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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영 May 14. 2020

7# 퇴사 선물 고르기

연차를 어떻게 할지에 대한 논쟁(?)이 끝나고, 그래도 1년 동안 많은 추억이 있었는데 퇴사하면서 작은 선물 정도는 하고 가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평소 즐겨보던 아이디어스 어플을 둘러보며 퇴사 선물 어떤 걸 드리면 그래도 실용성 있게 쓰실까.. 고민하는데, 회사 언니가 뭐 보냐고  물었다.


그래도 나가기 전에 선물이라도 하고 나가려고요. 하니 이제 곧 대학원 가면 돈도 없는 사람이 무슨 그런 엄한데 돈 쓰냐면서 하지 마! 했다. 그런가.. 사실 틀린 말도 아닌 것이. 정말 나는 이제 수입이 반토막, 아니 그 이상 토막 날 텐데, 너무 분수에 안 맞게 오지랖을 부리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한동안 없을 퇴사라는 큰 이벤트를 나답게 마무리 짓고 싶었다. 사회생활을 꽤 오래 하신 분께서는 다 부질없는 짓이라고, 그런 일에 힘 빼지 말고 퇴사하고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우는 게 더 낫다는 조언을 해주셨지만. 하고 후회하는 게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낫지.


너무 비싸지 않으면서도 약간은 실용적인 선물, 디퓨저나 방향제를 드리려고 하니 가격대가 어느 정도 있는 편이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선택한 퇴사 선물은 휴대용 비누. 알록달록 예쁜 비누인데, 요즘처럼 바이러스로 세상이 흉흉할 때 딱 맞는 선물이군 싶었다.

회사 직원이 거의 50명을 바라보는데, 그 많은 인원에게 선물하자니 금액도 금액이지만 안면도 없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초면에 안녕하세요. 제가 오늘 마지막 출근이라서요. 작은 선물입니다. 하기는 너무 서로 민망하지 않은가.


고민 끝에 회사 생활을 하면서 도움을 받았던 분, 같은 팀원들, 임원분들께만 선물을 드리기로 결정했다.


귀엽게 개별 포장되어서 온 비누들

성격이 급한 탓에 퇴사일을 2주 넘게 남기고 비누를 먼저 주문해버렸다. 어쩌지 어쩌지 하다가 그냥 사무실 책상 밑에 꽁 박아두기로 했다. 큼지막한 상자를 들고 들어오는 나에게 뒷자리 책임연구원은 그게 뭐냐고 물었는데. 그냥 실험실 물건이라고 둘러댔다. 그분이 BI라서 다행이지 실험하는 분이었으면 절대 안 믿었을 거다.




4월 말에는 쭉 연차를 썼기에 4월 마지막 출근일은 23일, 나와 비슷한 시기에 사직서를 제출한 다른 연구원 선생님의 마지막 출근일은 4월 29일이었다. 23일 퇴근 전에 꼭 선물을 드려야지 생각했는데,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퇴근해버리셨다. 얼굴 뵙고 드리고 싶었는데, 아쉽지만 짧은 편지와 함께 자리 위에 선물을 올려두고 퇴근했다.


연차라 느지막이 10시쯤 눈을 떴는데 선생님께 카톡이 와있었다. 그저 고맙다는 인사만 보내실 줄 알았는데, 진심을 담아서 긴 카톡을 보내주셔서 오히려 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아, 역시 돈은 조금 들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방법으로 마무리 짓기를 잘했다.


선생님께서는 5월 연휴 동안 한번 집에 놀러 오라고 하셨고, 인사치레로 한 말이 아니라 다른 분들께도 놀러 오라고 말씀하셔서 정말로 집들이를 갔다. 얼떨결에 저 멀리 안양까지 집들이를 갔는데, 마음이 몽글몽글 편안했다. 참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구나. 여러 가지 이유로 결국 퇴사했지만, 좋은 기억이 더 많이 남은 것 같다.

자꾸자꾸 뭔가를 주셔서 빈 속으로 가서 위장 가득 음식을 채워왔다. 연락하고 지내고,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준다는 말씀을 마지막으로 집을 나섰다. 혹시나 그저 말뿐인 말이라도 저렇게 말씀해주시니 또 기분이 좋아졌다.



남은 5월의 황금연휴를 마치고, 이제 마지막 3일.

딱 3일만 출근하면 진짜 퇴사라니. 5월 5일에는 두근거리는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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