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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퇴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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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노 Jun 09. 2016

헤나이 해뽀 히뽀

내 머릿속은 온통 헤나이와 해뽀로 가득찼다.

아들이 유치원 버스에서 내렸다. 회사로 출근하지 않는 아빠가 아직은 부끄럽지 않은 아들은 버스에서 내리면 한달음에 뛰어와 내 품에 안기곤 했다. 그러나 오늘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터벅터벅 버스에서 내렸다. 아들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살짝 부은 콧잔등 밑으로 하얀 휴지가 꽂혀 있었다.


"아들, 코 괜찮아?"

"응~ 괜찮아~"

"어떻게 다친거야?"

"동~동~동대문 하다가 넘어졌어."


리듬을 타며 '동~동~동대문을 열어라'라고 말하는 휴지 꽂힌 콧구멍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아들을 번쩍 끌어안고 집으로 들어가는 데 녀석은 무언가를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집으로 들어온 결군은 엊그제 생일때 먹다남은 케잌을 먹으며 종이접기를 시작했다.

입가엔 케잌이 잔뜩 묻은채로 손은 종이접기를 하며 뭐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까 집으로 들어올때 하던 소리같았다.


"헤나이 해뽀 히뽀"

"뭐라고 결아?"

"헤나이 해뽀 히뽀. 오늘 새 영어책이 왔어. 거기에 나와."

"아, 영어를 배웠구나. 다시 한번만 말해줄래?"

"헤나이 해뽀 히뽀"


아, 도대체 뭔 소릴까. 여섯살 아들이 말하는 이 영어가 어떤 말일까. 궁금증이 밀려왔다.

뭔소리인지 못알아듣는다고 하면 상처받을까봐 혼자 한참을 생각했지만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결아 그 영어 다시 말해 줄래? 그리고 새 영어책엔 뭐가 나와?"

"헤나이 헤뽀 히뽀. 책에 하마가 나와."


하마! 히포! 하마를 듣는 순간 감이 왔다.


'헤나이 해뽀 히포'구나.

'그럼 헤나이 해뽀는 뭘까? 헤나이, 헤나이, 헤나이....'


내 머릿속은 온통 헤나이와 해뽀로 가득찼다. 헤나이, 헤나이, 캔 아이? 해뽀. 해뽀. 헬프?


"결아 혹시 캔 아이 헬프 히포?"


결군은 너무도 태연히


"응"


이라고 답했다.

아, 귀여운 녀석.


'캔아이 헬프 히포'를  '헤나이 해뽀 히뽀'라고 말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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