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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노 Jun 08. 2017

행복 목욕탕, 아픔을 불려 때수건으로 밀어낸 로드무비

탕 속처럼 뜨거운 웃음으로 치유를 받다

사람은 저마다의 아픔을 품고 살아간다. 드러내 놓고 싶지 않기에 감추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 아픔을 자신의 작은 몸 하나로 버텨내야 하기에 어떤 사람은 이곳저곳 정처 없이 떠돌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열지 않고 꽁꽁 묶어버리기도 한다. 아픔을 가슴 깊숙이 묻어두고 있지만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치유하지 못하는 이들의 빛이 되어주는 사람도 있다. 아픔을 품고 있는 사람이 빛이 되어 다른 사람을 비추어주고 그 빛이 하나하나 모여들어 결국 그 자신에게까지 비추어진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보아주고 들어주며 지켜본다. 그들의 아픔이 행복으로 피어날 때 즈음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어젯밤, 아내와 함께 본 ‘행복 목욕탕’의 주인공의 모습이다. 그리고 덜 떨어진 남편과 왕따를 당하는 청소년 딸, 남편이 데려온 친엄마에게 버림받은 아홉 살 꼬마 여자아이, 집 나간 남편을 찾기 위해 고용한 탐정과 그의 딸, 매년 딸의 생일이면 키다리 게를 집으로 보내주는 어떤 여자, 여행 중 만난 히치하이커 청년이 주인공 그녀의 주위를 맴돈다.



“어떤 색깔이 맘에 들어?”


빵집에서 아르바이트하다가 학교 전화를 받고 달려간 엄마가 친구의 괴롭힘으로 교복이 그림판이 되어버린 딸의 모습을 본 후 건넨 첫마디이다. 부끄럽고 슬픈 표정이 가득한 딸아이의 얼굴은 차츰 온기를 찾더니 대답을 한다.


“하늘색”


엄마는 활짝 웃으며


“그래도 난 빨간색이 좋아”


자신의 자식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다면 어떨까.

현장에서 험악한 얼굴을 하고 가해자 학생을 때리고 나무라 한들, 

아이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까. 영화의 감독은 ‘그렇지 않다’라고 생각했다.

어떤 이는 ‘자식이 저런 상황을 겪었는데 부모로서 저게 말이 되는 상황이냐’ 라고 반문하겠지만, 난 영화를 보며 혹시나 내 자식에게 저런 상황이 닥치면 ‘나도 저렇게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엄마는 아이의 상처를 들어주고 쓰다듬어주며 스스로 조금씩 이겨내는 모습을 기다리며 지켜봐 주었다. 

아이가 스스로 헤쳐나가는 그 시간 동안 엄마는 자신의 몸이 이미 손을 쓸 수도 없는 말기 암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후, 영화는 로드무비 느낌이 풍겨 난다. 집 나간 덜 떨어진 남편을 찾기 위해 고용한 탐정을 알게 되고 탐정을 남편을 찾아내고 아내의 시한부 인생을 알게 된 남편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라도 지키려는 듯 아내의 부탁대로‘행복 목욕탕’ 영업을 돕기 시작한다. 여행을 떠나고 히치하이커 청년을 만나 목표를 심어주고 여행의 목적지에서는 딸아이에게 어떤 진실을 알려준다. 엄마의 주변 인물들이 한차례 폭풍우를 겪은 뒤, 그들은 거짓말처럼‘행복 목욕탕’으로 모여든다.



모여든 이들은 자신들이 품고 있던 아픔을 조심스레 꺼내어주고 뜨거운 물에 푹 불려 때수건으로 살살 밀어내 준 ‘행복 목욕탕’의 주인장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영화의 마지막에 다다라서야 영화는 주인장의 아픔을 꺼내어준다. 많은 이들을 치유해준 장본인의 아픔을 치유해주지 않은 감독에게 당혹감을 조금 느꼈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나는 깨달았다. ‘행복 목욕탕’의 주인장은 치유받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신을 거쳐간 많은 이들의 행복 목욕탕의 탕처럼 뜨거운 웃음에서 이미 치유를 받았다는 것을… 



영화는 덜 떨어진 남편의 엉뚱한 발상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마지막을 가족과 함께 보낸다 말해놓고 영구차에는 가짜관을 실었다.


진짜 관은 어디 갔을까? 


‘행복 목욕탕’의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른다.

주인장이 평소에 좋아하던 빨간 연기가..

주인장이 행복을 선사한 이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낡은 탕 안에 몸을 담그고 있다. 탕 안에 들어오면 행복할 것 같은 목욕탕의 이름처럼 애써 웃음을 짓지 않아도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로도 그들이 행복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감독이 표현한 빨간색의 굴뚝 연기는 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주인장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핀치가 살짝만 엇갈리면 호러영화로 마무리될 수도 있었던 마지막이었지만, 나에게는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따뜻함으로 다가왔다.


어젯밤 나의 영화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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