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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영 Apr 02. 2020

1# 이제 백수가 되자

결심

다음 달이면 정든 회사를 떠난다.

누군가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퇴사 일기를 남겨보려고 한다.


입사 6개월 차, 처음으로 퇴사를 고민했다.

보통은 직무가 안 맞아서, 연봉이 낮아서 등의 이유로 퇴사를 고민한다던데 나는 약간 다르다. 내가 일하는 분야가 출연연(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의 연구소가 아니면 아이 키우기에 너무 안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아직 어린 25살, 왜 벌써 육아를 걱정하느냐 할 수도 있겠다. 아직도 분리불안이 있는 막냇동생과 결국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된 엄마를 보면서 나는 저렇게 살고 싶지 않아서다. 평생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진 부모가 되고 싶지는 않다.


퇴사를 고민하게 된 배경은 존경하던 우리 팀 책임연구원의 퇴사였다.

거의 8년 경력이었던 그분은 일과 육아를 3년째 병행하고 계셨는데, 종종 아기가 아픈데 데리러 와야겠다는 어린이집의 전화를 받고 곤란해하시는 모습을 보곤 했다. 다시 자리에 돌아와 크게 내색하진 않으셨지만 아픈 아이를 두고 일을 해야 하는 어머니의 심정은 짐작되지 않는다. 아마 많이 힘드셨겠지.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는 자주 아팠고, 아픈 아이를 돌보지 못한 나쁜 엄마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으신 것 같았다. 회사는 힘들면 파트타임으로 9시 출근 2시 퇴근을 제안했지만, 일 욕심이 있으신 분이라 일이 마무리가 덜되면 4시, 6시에 퇴근하시곤 했다. 한 번은 그분과 둘만 실험실에 남아있는데 남편이랑 싸웠다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너는 일이랑 가정 중 뭐가 우선이냐 하는 말을 들었다 하셨다. 요즘은 일보다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다며 씁쓸한 미소를 보이셨다.


결국, 큰 프로젝트가 끝남과 동시에 퇴사를 선언하셨다.


내가 일하는 분야는 조금 과장해서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기술과 이론이 쏟아진다. 잠깐 공부를 게을리하거나, 커리어가 끊긴다면 따라가기 힘든 곳인데. 8년이나 이 분야에 몸담은 사람이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럼 얼마나 쉬세요? 1년? 2년? 하는 내 물음에 그냥 작은 가게를 차리려고 한다고 하셨다.


어떤 분은 내가 석사라도 했으니까 이 나이 먹고 실험이라도 하는 거지. 하시면서도 내가 석사만 했으니까 실험만 하고 있는 거야 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그런가요 저도 대학원 갈까 봐요. 하니, 아직 25살이면 어리니까 그냥 다시 공부하는 것도 좋다고. 대신 박사까지 따라고 조언해주셨다. 지금 입학해서 석사 받고 나오면 출연연에는 석사 자리가 적으니 사기업으로 갈 텐데, 그러면 28살쯤 취직해서 30대 초반에 결혼하고 애 낳으면 그다음 내 커리어는 없을 거라고. 석사는 대체할 젊은 애들이 많으니까.


실제로 우리 회사에도 30대 초중반 여직원은 자녀가 있는 사람들이 없다. 연구소에서 근무하시다가 40대에 우리 회사로 이직하신 분은 계시지만.


학사로 연구소로 이직하기는 하늘에 별따기. 나도 알고 있다. 문제는 한국에선 정부가 내가 일하는 분야에 투자를 많이 하지 않기에 같은 분야로 학위를 받아도 연구소에 자리가 없다는 것.


선택지는 둘이었다.

하나는 학부 때 좋아하던 Neuroscience를 다시 공부해서 학위를 받는 것. 한국은 뇌연구소를 따로 둘 정도로 이 분야에는 투자를 많이 하니까.

나머지 하나는 요즘 핫한 BI(Bioinformatics)를 공부하는 것. 연봉도 높고, 석사학위만 받아도 일자리가 널렸으니까.


퇴사하는 것으로 마음이 기울자,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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