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전공의가 끝나고 펠로우로 있던 후배를 만날 때마다, 2번은 내가 사고 1번은 후배가 사고는 했다. 그 놈이 사겠다고 하길래 그렇게 했던 거 같기는 한데, 이제는 같이 돈버는 처지에 좀 있으면 나보다 돈을 배로 벌 애들이니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다. 한 동네에서 같이 일하고 있으면 동료인데, 사정에 맞게 돈도 내고 능력에 맞게 여러가지 일을 함께 하면 되지.
만나서 먹고 노는 것이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사회에서 서로 협력하면서 일을 해나가는 것이 민주주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핵심이다. 제도적으로 면허가 있고, 일의 특성상 결국은 밥값을 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 상대적으로 쉬워 보일수는 있으나, 현실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새로운 문제들도 계속 발생하기 마련이다. 현실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서로 협력해서 해결해나갈 수 있어야 시스템도 유지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변화나 혁신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일종의 사회민주주의처럼 서로 협력하면서 질서가 생기는 것은 이러한 과정 속에서 사람들의 역량이 높아지고 신뢰가 쌓이면서 되는 것이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기간 이어진 코로나로 인한 혼란도 끝나가고 있다. 그러나 인구집단 내의 급성기 감염질환에 대한 공포는 오미크론 이후에는 사라진 지 오래인데, 코로나 시기의 방역 정책과 관련된 이권들이 여러가지 갈등을 만들어내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 중앙에 집중된 권력에서 나오는 정치, 경제, 문화 등 주류 집단들이 행동 방식이 여과없이 드러났는데, 얼마나 한심한지 눈뜨고 보기 힘들 지경이다.
우리나라 보건사업 중에서 광역 단위에서 이해관계자들의 광범위한 협력이 나타난 정책으로 고혈압, 당뇨병 등록관리 사업을 얘기할 수 있다. 암센터 등의 전문질환센터와는 달리 병원 내부가 아니라 외부기관과의 협력체계를 갖추는 것을 목표로 하면서 지역 단위에서 여러 이해관계자들 간의 협력이 나타날 수 있었다. 만성질환에서 의사의 진단과 처방 외에 행동을 바꾸는 것은 환자 스스로 하는 일이고, 행태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주요 내용은 환자에 대한 교육과 훈련인데, 다른 의료기관과의 협력이 나타났을 때의 장점은 의사가 진단하고 처방하면서 질병에 대해 상담하는 일 외에 다른 추가적인 일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환자의 행태 변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신의 질병이나 상태에 대해 아는 것이고, 이는 결국 의사의 진단과 처방인데, 의료기관과의 협력 하에 환자에 대해 교육을 하게 되면, 의사가 상담한 내용을 제외하고 추가적인 일들을 시도하면서 변화와 혁신이 나타날 수 있다. 의료기관과 협력이 없이 교육을 하게 되면, 질병을 받아들이는 것이 우선인 환자들에게 질병에 대한 얘기를 의료기관에서 했던 것과 유사하게 반복하면서 경쟁을 하는 듯이 행동할 수도 있다. 이는 겉으로는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 환자가 스스로 받아들일 일이고 하는 일 없이 놀고 먹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후에 여러 정책에 유사한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환자가 원하고 행태 변화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질병에 대한 의사의 설명이고, 추가적인 일들을 얼마나 하느냐 하는 것은 이를 진행하는 개인과 조직의 역량에 달려있다. 유사한 상담을 하면서도 의사와 동일한 설명을 하면서 추가적인 일을 하나도 안해도 아무도 알 수 없다. 뻔한 내용으로 의료기관에서 질병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고 비난이나 하는 조직도 있고, 자신들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의료기관과 협력체계를 구축하려하는 조직도 있다.
