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아파트에서 대형견과 삽니다.
“네, 그럼요. 집에서 키워요. 그럼 어디서 키울까요?”
아파트의 1층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종종 듣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서 조금 변형된 질문은 “아파트에서 키워요?”다. 산책을 하다가 많이들 물어보신다. 이 질문의 의도는 ’이렇게 큰 개를 어떻게 집 안에서 키워요?’라고 대략적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처음엔 이 질문을 듣고 조금 어이가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질문일까 생각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이 질문을 받았다는 것이 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사실 뻔한 대답이지 않는가. 나는 이 아파트에 사는 주민인데, 당연히 우리 집에서 키워야지, 그럼 밖에다 풀어놓고 키우겠는가. 처음에는 당황해서 짧은 대답으로 대신했지만, 지금은 “남편이랑 저랑 단둘이서 사는데, 사람은 방에서 생활하고, 개는 넓은 거실 혼자 다 차지하면서 잘 지내요. 개 팔자가 상팔자죠.“라고 대답하곤 한다.
아파트 게시판에 반려동물 관련 게시물이 붙을 때면 가슴이 철렁 인다. 또 무슨 잘못을 했을까. 한 번은 ‘대형견’을 타겟으로 입마개를 안 한다고, 아파트 화단과 주차장에 배설물이 방치되어 있다면서 주의해 달라는 게시물이 붙은 적이 있다. 그 게시물은 제목부터 반려견이 아닌 대형견의 잘못처럼, 누가 봐도 오해할만한 뉘앙스로 쓰여 있었다. 그 게시물을 보자마자 곧바로 관리사무소에 가서 항의했다. “어느 주민 분께서 반려동물로 민원을 넣으셨나 봐요.” 조심스럽게 묻는 것을 시작으로, 대형견을 키우고 있는 사람으로서 항상 주의하고 있는데 이런 말 들어서 속상하다. 대형견이라고 무조건 입마개 의무도 아니고, 아시다시피 현재 동물법 상 맹견 5종만 입마개 착용이 의무다. 내 반려견이 입질을 한다면 대형견이든 소형견이든 입마개를 해야 한다. 우리가 더 잘할 테니 게시물을 대형견이 아니라 ‘반려동물’로 정정해 주실 수 있겠느냐고 말씀드렸고, 그 후 ’대형견‘ 단어는 삭제되고 수정된 게시물이 다시 붙여졌다. 물론 밥풀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대형견에 대한 인식이 심히 우려되었다. 관리사무소 직원분은 그런 의도로 쓴 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내가 ‘대형견’에 포커스를 맞춰 읽어서 더 민감하게 받아들였을 수도 있지만, 우리도 도시에서 조화롭게 살기 위해 늘 노력하고 있는데, 혹여 이웃 주민들이 대형견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까 봐 억울했다.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다 좋아하지는 않는다. 나처럼 개와 고양이 모두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개를 싫어할 수도, 심지어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어쨌든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반려인으로서 작은 규칙들을 세우고 실천한다. 엘리베이터를 많이 사용하는 출퇴근 시간대에는 가급적 엘리베이터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좁은 엘리베이터에서 사람들이 많이 타고 있을 경우에 사람들도 밥풀도 불편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아이를 동반한 주민이 엘리베이터에 먼저 타고 있을 경우는 같이 타도 되는지 물어본 후 같이 타거나, 다음 엘리베이터를 탄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는 밥풀은 앉아서 기다려야 하고, 엘리베이터에서 타거나 내릴 때는 “가자.”라고 말하기 전까지 밥풀은 먼저 행동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밥풀을 데려온 후 갑자기 아파트에 대형견이 나타나서 주민들이 낯설어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겨우 생후 3개월 된 작은 강아지였지만(그래도 몸무게가 8킬로였다.), 아파트에서 낯선 생명체를 키우는 게 신기한 모양이었다. 덩치가 크다고 무조건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을, 덩치만 큰 착한 아이라는 것을 밥풀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로 이웃 주민들에게 꾸준하게 어필했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말이다. 큰 덩치에 당황했던 이웃도, 마주칠 때마다 왜 입마개 안 하냐고 다그치던 이웃도, 이제는 밥풀에게 착하고 얌전하다, 견종이 뭐냐, 안내견 하는 애 아니냐 등등 조금씩 관심을 보이며 이웃들도 밥풀에게 마음을 여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은 밥풀을 많이 알아봐 주시고 산책 잘 다녀오라고 인사도 건네주신다. 밥풀과 함께 분리수거하러 나오면 먼저 반갑게 인사도 해주시고, 한동안 밥풀이 안 보여서 이사 간 줄 알았다고 보고 싶어 하시는 동네 야채과일가게 삼촌 팬 분들도 계신다.
정말 다행스럽게 밥풀은 어릴 때부터 잘 짖지 않았다. 딱히 훈련을 시킨 것도 아닌데, 처음에 데려왔을 때도 짖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어서 얘가 짖는 방법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지금도 일주일에 한두 번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까 말까 한다. 대형견이 한 번 짖으면 목청과 울림통이 어찌나 큰지 정말 우렁차다. 만약 밥풀에게 헛짖음이 있었다면 아파트에서 살기 난처한 상황이 많았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층간소음 문제 또한 굉장히 주의하는 부분이다. 어린아이가 뛰어도 아랫집에 울리는데 30킬로짜리가 집 안에서 뛰어다니면 어떻겠는가. 우리는 층간소음 문제와 대형견의 고질적인 질병인 고관절 예방을 위해 거실에 애견 전용 매트를 다 깔았다. 가끔 미친개처럼 우다다다 뛰는 시간이 있긴 하지만, 한 살이 지나니 아주 조금은 철이 들었는지 집에서 날뛰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집에서는 잠만 자면서 배터리 완전충전을 하고, 밖으로 산책을 나가면 온몸에 축적되어 있던 에너지를 불사른다.(문제는 세 시간 넘게 뛰어놀아도 잘 방전되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가 서울에서 조화롭게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다.
밥풀 인스타그램 | @kimbobpur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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