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 동갑 외삼촌에게 찾아온 알츠하이머
며칠 전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기 전 드는 생각은 두 가지다. 첫째는 우리네 어머니들이 늘 하시는 잔소리다. 자식 목소리 듣고 싶은데 요놈이 전화를 하지 않고 있으니 괘씸함을 애써 잔소리로 에둘러 말씀하신다. 두 번째는 어디가 아프다는 말씀이시다. 무릎, 어깨, 허리 이제 70 중반을 넘으셨으니 어쩌면 당연한 말씀 이시다. 그래도 혹시 병원에 가봐야 할 정도로 아프실까 봐 조마조마하며 받는 전화다. 그런데 며칠 전 전화는 둘 다 아니었다. 삼촌의 상태가 안 좋으신 것 같다는 전화였다.
여기서 삼촌은 나에게는 띠 동갑 외 삼촌이고 어머니에게는 막내 동생이다. 외삼촌은 내가 어릴 때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취직을 하면서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았었다. 어머니 같은 큰 누나 곁에 살면서 결혼을 하고도 멀리 가지 못하고 같은 동네에서 오래 살았고, 아직도 어머니와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서 살고 있다. 내게는 주말이면 약수터에 물드러 가고, 탁구장에서 탁구도 쳤고, 목욕탕에 가서 같이 목욕을 하면서 지내던 삼촌이었다. 촌수는 외삼촌이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띠 동갑인 외삼촌이 가끔은 큰 형 같기도 했다.
잘 지내던 외삼촌에게 문제가 생긴 건 약 5년 전쯤이었다. 길을 가다가 중심을 못 잡고 쓰러지면서 병원 진찰을 받았다. 결과는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진단이었다. 50대 중반을 넘은 중년에게 찾아온 알츠하이머는 온 가족을 절망에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고등학생 아들과 대학을 이제 갓 졸업한 딸 그리고 아내를 둔 외삼촌에게 너무나 억울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진단임에 틀림없었다. 약으로 진행을 늦춰보기로 하였지만 병세는 점점 악화되었고 지팡이가 없으면 앉고 일어서기를 할 수 없었다. 음식을 삼키고 소화시키는 것도 힘들어졌다. 결국 2년 전 요양병원에서 모시기로 결정하고 지금은 외곽의 요양병원에서 지내신다.
어머니의 전화는 외삼촌 상태가 좋지 못하니 이번주말 같이 다녀오자는 것이었다. 아내와 막내만 데리고 주말 아침 일찍 어머니와 외숙모를 모시고 요양병원으로 향했다. 조금 더운 감이 있었지만 날씨는 참 좋았다. 내가 중고등 학생 때 주말이면 외삼촌과 약수통에 물을 들고 누가 먼저 집으로 가는지 내기를 했던 생각도 들었다. 도시 외곽 한 적한 곳에 위치한 요양병원에 도착했다. 면회를 하고 식사를 할 수 있는 테이블에서 기다리니 누군가 휠체어를 끌고 외삼촌을 모시고 내려왔다. 얼굴과 몸이 예전에 비해 반으로 줄었다. 눈동자는 어디를 보고 있는지 초점이 뚜렷하지 못했고 가슴에 안전벨트를 하고 있었다. 자칫 몸부림을 치다가 휠체어에서 떨어질 수 있어서 벨트를 하지 않으면 위험하기 때문이다.
처음 본 순간 외삼촌이 내게 손을 뻣었다.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알아듣지 못했다. '저예요, 저! 왔어요. 삼촌 저 알아보겠어요?.' 외삼촌은 무어라 말을 하면서 내 손을 꽉 쥐고 놓지 않으셨다. 몸은 야위었는데 어디서 힘이 나는지 내 손이 아플 정도로 쥐었다. 음식을 잘 삼키지 못하기 때문에 닭 죽을 끓여 와서 숟가락으로 떡 먹이고 과일도 작게 잘라 드셨다. 한 입 한 입 드실 때마다 온몸에 힘을 주고 있어서 이마에는 식은땀이 많이 나셨다. 그렇게 식사를 하고 있는 삼촌 옆에서 '살 빠지니까 잘 생겼네 삼촌!, 진작 좀 살을 빼지 그랬어!.'라고 농담을 하였다.
몸 관리를 잘했다면 이 병에 걸리지 않았을까?. 어머니는 옆에 붙어살던 삼촌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운동하고 몸 관리 해라, 커피 너무 많이 마시지 마라, 담배 줄여라'라고 걱정하셨다. IT산업에 있어던 삼촌은 한 때는 경제적으로 풍족했었다. 그러다 회사에 문제가 생기면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고 중고차, 편의점 등 이것저것 손을 대면서 하루하루 힘들게 생활을 이어가고 이었다. 생계의 위협을 받고 스트레스와 감정적으로 우울증도 겪으면서 병이 찾아온 것 같다. 그래도 지금 모습을 보면 '삼촌, 돈 좀 적게 벌면 어때 몸이 아프면 아무것도 못 하는데'라는 아쉬움을 속으로 말해 본다.
지난 세월을 모르지 않았을 외삼촌은 다 알고 있는 듯 했다. 나에게는 '조카 잘 지내?, 막내딸 어깨를 두드리며 학교는 잘 다니고?, 외숙모 손을 잡고는 미안하다고, 누나에게는 옆에서 잘 봐달라고' 눈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표정은 없지만 눈가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닦아도 닦아도 흐른다. 가족들 가는 모습을 배웅 한다고 휠체어에 앉아 손 짓을 하면서 '삼촌 이겨내!'라고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