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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영 May 10. 2020

6# 연차 왜 못써요?

전자결재로 사직서 결재까지 끝내고 경영지원팀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남은 연차를 다 쓰고 나가던지, 아니면 마지막 출근일 뒤로 연차를 다 붙여야겠다 해서 저 연차 몇 개나 남았어요? 물었다.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이슈가 좀 있다고. 1년 채우면 생기는 연차 15개가 2년을 꽉 채우지 않고 중간에 나가면 15개*(근속 월수/12개월)만 사용할 수 있단다.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저 사람 허튼소리 하는 게 하루 이틀 아니니 그냥 예예 확인하시고 정확히 연차 몇 개 남았는지 알려주세요. 했다.


다시 자리에 돌아와서 예전에 잠깐 알고 지내던 노무사에게 연락을 했다.

이러저러해서 내가 퇴사를 하는데 회사에서 연차 15개를 못쓴다고 주장한다 하니, 말도 안 된다고 그냥 사용하면 된다고 한다. 계속 그렇게 주장하면 그냥 퇴사 후에 노동청에 신고해서 연차 수당으로 받으면 된단다. 아 그렇구나 ㅎㅎ 감사해요.

그 당시 나는 지칠 대로 지쳐서 이제 회사랑 싸우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저들이 주장하는 데로 해주고 퇴사하고 노동청에 신고를 해야지. 한번 엿 먹어봐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다가 비슷한 시기에 사직서를 쓴 회사 동료와 출근길에 우연히 만났다. 그는 노동법도 잘 모르고, 그저 회사 주장이 옳은 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쌤, 그거 15개 다 못쓰게 하는 거 불법이니까 노동청에 신고해서 나중에 돈 받아요. 했다. 잊고 있었다. 그 사람이 굉장히 행동파라는 것을..

그러면 인사담당자에게 물어보자고. 따져야 우리 권리를 찾을 수 있지 않냐고 했다.



어.. 네.. 권리 찾아야죠. (싸우기 싫은데..)


싸우기 싫었는데 얼떨결에 불편한 사람과 싸우게 되었다.

나는 메신저로 인사담당자에게 노동청과 노무사에게 물어봤는데 15개를 쓸 수 있다고 하더라. 확인해달라는 메시지를 남겼고. 그는 사내 변호사가 검토 중이라는 답을 남겼다. 한 일주일쯤 지나서였나? 15개 다 쓰면 된다는 답변이 왔다.

문제는 4월 30일부터 시작되는 연휴를 제외하면 내 남은 출근일이 7일이라는 것. 미리 써둔 연차를 제외하고 남은 연차가 7개였다. 그에게 메시지로 저 그럼 연차 다 쓰고 내일부터 출근 안 하나요? 그건 인수인계에 문제가 있을 것 같은데요. 하니 아 그래요? 그럼 퇴직일을 뒤로 미루죠. 했다. 남은 연차는 7개 맞죠? 하니 자기가 확인해보고 연락을 준다고 했다.


아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렸네. 노동청에 신고할 일은 없어서 다행이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4월 24일부터 4월 29일까지 쭉 연차를 쓰고 잠깐 본가에 내려갔는데, 메일이 하나 왔다. 5월 4일은 회사 휴무로 지정하고 전 직원 연차 1개씩 차감하겠다고. 음. 이걸 일주일 전에 알려주네? 뭐 여기는 항상 이런 식이니까. 푹 쉬고 5월 6일에 출근을 했다.


황당하게도 남은 연차를 확인해주겠다던 그는 5월 8일까지 휴가를 떠났다고 했다. 그의 부사수에게 그럼 내 연차 몇 개 남았는지 들은 거 있냐고 하니까 자기는 잘 모른다고. 그러면 내 퇴직일 미루는 거는 그냥 알아서 처리해주시는 거냐. 저 이번 주 금요일이 마지막 출근인데 이걸 해결 안 해주고 가시며 어떡하냐 하니 한번 그에게 연락해보겠다고 했다.

기존에 있던 사직서를 출력해서 퇴직일을 수정하고 다시 결재를 받으라고 답이 왔다. 그리고 부사수에게 자기 휴가 동안 앞으로 답장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본인은 다른 사람들 연차 쓴 날이나 퇴근 후에도 전화 잘만 하면서 웃긴 사람이네. 수정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고 결재는 어디에 받냐고 하니 부사수도 모른단다. 회사에 그런 규정도 없나? 자기도 저렇게 답변이 오고 더 이상 카톡을 읽지 않아서 모르겠단다. 대충 빨간펜으로 두줄 긋고 수정에서 부사장님께 결재를 받았다. 언제든지 다시 돌아오고 싶으면 돌아오라고 기다린다고 하셨다. 아 예 감사합니다.

평생 Genomics의 G도 안 쳐다보고 살고 싶네요.라고 속으로 외쳤다.


나는 5월 8일을 마지막으로 출근했고, 그는 5월 11일에 출근하니 곧 어떻게 처리했는지 연락이 올 것 같다.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내가 자기한테 독기를 품고 따져 들어서 무섭다고 했단다. 확인해주세요가 그렇게 독기를 품은 말인가.. 참 사회생활 어렵다.



나 퇴직금은 제 때 받겠지?

퇴사했는데 아직 퇴사 일기는 끝나지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5# 두 번째 퇴사 면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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