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퇴사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노 Jul 01. 2021

18년간의 의문

식상하지만 떼어놓을 수 없는 불안


 2020년 8월30일 퇴사했습니다. 이제는 4학년이된 결군, 마흔두살이 된 아내님과 함께 시골에서 서로 돌보는 중 입니다. "나는 직업인이 되고 싶습니다"에 기록중인 글들은 직장생활만 하던 마흔네살의 개발자가 직업인으로서 홀로서기 위한 여정을 담은 글입니다. 여전히 소소하게 현재진행형이구요. 홀로서기로 큰 돈을 벌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적당히 벌어 잘 살고 싶을 뿐입니다. 그래서 더욱 소소합니다.  



 



 18년간 직장생활을 하며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의문이 있다. 아니 사실 불안이 있다. 


'40대를 넘어 50대, 60대에 이르기까지 내가 몸담고 있는 이 직장을 다닐 수 있을까'

'지금 이 직장이 아니더라도 직장이라는 곳을 계속 다닐 수 있을까'

'내가 보고 있는 저 50대 상사의 모습으로 남는다 해도 만족할 것인가'


이제 식상하다 못해 지겨운 문구들이며 나에게서 떼어놓을 수 없는 것들이 되었다.


"직장인 개발자의 수명은 40대 중후반이면 끝이다"  자조감섞인 말투로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는 했다. 

저 의문들, 아니 불안들에 대한 답은 어쩌면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게다가 직장인이라는 말 자체에서도 답은 나와있다. 직장은 사실 일을 하는 장소이고 직장인은 그 곳에 소속된 사람이다. 직장인은 그 곳을 벗어나면 존재가치가 사라진다. 직장인의 존재는 직장안에서만 의미가 있다. 퇴근 후 직장을 벗어나 집안에서 느끼는 허전함과 허탈함이 그 이유이지 않을까. 퇴사를 하고 다음날 아침 어떤 장소로 가지 못한다는 초조함도 그 이유일 것이다.


언제인가부터 직장보다 직업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직장에 소속되어 있지 않더라도 나의 존재가치가 사라지지 않고 나의 시간들을 주도할 수 있는 직업말이다. 내가 어디 다니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보다, 나의 직업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나의 직업은 개발자이며 엔지니어이기도 하다. 어떤 프로젝트에 던져놓아도 잡초처럼 자리잡아 조금씩 공부하며 결국 그곳을 점령해버리는 근성이 있다. (나중에서야 그것이 노예근성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말이다.) 어딘가 소속되지 않은채로, 나의 직업적 능력만으로도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직장의 관성은 이런 생각조차도 할 수 없도록 강력하게 나를 이끌어왔지만 지금이라도 그 관성을 밀어내고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것에 감사하다.


어떤이가 말했다. 직장인의 관성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옥상에서 떨어져 바닥에 맨땅으로 헤딩하는 것과 같은 충격이라고 말이다. 저 정도의 충격이라면 나는 일어설 수 없을만큼 상처를 받을것이라 생각했다.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직장을 다니며 조금씩 나의 직업을 이용한 사이드잡을 병행하기로 했다.


 직업인으로서 내가 택한 사이드잡은 코딩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홍보는 어떻게? 커리큘럼은? 무수히 많은 생각들이 엉켜댔다. 이러다가는 또다시 생각만 하다 끝날 것 같았다. 많은 생각이 일을 그르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고있다. 직장을 다니며 개발을 가르치는 일에 도움이 될만한 것들이 있으면 무조건 닥치는 대로 했다. 코딩교육을 하는 업체에 무료로 지원해서 강의를 하기도 했고, 코딩자격증시험 문제출제위원을 하기도 했다. 직장에서 프로젝트가 한창이던 어느 날, 양평의 한 카페에 코딩교육을 해주겠다는 글을 용기내어 올렸다. 


 며칠 후, 한명에게서 연락이 왔다.

일주일에 한번, 12만원을 받고 파이썬을 가르쳐주기로 했다.


 직장인이 아닌 직업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