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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노 Jul 16. 2021

아빠, 과자 좀 그만 먹어요

낯설지 않은 상황이지만 익숙함에 당황스럽다

                                     <사진제공: 스킵하하 www.skiphaha.com>




"결아, 당근 케이크 먹을까?"

"네!"


 냉장고를 열고 당근케이크 상자를 꺼내어 플라스틱 케이크 칼로 납작하게 한 조각 떼어낸다. 납작한 접시에 이쁘게 세울까 하다가 이내 포기하다 먹기 좋게 뉘인다. 포크를 가져오고 입에 대려는데 스마트폰에 메시지가 와서 들여다본다.


 아내는 요즘 다이어트 중인가 보다. 진행 중인 사실을 남에게서 들은 이야기인 양 하는 이유는 매년 다이어트 중이라 별 감흥이 없어서이다. 많은 이들이 연초에 혹은 언제부터인가 다이어트를 시작하지만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내 또한 그래 왔다. 어제저녁에는 유튜브 다음 에피소드를 준비하기 위해 오래된 하드디스크를 열어보았다. 5년 전에 퇴사 후 퇴직금 들고 다섯 살 결군과 떠난 여행 영상, 10여 년 전에 중국에서 살 적 영상과 사진들, 하하, 호호, 깔깔, 옛 추억에 곱씹으며 즐거웠던 저녁시간. 여기서 발견한 사진 한장은 아내의 다이어트에 적지 않은 힘이 돼주었다. 이렇듯 다이어트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는 아내가 주말이면 정말 맛난 디저트를 만들어 준다. 대리만족인가. 쿠키, 당근케이크, 이번 주말에는 오직 나만을 위한 초코 브라우니(결군은 초콜릿을 안 먹는다), 모두 살을 뒤룩뒤룩 찌우는 폭탄 디저트들이다. 물론 만들어주기만 하고 아내는 거의(?) 먹지 않는다. 다이어트 중인 사람이 요렇게 맛난 디저트를 계속 만들어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지난 주말에 만들어준 당근케이크는 너무 맛있어서 표현 불가다. 냉장고에서 적당한 경도로 굳은 당근케이크를 한 조각 떼어내어 오늘 디저트로 먹기 위해 식탁에 올렸는데 스마트폰에 메시지가 온 것이다.


 문자를 확인하고 덮으려는 찰나, 블로그 댓글 알림이 뜬다. 한참을 확인하고 나서 아내의 인스타그램을 들여다본다. 인스타를 닫고 곧바로 유튜브 앱을 실행시키고 결이고운가 채널에 들어간다.(채널은 우리 집 그리고 부모님, 가족들이 제일 많이 본다) 한 번 열어본 스마트폰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시간 잡아먹는 괴물이다.


"아빠, 핸드폰 그만 봐요. 여기 빌려온 책 읽어요"


 당근 케이크 앞에서 넋 놓고 핸드폰을 보고 있던 아빠에게 결군이 말을 건넨다. 낯설지 않은 상황이지만 익숙함에 당황스럽다. 지저분하게 열려있던 여러 개의 앱을 일제히 종료시키고 스마트폰을 식탁 위에 탁 내려놓는다. 포크를 집어 당근 케이크 한켠을 조심스럽게 잘라내어 결군 입에 넣어주니 몇 년 전 이마트에서 쇼핑하던 중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장을 보던 내가 카트 안으로 과자 한 상자를 툭 던졌고 그걸 보던 결군이 외쳤다. 지나가던 아줌마가 뭔가 역전된 상황에 어이없는 표정으로 킥킥거리며 지나간다.


"아빠, 과자 좀 그만 먹어요. 엄마! 아빠가 카트에 과자 넣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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