저 사업은 3년 만에 예산이 없어져서 사라졌는데, 이후에 관련된 요소들이 여러 정책에 반영되었기 때문에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에 유사 정책들이 나타났지만 광범위한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어려웠는데, 법이나 제도, 예산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중앙에 집중된 권력 구조에서의 정책 경쟁에서 나오는 얘기들은 의사와의 협력, 지역사회 협력, 인센티브 등 각종 세부 요소들과 여러 연구 결과를 근거로 이야기하지만, 처음부터 어려운 내용은 없거니와 얼마나 이해관계자들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느냐에 모든 결과가 달려있다.
코로나 초기에 어느 대학병원에서 코로나에 노출된 인턴들이 일손이 부족하니 무증상이면 격리해제를 요구하고 있다는 기사가 있었다. 신문 기사로는 미담처럼 포장해서 의료기관을 홍보하려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는데, 당시 방역에서 동떨어져 있던 사람의 마음으로는 저것이라도 밀어부쳐서 위험성이 낮다는 것을 알리는 게 나을 거 같다는 생각이었다. 당시 내부 상황을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워낙 사람들의 공포가 극심하고 지역 전체에 대한 비난이 쇄도하고 있었으니 일단 서로 협력해서 넘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장기적으로는 초기에 행동을 하는 것이 효과가 있었겠으나, 신천지 사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일단은 인구집단의 공포심을 낮추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방역 정책을 했던 것이 적절했을 수 있다. 사람들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고 공포심은 일반 사람들이 경험하면서 받아들이는 것이지, 전문가 집단의 지식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 다음인데, 임시방편인 코로나 방역을 효과가 있는 하나의 표준적인 방법으로 홍보하고 다닌 대학교수들과 방역을 권력 싸움의 도구로 만들어낸 주류 정치 집단들이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다녔다. 어쨌거나 이후에 사람들이 서로 비난하지 않으면서 경험하도록 하면 집단 내의 공포심은 사라지기 마련인데, 얼마나 이권이 많이 만들어졌는지 오미크론 이후에도 방역 정책을 유지하면서 사회에 여러 혼란을 만들어냈다. 사회에서 반발이 심하니 천천히 방역 정책을 정리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 상황에서도 자신들이 다른 나라보다 코로나 관리를 더 잘했다고 홍보를 하는 것을 보고있으면 우리나라 정치 경쟁에 참여하는 주류 집단들의 행동 방식을 알 수 있다. 자신들의 정치적 성과를 위해 집단적으로 결정해서 밀어부치는 일은 절대 양보하지 않고 결과를 강요하고 다니는데, 스스로 사람들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일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의 정치적 성과를 양보하지 않기 위해서라면 영웅놀이, 마녀사냥, 편가르기 등의 권력 기술부터 먼저 만들어놓고 시작한다. 사회적으로 윤리적 기준이 높은 것도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경제적 격차가 벌어지니 여러 분야에서 이런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그런데 대구에서 초기 코로나 사태를 넘어간 것이 어찌 전문가들이 한 일인가, 시민들이 일치단결해서 협력하면서 우연히 얻어걸린 일이지.
정치적 변화나 혁신은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경제적 성과일 수도 있고, 법이나 제도의 변화일 수도 있고, 예술 작품일 수도 있겠으나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정치적 역량이 높아지는 일은 나타나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나는 사건들은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면서 해온 일들이 쌓여서 나타나는 결과이고, 오히려 정치적 역량이 높아지는 것은 공동의 일을 하나씩 해나가는 과정에 달려있다. 젊은 시절에 여러가지 경험을 하고 고생을 하여 역량이 쌓이면 이후에도 새로운 시도를 하는데 도움이 되듯이, 서로 협력해서 공동체의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는 과정들이 쌓이면서 집단적인 역량이 높아지고 새로운 시도도 쉽게 할 수 있게 된다.
