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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사이드B May 19. 2023

내 인생의 인간들 모두 까기, 나의 아저씨.

내 인생의 인간들 모두 까기 다섯 번째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한껏 몰입해 봤던 적이 있다.

온갖 감정을 다 느껴 힘들 수밖에 없는 드라마를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시 봤다.

매번 달라지는 감상평에 늘 똑같았던 느낀 점 하나는

나도 박동훈처럼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이미 어른이 돼버렸지만, 아직은 늦지 않았다.

남은 어른인 기간 동안 누군가에게는 나도 박동훈처럼 따뜻함을 줄 수 있는 진짜 어른이 돼야지.


돌아보면 내 인생에도 '좋은 어른'이 꽤 있었다.

내가 여러 복 중 유일하게 인복이 많다고 내세울 수 있는 증거다.

그중 한 명을 먼저 소개하고 싶다.


사오 대표님(가명).

사오 대표님을 알게 된 것은 첫 번째 직장을 다니면서부터다.

그는 첫 번째 직장의 소속 직원이었다가 너무나도 높은 능력으로 자신만의 회사를 일군 상태였다. 

하지만 업계의 특성상 내가 업무를 하면 많은 선배들이 나의 작업물을 가지고 2차 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에

사오 대표님을 자주 뵐 수밖에 없었다. 


현 회사에서 가장 간지나게 퇴사한 선배였기 때문에

처음 봤을 때부터 우러러봤을지도 모른다. 

군대식 문화에 정신과 몸을 갉아먹을 수밖에 없는 구조, 게다가 당연시되는 부조리함까지.

이 일을 계속하는 사람은 무조건 병을 하나 이상을 가지고 있다는 이 직업에서

모두에게 인정받고 젊은 나이에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를 차린 선배이자 대표.

어쩌면 처음 사회생활을 하는 나에게 당연하게도 가장 빛나 보일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지만 내가 유독 그를 멋있게 봤던 이유는

일도 잘하는 사람이 성격까지 좋다는 것이다.

같은 회사 선배들도 챙기지 않는 굉장히 개인적인 집단에서

다른 회사 대표가 막내로 들어온 나한테까지 참으로 다정했다.

게다가 너무 완벽하면 인간미가 떨어진다는 것을 안다는 듯 보이는 허당미까지.

내 인생의 멘토가 되기 너무 적합했다.


그와 별개로 내 첫 직장 생활은 고통과 환희의 연속이었다가

어느 순간 그것마저 무뎌져서 격변하는 파도 속에서도 심심해졌다.

그리고 역시나 철이 없는 나는

나의 철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이 젊음을 증명하기 위해

한시라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초조함으로

더 큰 세상이라고 스스로 속인 호주로 워킹을 가면서 첫 직장은 끝이 났다.


1년간의 타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다시 외국을 나갈지 아니면 얌전히 한국에서 취직할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그런 나의 상황을 안 사오 대표님은 자신의 회사에 스카웃을 했다.

사실 나는 굉장히 일머리가 좋은 사람이다.

20살이 되자마자 시작했던 많은 알바들에서도 관둔다고 말할 때 

모든 사장님에게 붙잡힘을 당할 정도로 일을 잘하고 성실했다.

내가 내 입으로 당당하게 자랑할 수 있는 유일한 장점이다. 


첫 회사에서 일하면서 크고 작은 실수로 사오 대표님에게 혼났던 적이 있지만

그만큼 크게 성장했고, 성실했던 나였다.

사오 대표님은 그런 나를 좋게 봐주셨던 거다.

내가 처음으로 존경하는 어른인 사람이 나에게 스카웃을 하는데

어찌 거절할 수 있을까.

그렇게 내 두 번째 직장 생활이 시작되었다.


두 번째 회사는 대표가 사오인 만큼 

첫 번째 회사보다 규모는 작지만 그만큼 서로에게 애정이 있었고

힘든 와중에도 그걸 씻게 해주는 우정이 있었고

맛집과 술을 좋아하는 사오는 우리에게 한없이 야근의 끝에서 값비싼 음식과 술을 제공해 주었다. 

일은 승승장구했고, 그만큼 나와 사오 대표님은 인간적으로도 서로를 믿을 수 있는 사이가 되어갔다.


그러던 중 한 선배가 나에게 술자리에서 은밀히 말했다.

자신과 사오는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사오 대표님은 사실 아이를 원하지만 임신이 안돼서 힘들어하는 아내를 두고 있는 한 가정이다.

물론 그 선배의 말만 듣고 사실판단은 할 순 없지만, 

내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더 가까이서 지켜본 사오 대표님은 더 멋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자신의 회사를 지키기 위해 의무를 다하는 모습,

자신의 직원들을 자신의 사람으로서 온전히 바라보고 지켜주는 모습,

주변 까다로운 높으신 양반들마저 좋아하게 만드는 매력,

게다가 쉬는 날을 어떻게든 만들어 아내에게 헌신하는 가장으로서의 역할까지.

나는 정말이지 이 어른을 존경했다.


선배의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그래도 너무 큰 배신감은 들지 않았다.

역시 완벽한 사람은 없구나 정도의 밋밋한 교훈만이 맴돌았다.

아마 내가 처음으로 존경한 사람에 대한 일정한 보호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동안 쌓아온 의리와 신의가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그 무엇이 더 큰 실망으로 가게 하지 못했다. 


그것보다 당시 난 더 큰 어려움과 싸우고 있었다. 

내 위아래 선 후배님들과 인격적인 마찰을 겪고 있던 것이었다.

철저하게 내 입장에서 봤을 때 그들은 교활한 악마였고, 난 한없이 약한 피해자였다. 

게다가 내숭, 알랑방귀, 가식을 못하는 나로서는 그들과 같이 행동할 수는 더더욱 없었다.


결국 나는 참고 참고 참다 화통이 터져 밤새 야근을 하던 어느 새벽

사오 대표님께 면담을 신청했고 그 자리에서 별 이유를 대지 않고 퇴사를 선포했다.

사오 대표님은 당연하게도 이 상황을 어이없어 했고 붙잡았지만

난 그 당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그 무엇들과 싸우다 지쳐 나가떨어진 상태로

개인적인 믿음과 신뢰를 그 자리에서 깨트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이 내가 사오 대표님을 마지막을 본 모습이었다. 

정말 이렇게 완벽한 결말이 있을 수 있을까.

우리는 서로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대로 다 주고는 너무나 쉽게 허물었고

사오 대표님은 나에게 애정을 쏟은 만큼 아마도 더 큰 배신감이 들었을 것이다.

나는 처음으로 존경했던 어른에게, 내 멘토로 삼았던 어른에게, 나의 아저씨에게

완벽한 쓰레기가 되었다. 


그로부터 더 많은 어른들을 만나고 사회생활을 지속하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그가 불륜을 했건 말건 

나에겐 그는 어쩔 수 없는 좋은 어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난 여전히 그의 반의반도 따라가지 못한 어설픈 어른이 이라는 것.


이것이 나만의 '나의 아저씨' 12화 정도이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아직 평안에 이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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