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트라우마...
무능력한 남편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아내를 자식을 힘들게 한다. 나에게 아버지는 그랬다. 직장을 다니며 밥벌이를 하는 것을 벼슬로 알았다. 친구들과 술 마시는 돈보다 집에 가져다주는 돈을 더 아까워하는 사람이었다. 어머니가 남의 집 파출부로 벌이를 메우고 방학이면 막노동과 야간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을 벌었다. 격일제로 근무를 했던 그가 쉬는 날 이면 눈치보기 바빴고 어머니는 일과 밥상 차리는 시간을 맞추랴 발을 동동거리며 다니기 일 수였다. 우리 형제는 그런 상황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너무도 싫었다.
내가 벌어서 두 식구 먹여 살리면 된다. 갈라서신 어머니와 동생을 데리고 반지하 단칸방에 살게 되었다. 취직을 해서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우리는 먹고살았다. 어머니는 불안해하시며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라고 하셨지만 이혼 후 어머니를 모실 각오를 할 때부터 다시는 일을 시키지 않을 작정이었다. 누런 봉투에 월급을 현금으로 받아오면 어머니는 쪼개고 쪼개서 저축하고 살림을 하셨다. 몇 년간 반지하 생활을 하다가 청약저축으로 세 식구 살 만한 아파트를 구했고 안정을 찾아갔다. 쥐가 나오고 햇볕도 안 드는 생활을 심장 수술로 체력이 약해진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온 그때를 이제 와서 보면 살면 살아진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키우면서 아내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충분히 상의하고 계획하고 각오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나는 내심 좋았다. 경제적으로는 반토막이 되었지만 아내가 애들을 돌보면서부터 뭔지 모를 안정감을 찾았기 때문이다.
나만 그런 안점감을 갖는 건가. 아내 퇴직 후 주위 사람들의 첫 번째 반응은 '어쩌려고'였다. 둘이 벌어서 키워도 빠듯할 텐데 어쩌려고 그만두게 됐냐는 것이다. 그들은 경제적인 걱정을 앞세워 보인 반응들이다. 집을 팔아서 생활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단지 저축을 예전같이 못 하거나 좋은 옷을 입히지 못할 수는 있다. 대신 아이들은 엄마의 사랑을 더 받으며 살 것이고 나중에 나 같은 상처는 입지 않는 것으로 나는 만족한다.
요즘 아내에 대한 내 감정이 복잡하다. 그동안 잘 커준 아이들은 점점 손이 덜 가게 되었다. 몇 년 전부터 아내는 뭔가를 준비 하였다. 전공을 살려 컴퓨터 분야로 아이들을 가르치겠다고 한다. 교육을 수료하고 보조강사를 하고 주 강사를 하면서 사회생활과 집안일을 병행하고 있다. 그런 아내를 보기가 편치 않다. 단지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해서 그런가?. 아니면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시간까지 줄여야 해서 그런가?. 잘 모르겠다. 편하지 않은 내 감정을 나도 잘 모르겠다.
몇 달 동안 고민 했다. 왜 그런지. 남들은 아내가 나가서 돈 벌어오면 좋다고 하는데 왜 나는 싫은지. 나의 감정이 표시가 난 건지 아내도 물어온다. 도대체 뭐가 싫은 거냐고.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겠는데 그냥 싫다고 넘겨 버렸다. 며칠 전에는 회사에 있는데 아내가 전화가 왔다. 평소 애교가 별로 없는 아내가 코멘소리로 다른 남편들은 시간당 얼마냐, 이번에는 몇 시간을 하냐 궁금해하고 좋아한다는데 당신은 왜 싫은지. 나는 답을 할 수 없었다.
이 복잡한 생각과 감정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 내 감정을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무능력한 남편, 아내를 일 시키는 남편에 대한 불안이 내 머리에 가슴에 육체에 각인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머리로는 아내를 응원하고 싶은데 가슴은 그렇지 않다. 만약 이게 맞다면 오래전 일이 트라우마로 남아 이제서 고개를 들고 나의 감정을 해 집어 놓고 있는 건 아닐까. 슬기롭게 넘겨보려고 이곳에 글로 써서 남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