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조롭지만 평화로운 일상
퇴근 후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비로소 고요한 자유가 시작된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무심히 소파에 몸을 던진다. 미끄러지듯 쿠션에 머리를 뉘면 어느새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잠든 것도, 그렇다고 완전히 깨어 있는 것도 아닌 몽롱한 상태. 그렇게 귀한 저녁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간다.
한때는 이런 나를 향해 ‘게으르다’며 스스로를 매섭게 채찍질하곤 했다. 남들은 자기 계발에 몰두하는 시간에 나는 왜 이토록 무력하게 누워만 있는가 하는 자책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 멈춤의 시간은 나태함이 아니라, 온종일 세상의 속도에 맞추느라 애쓴 내 몸이 보내는 정직한 ‘쉼’의 신호라는 것을.
시곗바늘이 밤 아홉 시 삼십 분을 가리키면, 갈까 말까를 수없이 고민하며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소파와 한 몸이었던 관성을 깨고 운동복으로 갈아입는다. 체력을 키우기 위해, 그리고 내일의 나를 위한 마중물을 마련하는 의식처럼 헬스장으로 향한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오직 나 자신과 맺은 작은 약속을 지켜냈다는 생각에 비로소 스스로를 ‘쓰담쓰담’ 해준다. 억지로 나를 몰아붙이는 것이 아니라, 쉬고 싶을 때 충분히 쉬어주고 일어날 힘이 생겼을 때 기꺼이 움직이는 것. 이 리듬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내가 누리는 진정한 자유다.
반복되는 일상이라는 쳇바퀴는 나의 울타리이자 내가 살아가는 나의 우주이다. 오늘도 나는 나만의 속도로 그 우주를 유영하고 있다.
아주. 미세하게 꿈틀대는 작은 움직임이 지속적으로 반복될 때의 힘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