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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영 Apr 08. 2020

4# 왜 퇴사 안 하니, 바보 멍청아!

직장 내 괴롭힘

나보다 3개월 늦게 입사한 그 친구는 야근을 안 하는 날이 없었고, 가끔 야근을 안 해도 되는 날이면 상사의 눈치를 보다 7시에 퇴근하기 일쑤였다.


왜 퇴사 안 하는 거야? 널린 게 회산데 하는 나의 물음에 그래도 아직은 다닐만하다면서 1년은 채워야죠라고 답했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회사의 장점이 단점보다 크니까 다니겠거니 하고 말았다. 




수습기간 3개월이 끝나고, 그는 첫 퇴사 면담을 했다. 일이 많은 건 괜찮은데 사람이 힘든 건 안 괜찮다면서.


그래 그럴 줄 알았다고. 아직 졸업 안 했으니까 좀 더 준비해서 좋은 회사 가라고 했는데.


웬걸 두 차례 면담 후, 감언이설에 속아 계속 다니겠다고 했단다. 바보니? 하고 놀리니 아이 바뀐다고 했으니까 좀 더 다녀봐야죠. 했다.

평일에도 야근수당 없이 8~9시까지 야근에 집에 가서는 잠만 자고 새벽에 일어나 출근하고, 주말에도 ERP 만지느라 여가생활 없이 일만 하는데 괜찮다니. 나도 첫 직장이지만, 저 친구는 정말 대단하군. 사실 나도 그때쯤 매일 야근이라 그에게 바보라고 할 처지는 아니었지만, 우리 팀은 사람은 좋은데 하며 합리화했다.


겨울이 시작될 때쯤, 그는 또 퇴사 면담을 했다. 도저히 힘들어서 못 다니겠다면서. 스트레스가 쌓이니 자주 아팠고 그걸로 팀에서는 맨날 아프냐며 면박을 줬던 것 같다. 반년 동안 매일 야근에, 잦은 회식에, 주말 재택근무하는데 안 아프면 국대급 체력 아닌가?

이번엔 굳은 결심을 한 것 같았는데, 안 그만두고 계속 더 다녔다.

회사에서 스톡옵션 주겠다. 학교 졸업하면 연봉 많이 올려주겠다. 하는 말들로 그 친구를 꼬드겼다나.


어휴 너는 바보 멍청이야. 그걸 믿냐 멍청아.




조금만 더 다니겠다고. 좀만 더 버티면 1년이라면서 힘내던 그는 결국 졸업을 앞두고 퇴사 선언을 했다.

상사는 너 후회할 거라고. 우리 회사처럼 좋은 문화를 가지고 전망 좋은 곳이 없을 거라며 회유했단다. 야근을 강요하고, 술자리를 강요하면서, 또 아랫사람 업무를 자기가 한 것처럼 보고하는 사람이 하는 말을 믿을 수는 없지. 퇴사 당일까지도 잘 생각해보라며 꼬드겼지만, 그의 결심을 바꿀 수는 없었다.

복슬복슬 귀여운 댕댕이 파우치

평소 귀여운 걸 좋아하는 그 친구에게 졸업 선물로 작은 립스틱 파우치를 선물로 주면서 퇴사하고 잘 지내라고 인사를 전했다. 그는 이 회사는 안 변할 거라며, 나에게 빨리 나오라는 말을 남기고 후련하게 떠났다.


직장 내 괴롭힘이 별건가. 내가 보고 들은 것 하나하나가 모두 직장 내 괴롭힘이었다.

고생한 그가 꼭 행복하길 이 글에서나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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