법이나 제도를 얘기하고, 지식으로 정당성을 주장하고, 이권을 준다고 해서 이미 만들어진 요소들만 반복하는 일이 협력을 이끌어낼 수는 없다. 그러나 개인과 조직이 서로 협력하면서 신뢰가 쌓이고 정치적 역량이 높아지면 법이나 제도가 없어도 질서가 생기고, 여러 분야가 협력하여 새로운 시도를 자유롭게 하고, 자원 분배도 하는 일에 따라 조정이 되게 된다. 의사의 일 외에 추가적인 일을 하면서 얼마든지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조직은 의료기관과 협력을 이끌어내려고 하지, 경쟁하려 하지 않는다. 광범위한 협력이 나타나고 신뢰가 쌓일수록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고 역량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집단 감염을 경험하면 조직이 이후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데, 매우 단순한 그 과정이 서로 협력을 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여러 보건 사업에 포함된 내용들은 유사하지만, 결과적으로 성과를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는 이를 시행하는 개인이나 조직이 이해관계자들의 협력을 얼마나 이끌어낼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변화나 혁신은 집단적으로 서로 신뢰를 가지고 협력할 때 나온다. 이미 만들어진 것을 두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분업과 경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미 만들어진 일들을 의도적으로 나누어 한다고 변화나 혁신이 나타나지 않는다. 권력으로 힘자랑을 하고 지식으로 그럴듯한 얘기를 잘 해봐야 정치적 변화나 혁신을 이끌어낼 수 없다. 정치적 변화나 혁신은 의도적으로 되지 않고, 여러가지 일들이 실현되면서 사람들의 역량이 높아지고 신뢰가 쌓이면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의료개혁을 내세우고는 의대정원으로 정치 싸움을 만들어내니, 전공의나 학생들은 1년 이상을 파업하고, 방송에는 각종 의료광고에 의사들과 약사, 여러 분야의 교수들이 나와서 지식을 자랑하고 다닌다. 전문가 집단이 지식을 얘기하면서 구조 개혁을 내세우지만, 정치적 변화나 혁신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지를 해본 적이 없으니 전혀 모르는 것이다. 사회 현실은 어떻게 되든지 자극적으로 드라마를 제작하면서 여론몰이를 하여 거대 권력에서 나오는 이권을 챙기면 되는 언론, 지식 자랑이나 하면서 자기 분야의 이권이나 챙기면 되는 전문가 집단, 상대 정치 세력만 이기면 되는 정치권, 고위공직자만 되면 사진찍기 놀이에 바쁜 공무원들이 만들어낸 결과이지만, 결국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집단적인 역량이 이 사태를 지나가게 하고 있다고 본다.
아직도 현실은 심각한데, 너무 많은 문제들이 노출되고 있다. 의료 사태로 병원에서 신규 간호사들의 취업이 어려워지고 있는데도 간호법을 추진하는 집단이 있고, 이를 정당화하면서 정치 소재로 쓰는 정치 세력도 있다. 종이 빨대로 이슈를 만들어 정책을 홍보하는데 쓰기도 하지만, 퀴어 축제로 이슈를 만들어 혼란이나 만들어내는 것이 언론인데, 저런 쓸데없는 법을 만들어내면 비용이 늘어나는 것도 문제지만, 여러 갈등을 만들어내는 소재로 쓰여서 개인이나 조직의 발전에 방해만 된다. 전국민 지원금을 주고 지역화폐(?)를 준다고 하지만, 전통시장 비난이나 하면서 기획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고, 갑자기 고속도로 휴게소에 과자 가격이 2-3 배나 오른 것은 이유를 모르겠다. 이제는 부동산도 모자라 투기 자본이 온 나라를 망치려 하는구나 싶다.
이미 경험으로 형성된 개인이나 조직의 역량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저런 현상이 늘어날수록 사회 내 구성원 간의 신뢰가 낮아지고 협력이 어려워진다. 젊은 사람들이 경험을 쌓고 역량을 높이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지만, 오히려 위기가 변화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모든 일은 하기 나름이기는 하다. 일단 그동안에 사라진 모임들을 만들어가면서 일상적인 일들을 해나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