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해서 눈물 찔끔.
고마워서 눈물 줄줄.
요즘 나는 눈물이 많아졌다.
처음엔 마음이 약해진 건가 싶었다.
나답지 않게 왜 이렇게 감정이 쉽게 올라오는 걸까,
괜히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 눈물은 현재의 사건 때문만은 아니었다.
서운함이라는 감정을 붙잡고
그 안에 숨은 욕구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는 어느새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생활고로 바빴던 부모님은
나를 섬세하게 돌볼 여유가 없었다.
그건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그들의 삶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였던 나는 외로웠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렸지만
마음 한구석은 늘 혼자였다.
그리고 더 아픈 사실은
그 외로운 나를 나조차 돌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잘 견디는 아이였고,
잘 버티는 사람이 되었고,
해야 할 일은 당연히 해내는 어른이 되었다.
그래서 힘들다는 말조차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엄마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남편에게도 최근에서야 말하기 시작했다.
예전엔 그저 내가 해야 할 몫이라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나는 오랫동안
“괜찮은 사람”으로 살아왔다.
아이들에게는
조금 다른 마음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인정은 크게 바라지 않으면서도
유독 아이들에게는
엄마로서, 사람으로서
열심히 잘 살았다는 인정을 받고 싶었다.
그 마음을 인정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이들은 이미 나를 존경한다고 말해준다.
다만 내가 원하는 방식의 표현이 아닐 뿐.
그 한 장면만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재단한 건 아닐까.
그럴 때 나는 또 외롭다고 느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외로움은 아이들 때문이 아니라
“깊이 이해받고 싶었던 나”의 목소리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나에게 말했다.
애썼다.
잘 살아내 줘서 고맙다.
그 말을 듣자
내 안의 아이도 울 것 같았다.
지금의 나처럼.
그 눈물은 서러운 울음이 아니라
“이제야 내 편이 생겼다”는 울음 같았다.
나는 깨달았다.
마음이 연약해진 것이 아니라
억압했던 감정이 숨을 쉬기 시작한 것이구나.
조금 연약해져도 괜찮다.
아니, 오히려 반길 일이다.
눈물로 비워낸 빈 공간으로
바람이 드나드는 느낌이 든다.
살랑살랑 봄날 오후의 햇살과 함께
조용히 스며드는 바람.
이제는 누군가가 나를 알아주길 기다리기보다
내가 나를 먼저 알아주기로 했다.
나와 만나는 시간.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