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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영 Jun 07. 2020

밥 주던 고양이에게 맞은 날

냥냥 펀치!

부뚜막 고양이를 위해 밥을 주기 시작한 이후로 우리 집은 고양이 핫플이 되어버렸다.

가끔 뒷베란다에 우리 집 고양이들이 뛰어가면 높은 확률로 길고양이들이 앉아서 쉬고 있다. 오즈랑 씩씩이는 낯선 고양이가 신기해서 그저 쳐다만 보는데, 코코는 싫은지 연신 욕을 그렇게 해댄다.


그날도 코코가 뒷베란다로 후다닥 뛰어간 날이었다. 빨래를 하려고 나도 같이 베란다로 갔는데 웬걸. 그때 본 성격 나쁜 치즈 고양이가 있었다.


어 안녕?


내 인사가 마음에 안 드는지 므라랑 거리며 나에게 욕을 해댔다. 어 그래. 미안. 투명 고양이 취급하고 빨래를 하는데 이 녀석이 계속 베란다 창문에 어슬렁거렸다. 왜 안 가지. 세탁기에 빨래를 돌려놓고 츄르를 하나 꺼냈다.


성격이 굉장한 치즈 고양이는 츄르 냄새를 지나칠 수는 없었는지 관심을 보였다. 방충망을 드르륵 열어도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집 안으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어쭈 얘 봐라. 웃기는 애네.

츄르를 조금 짜서 들이밀었는데, 치즈 고양이 반응이 웃겼다. 그는 츄르가 먹고 싶었지만 내 손과 가까이 있기는 싫었나 보다. 그 조그만 주먹으로 내손에 들린 츄르를 뺏아보겠다고 냥냥 펀치를 날렸다. 어찌나 살벌하게 치던지. 츄르 봉지에 맞았으니 다행이지 내 손에 맞았으면 피를 볼 뻔했다.


그래도 이왕 츄르 봉지는 뜯었으니 조금 맛은 봐라. 베란다 창틀에 츄르를 조금 짜 놓고 현관 앞 부뚜막 고양이 사료에 남은 츄르를 짰다. 




그의 묘생 첫 츄르 맛이 굉장했는지. 아니면 단순히 우리 집에 흥미가 생긴 건지 치즈 고양이는 계속 뒷베란다에 어슬렁어슬렁거렸다.

낯선 고양이가 신기한지 오즈가 뛰어와서 치즈 고양이를 구경했다. 자신을 구경하는 오즈가 불쾌했는지 치즈 고양이는 으르렁 소리를 냈고 오즈는 살짝 겁먹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뒤이어 구경간 씩씩이도 같은 대접을 받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코코는 달랐다.


동생들이 연달아 욕을 먹고 들어오자 코코가 나섰다. 코코는 집에 탁묘 온 고양이들을 다 두들겨 패 놓은 전과가 있는 우리 집 서열 1위다. 음. 나는 서열 0위라고 해둬야지.


아무튼 치즈 고양이는 앞서 오즈와 씩씩이에게 했던 것처럼 코코에게 얼굴을 들이댔다. 그가 으르렁 소리를 내기도 전에 코코는 므라아아앙! 소리와 함께 하악질을 했다. 내 구역에서 꺼지라는 그녀의 외침에 그는 놀란 표정을 짓고 도망쳤다.


코코는 치즈 고양이를 쫓아내고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계속 뒷베란다를 어슬렁거리며 냥냥 소리를 냈다. 코코야 걔 가지 않았니 하고 창밖을 보니. 그는 아직 뒷 베란다 주변에 있었다.



참 너도 대단하다. 싫은 소리를 그렇게 듣고도 아직 안 갔네.


귀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안쓰러웠다. 경계심이 많아서 그렇지 사람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집 고양이로 자랐으면 어땠을까. 그럼 남의 집을 기웃거리며 간식을 얻어먹고, 다른 고양이들 눈치를 보며 밥을 먹는 길 위의 삶을 모르는 채 살았을 텐데.

아니 혹시 모르지 밖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삶이 저 친구에게 행복일지도.


괜히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츄르를 하나 더 꺼내서 줬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날 때리려 했지만 용서해주겠다. 그러니 다음에 또 츄르 먹으러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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