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독서에 개입하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악! 무슨 방학40일이 넘어!
직장인 시절, 방학이 가까워지면 듣곤 했던 아내의 포효가 여전히 귀에 맴돈다.
'뭐, 그게 그렇게 소리지를 일인가?'
그래, 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둘도 아니고 셋도 아니다. 초딩 아들 한명과 40일간의 방학이 그렇게 괴성을 지를 일인가 말이다. 달인이 그랬다. 안해 봤으면 말을 말라고. 해보지도 않은 주제에 그런 생각을 품었던 것이었다.
개학이 2주 남았다. 2주나 남았다. 코로나로 인한 집콕과 폭염, 그리고 방학, 삼중고(?)의 시간을 열한살 결군과 걸어가고 있는 지금이다. 아침밥은 여느때와 다름없이 토스트에 딸기쨈 바르고 그 위에 치즈, 이제는 결군 혼자서도 잘 만들어 먹는다. 아침과 점심의 사이는 왜 이리도 친한지 너무 가깝다. 아침을 먹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점심메뉴를 떠올려 놓아야 점심을 웃는 얼굴로 반갑게 맞이 할 수 있다. 가끔 메뉴가 떠오르지 않을때면 답답하다. 이런것이 가느다란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랍다.
점심을 먹는 중에는... 그렇다. 저녁메뉴를 떠올려 놓아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금방 떠올라, 오롯이 점심을 먹는 것에 집중할 때면 감사하다. 저녁을 먹는 중에는...그렇다. 내일 식사 메뉴를 떠올려 놓아야 한다. 삼시세끼가 예능프로의 시리즈물로 자리잡을 만큼, 삼시세끼를 챙긴다는 것은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삼중고(?)는 이미 강력했던 결군의 독서력에도 더 많은 힘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예전부터 도서관에 갈 때마다 30여권(3명가족회원)씩 책을 빌려 2주일안에 모두 읽고는 했지만 책들의 장르가 더 다양해졌다. 꽤 두꺼운 글밥많은 책들임에도 거부감없이 침대에 누워, 식탁에 앉아, 바닥에 엎드려, 읽어내고는 했다. 어떤 날에는 빌려온 책 5권을 그 자리에서 다 읽어버릴 때도 있었다. 자신만의 속독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얼마전인가 '이 녀석 책을 제대로 읽고 있는거야?' 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도서관에서 아이의 독서지도에 관한 책들을 빌렸다. '속독은 아이들에게 치명적이다' '깊이있는 독서가 필요하다' 등등, 그 책에는 결군의 독서습관이 잘못 되었음을 지적하는 글들이 많았다. 결군의 독서에 아빠가 개입을 해야할지 고민이 되었다. 아내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결군은 잘하고 있어. 의심하지 말고 믿고 가보자. 개입하는 순간, 결군의 독서는 공부가 될꺼야."
역시 한 마디로 딱 잘라 말하는 아내였다. 시키지 않고 강요하지 않고 결군 스스로 자연스레 시작한 독서이니 스스로 계속 가도록 놔두기로 했다.
몇 달 후, 아내로부터 카톡이 울렸다.
담임선생님께서 아내에게 결군이 쓴 동시를 보내주셨다.
아...지금봐도 울컥...
아내의 말처럼 결군의 독서에 개입 안하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