말을 할 수는 있어도 공격기술과 달리 세부적인 요소들을 나누어서 가르치는 방법이 있을 수가 없다.

바둑에서 AI가 나오니 사람의 두뇌를 이겨버린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정확하게는 바둑을 아는 사람이 컴퓨터의 계산능력을 활용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이를 이용하지 않는 프로 바둑기사들을 이겨버린 것이다. 재미로 하는 게임에 그럴 일은 없겠으나, 프로 바둑기사들이 AI 기술을 완전히 이해하여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면 현재 나오는 바둑 AI를 쉽게 이길 것이다. AI를 이용하든, 아니든 새로운 일들을 시도하고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능력이고, 이는 사람이 하는 것이지, 기계가 하는 것이 아니다.

전문 기술직이나 학위 과정이 아니라도 직업과 연결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인정은 현재 동일 직업에서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형성될 것이다. 공식적인 자격증이나 전문 기술, 지식이 없어도 충분히 밥값을 하고 있으면 능력을 인정받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인정을 받지 못할 것이다. 법이나 의료처럼 사회적 기능이 있는데 제 기능을 못하면 사회적 비판이 나타나는 것처럼, 직장에서 요구되는 일이 진행이 안되면 조직 내에서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특수한 기술이나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나 조직 내에서 합리적으로 요구되는 일을 하면서 능력을 인정받는다. 기술이나 지식이야 배우면 되지.


요즘은 대통령이 계엄을 하니 절차에 의해 정당화되는 법과 제도의 당연한 원칙마저 흔들리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이미 근대의 원칙들이 직장이나 생활에서 정착된 사회이다. 우리나라 방송의 예능이나 드라마를 보면 거의 조선시대 왕조 시대의 유교식 개념들을 얘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언론에서 여론몰이를 하는 것도 마치 공정을 기한다는 듯이 끝없이 편가르기만 한다. 여론조사도 제대로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이쪽이 강하면 저쪽을 올려주고, 저쪽이 강하면 이쪽을 올려주는 것처럼 나온다. 헌법 재판소도 재판을 질질 끌다가 다음주에 무더기로 선고를 하려고 하고 있는데, 이는 절차에 의한 정당화가 아니라 법을 이용하여 권력 기술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인다. 수사기관이나 행정부 수장들도 마찬가지인데, 쟤들이 도대체 뭘 하는지를 모르겠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조선시대 왕조 사회를 만들어서 경제적 기회만 나누어주면서 정치적 변화는 철저하게 막는 방식으로 권력 기술을 발휘하는데, 원래 무능하면 저런 행동을 하고, 저런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 계엄 사태에서 변화를 만들어낸 것은 대통령과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 그리고 조금이라도 국민 의견을 받아내려고 했던 여당의 몇몇 국회의원들 뿐이다. 이제서야 기존에 사회를 둘러싸고 있던 사회적 규범이 무너지고 기회가 열리니, 여러 사람들에게서 새로운 움직임들이 나타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오랜기간 축적된 노력이 없이는 변화나 혁신이 저절로 나타날 수는 없다. 요즘도 언론에서 사법 기관의 재판을 미화하고 있던데, 그렇게 한가하게 쇼나 하고 있다가는 나라가 망하는 길로 갈 것이다.

코로나 시기에 어쩌다보니 5년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는데, 우연히 일을 하면서 배운 것도 있지만, 2-3달이면 끝날 일을 가지고 권력이 주어지니 조선 시대 왕조 만들어서 차지하려는 애들때문에 얼마나 시간 낭비가 많았는지 모른다. 우리나라 조직들은 경제적 유인에 잘 반응하지만, 사회나 정치의 혁신은 정치적 경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 그러한 방식으로 일이 진행될 수가 없다. 조직이나 사회의 발전은 어떤 방식이든 틀을 깨면서 문제를 온전히 해결해야 생기지, 기존의 방식만 반복하면서 편안하게 진행될 수가 없다.

나이가 이미 마흔이 넘어가고 있으니, 아마도 일을 하면서 새롭게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무리 많아야 2-3가지를 넘지 않을 것이다. 이제 귀찮은 상황이 끝났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는데, 마지막에는 대통령 계엄에 탄핵 사태까지 기가 막힌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조선시대 왕조 만들어서 놀고 싶은 사람들이 많던데, 우리나라 언론이나 방송이 얼마나 유능한지 잘 알테니 협력해서 해보면 되겠다. 지들끼리 뭉쳐서 몇 년 동안이나 집단 권력 기술을 발휘하지를 않나, 하는 일은 없이 지식이 많다고 자랑하지를 않나. 자세를 낮추고,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집중하면 수비가 되나, 수비 방법을 잘 알면 유능한 것인가. 나도 별 능력은 없지만 저 바보들과 더이상 시간 낭비를 할 생각이 없는데.


전공의나 의대 학생들도 빨리 돌아가야 할 터인데. 세상 일이 그리 만만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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