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지나간 후, 마을이 조금씩 건강해짐을 느낀다
시골살이가 갓 일 년을 넘겼다.
내가 시골에 정말로 살게 될 줄은 몰랐다.
도시에서 살 적, '돈 모으면 집 짓고 살아야지'라는 다소 실현 불가능한 희망사항만 가슴에 품은 채 살아갈 줄로만 알았다.
그랬던 내가, 땅을 사고, 집을 짓고 이렇게 일 년을 넘게 시골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에 아직도 얼떨떨하다.
도시에서 시골로 삶을 옮긴다는 것은 여러 가지가 의미가 있다.
그중에 적지 않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귀촌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채워주지 못함으로 인한 실망감이 아닐까 싶다.
나는 귀촌을 하게 되면 마을 사람들과 매일매일 대화하며 삶의 지혜를 키워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했다.
물론 그 당시 퇴사를 하고 적당히 벌어 잘 살기 위한 고민을 매일같이 하던 때라 더욱 그러했는지 모른다.
귀촌을 하고 마을 사람들에게서 무언가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무언가를 말이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참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육아에서부터 마흔을 맞이하는 자세, 아내와 남편, 남편과 아내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 이전보다 더 나은 부부로 성장하는
법도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했다.
내가 미디어에서 보아온 귀촌 후 마을 사람들과의 삶은 그러했었다.
일 년이 지났다.
귀촌에 대한 기대는 나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마을 구성원들이 갖고 있었으며 큰 틀에서는 비슷했지만 같다고 할 수 없을 만큼의 차이가 있는 그런 기대들이었다.
각각의 기대들을 충족하기 위해 실천하는 방법들은 조금씩 달랐다.
자신은 문제없다고 생각했던 행동들이 마을의 누군가에겐 커다란 상처가 되었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뱉어낸 말들이 다시금 돌고 돌아 다른 사람의 상처가 되기도 했다.
화성 남자, 금성 여자가 아닌 은하계의 알 수 없는 별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짧은 시간 안에 어우러지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작고 거친 바람이 일기도 했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커다란 태풍이 몰아치기도 했다.
마을의 구성원들은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다.
귀촌에 대한 기대를 짧은 시간에 충족시키려는 욕심을 조금씩 비워내고 있다.
긴 호흡으로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자리에 없는 누군가를 입에 담지 않으려 하며 너를 이야기하고 나를 이야기하며 지혜로운 삶을 이야기한다.
알아챌 수 없을 만큼 조금씩 조금씩 마을이 건강해짐을 느끼고 있다.
어제,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ㅅㅈ언니 엄마가 영광에서 생물 꽃게를 성남터미널로 보냈다네, 퇴근길에 가져다줘"
퇴근길, 터미널에서 엄청난 양의 꽃게를 들고 집으로 향했다.
ㅅㅈ씨는 고맙다며 커다란 꽃게 박스 3 상자 중, 한 상자를 나에게 주었다.
정말로, 정말로 이렇게 많이 받아먹어도 되는 거냐고 몇 번을 물었지만, 먹으란다.
집에서 상자를 열어보니 진짜 엄청난 양이더라, 이웃분들과 꽃게를 나누고,
난 저녁으로 꽃게 라면을 끓여먹었다.
라면에서는 꽃게 향을 듬뿍 머금은 훈훈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마을에 꽃게 라면 냄새가 퍼졌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