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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영 Apr 06. 2020

3# 이사 당일, 응급실을 갔다

스트레스는 위험해

새해가 되고, 프로모션으로 회사는 바빠졌다.

하필 내가 있는 포지션의 업무만 늘어나면서 굉장히 힘든 1,2월을 보내고, 주말 출근을 두 번 했다.

포괄임금제라서 야근수당도 없고, 토요일은 주말 수당도 없는데 그래도 꽤 버틸만했다. 팀원들이 너무 좋았고 이번 프로모션 끝나면 실험에서 손 떼기로 약속했기때문!


정해진 기한 내에 데이터를 내보내야 했는데 우리 회사의 TAT(Turnaround time)은 다른 곳에 비해 너무 짧았고, 그렇다고 해서 인력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만약 실험이 망하면 울며 겨자 먹기로 주말에 나와야 했다. 분석 부서의 싫은 소리는 덤으로.

주말 출근은 내가 하는데 왜 당신들이 성질을 내지?


이런 이유로 실험을 정말 하기 싫어했고, 책임 연구원에게 사무직으로 옮겨달라고 몇 번 요청한 끝에 OK를 받아냈다. R&R을 정하는 면담에서 소장님은 연구실 운영이랑 안전관리 그리고 GMP 서류 작업 약간 서포트해주면 좋을 같다고 하셨다.


음, 그래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안전관리는 6월에 바쁘고, GMP 서류는 5월 전에 끝나니까.


세상일이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프로모션은 3월까지인데, GMP를 당장 2월 중순부터 교육 듣고 서류 작업을 시작하라는 것. 많으면 일주일에 300개도 넘는 샘플을 혼자 등록하고 혼자 실험하는데 서류 작업까지 하라고? 새로운 퇴사 압박인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샘플 등록을 잘못해서 주말에 출근을 했다. 아, 원래 주말에 이삿짐 싸고 집 정리하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이삿날에 맞춰서 연차를 이틀 더 썼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고 했다.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 때문인지, 아니면 실험하면서 화장실을 참는 습관 때문인 지는 몰라도. 이사 당일 새벽, 급성 신우신염으로 응급실을 갔다.


아픈 와중에 응급실은 두 번째라며 사진을 남겼다.

처음에는 빈뇨감 때문에 잠을 못 자다가. 화장실을 가도 배만 아프고 소변이 안 나오더니, 조금 더 지나니 배가 찢어질 듯이 아프고 핏덩어리가 나왔다. 오 세상에 이렇게 죽는 건가 할 정도로 아팠다. 너무 아파서 몸이 바들바들 떨리는데 무서워서 눈물이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 응급실 비싼데 하는 생각을 하며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소변 검사하고, X-ray 찍고, 열이 나는데 CT는 안 찍었다. 아마 어제 대구에서 나온 31번 확진자 때문이겠지.

3시간 동안 진통제, 항생제 맞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사를 좀 쉬엄쉬엄하려고 연차를 세 개나 썼는데, 웃기게도 쉬는 내내 아팠다. 아, 더 욕심부리지 말고 1년만 딱 채우고 그만두자. 더 일하면 죽겠다 싶었다. 이 회사는 한 사람한테 두 명 몫을 시키면서 어떻게 세명 몫을 하게 할지 고민하는 곳인데. 나는 나를 갉아가면서까지 내 커리어를 지키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딱 두 달만 더 다니고 그만두자는 결심이 서고 나니, 코로나 19 때문에 프로모션이 조기 종료되었다. 2월 말 내내 병원에서 들어오는 검체는 0건이었다.

만약 안 아팠으면 으쌰으쌰 힘내서 더 다녔을 수도?

하는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일이 쏟아졌다. 으쌰으쌰 는 개뿔.


책임연구원과 짧은 면담을 가지고, 소장님과 첫 번째 퇴사 면담을 했다.

첫 번째 면담이냐.

다시 생각해보라며 소장님께서 돌려보냈기때문.



그래,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 하는 와중에 친하게 지내던 지원팀 막내가 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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