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의 낡은 운동화(1)

엄마로서의 죄책감

by 이채운


어린이집에는 아이의 낡은 운동화가 나를 기다린다. 그만큼 아이도 엄마를 기다렸을 것이다.


선생님들도 퇴근을 하기 시작하는 시간, 몇 남지 않은 아이들의 운동화들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왜 대한민국 엄마들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것에 대해서, 또는 워킹맘이라는 것에 대하여 죄책감을 가져야만 할까?


국가 보고서에 따르면 많은 선진국에서도 3세 정도가 되면 약 80%의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다닌다. 어느 나라에서는 사회성 발달을 위해 돌 무렵부터 어린이집 활동을 권유한다고도 한다.


우리나라처럼 여성의 유리천장이 높은 나라는 유독 모성애를 강조하고는 한다. 이 모성애는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강조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깐 모성애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옛말에 아이는 마을 전체가 키워야만 한다고 했다. 나도 아이를 낳아 키워 보니 그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아이는 부모 둘만 이서, 더더욱이나 엄마 혼자서는 온전히 키워내기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아이의 발달과 양육자의 정신적, 육체적 한계점에서 볼 때, 육아에 있어서 여러 조력자들과 환경이 필요하다.


현대에 들어서서 그것을 도와주는 방법 중에 하나가 어린이집 같은 보육 기관이다.


이론은 이러하나, 나는 현실에 굴복하고서는 나의 일하는 시간을 쪼개어 아이를 좀 더 일찍 집으로 데리고 오기로 결정했다.


우리로서는 이 방법이 최선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이가 엄마, 아빠와 시간을 보내는 것을 가장 좋아해도, 찜뽕이가 결국은 어린이집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속절없이 좋아하는 찜뽕이를 보며 오늘의 글을 마쳐본다.


'그나저나 너의 운동화는 왜 이렇게 낡은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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