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내는 내게 말한다. "적당히 해라!"
아내가 자주 쓰는 말,
적당히
얼마 전 다녀온 전주 한옥마을 나들이,
그리고 남부시장 2층 청년몰.
청년몰의 캐치프레이즈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
아내가 이번 여행에서 전주 한옥 마을보다
더 기억에 남는다는 이 문구.
우리 부부가 직면해 있는 상황에
무엇보다 윤기를 더해주는 문구.
아내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현관의 작은 벽에 문구를 새겨 넣은 액자를 걸었다.
아내가 '적당히'란 말을 자주 쓰는 진짜 이유.
힘을 써도 중간이 없고
말할 때도 중간이 없고
뭐든 중간이 없는 남편 때문.
네덜란드 시골마을에서 한달살이 중.
근처 놀이터에서 뺑뺑이를 돌려달라던 아들.
그래서 아빠는 신나게 돌렸다.
아들도 덩달아 신이 났는지
아빠에게 이렇게 외쳤다.
아빠! 더! 더! 돌려! 얏호!
다섯 살이던 아들,
신이 나서 흥이 나서,
암 생각 없이 돌리라던 아들.
아빠는 아들의 부탁을 그대로 들어주었다.
중간이 없는 아빠는
아이들의 말에는 적당한 필터링이 필요하다는 것을
잠시 잊어버렸다.
어느새 뺑뺑이는 빛의 속도로 돌고
아들은 뺑뺑이에서 사라져버렸다.
아들을 찾던 아빠는
엄청난 속도로 땅바닥에 내동댕이 쳐지는
아들을 그냥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난생처음 보는 다섯 살 아들의 쌍코피.
중간이 없는 아빠를 만나서
네가 고생이 많다.
오늘도 아내는 내게 한마디 한다.
적당히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