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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영 Apr 14. 2020

5# 두 번째 퇴사 면담을 했다.

지난번 퇴사 면담에서 소장님은 더 생각해보라고 나를 돌려보냈다.

그래도 말 잘 듣는 연구원이라, 진짜 많은 생각을 했다. 만약 퇴사하고 입학한 대학원이 나랑 안 맞으면 어쩌지.  그럼 다시 구직을 해야 하나. 그럼 이쪽 업계로 돌아올 수는 있을까. 만약 대학원이 안 맞아서 나오면? 우리 집은 부자가 아닌데 모은 돈이 다 떨어지면 그땐 어떻게 생활하지.


그냥 계속 다닐까?

눈 딱 감고 다니기에는 내가 다니는 회사는 좋은 회사는 아니었다. 야근수당, 토요일 출근 수당은 받아본 적도 없고 일요일은 4시간 이상 근무해야 수당을 줄 수 있다는 황당한 규정이 있으니. 차라리 이직을 하면 이직을 하지. 멋모르는 사회초년생들 갈아 넣는 회사를 더 다니다간 내가 닳아 없어질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소장님께 면담 요청을 드렸다.




최대한 조용히 나가고 싶어서 퇴직사유는 건강 악화와 이사로 정했다. 지방에 있는 본가로 돌아가서 요양하며 다시 Job을 구하고 싶다는 게 내 퇴사의 표면적인 이유였다. 회사 다니면서 많이 아팠던 건 사실이니, 반만 거짓말이었다. 그래. 완전히 거짓말하는 건 아니잖아.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작은 회의실로 들어갔다.


당연히 그만두지 말라고 회유하셨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모든 사람들이 발전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근데 본인이 보시기에 나는 잘 성장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는 사람 같다고. 아, 예.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이렇게 한 사람에게 여러 가지 일을 시키는데, 버티면 당연히 발전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며 그래도 그만두겠노라 말했다. 일이 힘들면 일을 당분간 줄여주겠다. 지금 포지션이 안 맞으면 업무 형태를 바꿔주겠다는 제안도 하셨다. 내 일이 줄어들면 다른 사람에게 그 일이 갈 텐데,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또, 그렇게 해주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으니까.

면담이 끝날 때쯤에는 이렇게 짧게 1~2년 다니다 쉬고, 또 1~2년 다니다 쉬기를 반복하면 나중에 30대가 되어서 구직활동이 힘들 거라는 협박 아닌 협박 같은 조언도 들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지금 못 쉬고 병들어서 30대를 집에서만 보내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면담을 마무리하면서, 나는 이 회사에 합격하기 전에 다른 중견기업도 합격했다고. 거기를 포기하고 작은 회사를 선택한 이유가 면접 때 소장님이 너무 좋은 분 같아서 그랬다는 꼭 하고 싶었던 말씀을 드렸다. 업무와는 별개로 정말 소장님은 인간적으로도, 일적으로도 배울 분이 많은 분이었다. 내가 언제 또 저런 사람 밑에서 일해보겠어 하는 생각도 들지만.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들다.

소장님은 약간 씁쓸해 보이기도 하고 곤란해 보이는 애매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그럼 딱 이번 주까지만 다시 생각하고 결정해달라고 하셨다. 내 삶이니 자기가 어떻게 막을 수는 없다고 하시면서.




왠지 강하게 말하기가 죄송해서 알겠다고 하고 회의실을 나왔다.

그 주가 끝나기 전에 나는 정말로 나가겠다고 다시 말씀드렸고, 아프면 휴직은 어떠냐 하셨지만 거절하고 나가겠노라 했다. 소장님은 알겠다고. 나의 선택이니 지지한다고 하셨다.


형식적으로 제출하는 사직서는 30분 만에 CEO 결재까지 끝났고, 인사담당자에게 제출했다.

약간 당황한 듯 퇴사해요? 묻길래 네. 하고 짧게 대답하고 회사를 나왔다.


정말로 퇴사한다니. 기분이 이상했다.

조금 슬픈 것 같기도 했고, 후련한 것 같기도 했다. 나, 잘한 거겠지?

퇴사 절차가 술술 풀려서 아름답게 끝맺으면 좋았겠지만, 인사담당자는 내 연차수당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정말… 끝까지 재밌는 회사다.


다음 퇴사 일기는 연차에 관한 이야기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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