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바퀴속의 모든 사소함이 아빠를 살아움직이도록 합니다
'드르륵, 드르륵'
진동 알람이 1초간격으로 울립니다. 꿀잠을 잔 탓인지 내 몸은 스폰지에 물이 흥건히 스며들 듯 침대에 반쯤 스며들어 있습니다. '아, 일어날 시간이구나, 그래도 10분은 더 잘 수 있으니까' 라는 생각이 약 0.5초간 머물다 이내 다시 흐릿해집니다.
'탁탁탁, 탁탁탁'
발걸음 소리가 곧이어 들려옵니다. 슬라이딩도어가 진동알람소리처럼 드르륵 소리를 내며 열립니다. 침대 아래에 있는 협탁위의 스마트폰을 들더니 익숙하게 '다시알림' 을 옆으로 밀어 알람을 정지시킵니다. 흐릿해졌던 생각이 '이제 10분 더' 라는 생각에 잠시 또렸해졌다 이내 다시 흐릿해집니다. 발 아래에 있는 폭신한 베개를 아빠의 헝클어진 머리로 가져갑니다. 이제 엄마의 베개와 아빠의 배개가 일렬로 누워있습니다. 양쪽 다 수술한 엄마의 무릎을 밟지 않기 위해 조심스레 엄마와 아빠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베개에 작은 머리를 뉘입니다. 어젯밤 바른 로숀 냄새, 샴푸 냄새, 침 냄새, 아이의 냄새, 땀 냄새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엄마와 아빠는 참지 못하고 얼굴을 그의 양쪽 볼에 비벼대고 손은 그의 머리카락과 목, 배, 다리를 쓰다듬습니다. '아빠 그거' 하고 그가 소곤거립니다. 아빠는 팽팽한 발바닥을 들어올려 초코송이같은 다섯개의 발가락을 한껏 뒤로 젖혔다가 잠시 머문 뒤 다시 한껏 앞으로 젖힙니다. '시원해?' '웅,시원해'
'드르륵, 드르륵'
다시 진동알람이 울립니다. 짧았던 아침 의식이 거의 끝나갑니다. 그는 용수철처럼 튀어올라 스마트폰을 집어들고 '다시 알림'이 아닌 '중지' 버튼을 익숙하게 터치하고 다시 비집고 들어옵니다. 아빠는 '1분만 더, 아니 일어나야되, 30초만 더, 괜찮겠지, 아니야 일어나야되' 아들이 모르는 사투를 혼자 벌이고 있습니다. '아빠, 배고파' 아들은 아빠의 아침전쟁에 종전을 선언합니다.
'끼이익'
그는 냉동고 문을 열고 아래 두번째 서랍에 들어있는 얼어있는 식빵 한 봉지를 꺼냅니다. 식빵 한개를 꺼내고는 씽크대 첫번째 서랍에 들어있는 토스터기에 식빵을 넣습니다. 코드를 꽂고 적절하게 구워지도록 타이머가 맞춰진 토스터기의 위로 솟아 있는 버튼을 힘껏 아래로 누릅니다. 그가 이번엔 냉장고 문을 엽니다. 크림치즈와 며칠전 엄마와 함께 마을 뒷산에서 따와 직접만든 산딸기쨈을 꺼냅니다. 딱딱하게 얼었던 식빵이 사르르 녹으며 축축해집니다. 뜨거운 열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바싹 말라버립니다. 이내 노릇노릇 꼬소한 냄새가 온 집안을 맴돕니다. '철커덕' 하고 고소하게 구워진 식빵 한 조각이 튀어오르며 아침을 뒤흔듭니다.
'띠리리릭'
아빠는 블루투스 스피커를 켭니다. 잠시 후 '삑'하며 라디오 전용으로 사용중인 스마트폰과 페어링이 되었슴을 알립니다. 이미 실행중인 레인보우 라디오 앱의 삼각형 버튼을 터치합니다. 버릇처럼 주방에 캔버스같은 창문에 그려진 산들을 바라봅니다. 능선이 선명합니다. 오늘따라 초록산이 더욱 초록초록합니다. 근래에 미세먼지없는 날들이 수일째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공기가 좋은 날은 선물과도 같습니다. 라디오에서 신나는 음악이 흘러 나옵니다. 양치중인 아빠 앞에서 부시시한 머리와 퉁퉁부은 얼굴의 엄마가 춤을 춥니다. 식빵을 한 입 베어물은 그는 산딸기의 깨를 오도독 오도독 씹으며 춤추는 엄마를 한두번이 아닌 듯 익숙하게 바라봅니다.
'지이이이이잉'
캡슐 커피 머신이 요란하게 소리를 냅니다. 아빠는 출근 전, 항상 마당에서 커피를 마십니다. 흑반병으로 곰보가 되었던 장미넝쿨들이 조금씩 치유되고 있슴이 느껴집니다. 힘든 순간이 오면 치유되는 시간도 반드시 온다는 사실을 장미가 알려줍니다. 오늘은 영국장미 몽우리 몇개가 기어이 꽃망울을 터뜨립니다. 커피향과 함께 마당엔 장미향이 싱그럽습니다.
'쾅'
하고 현관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빠, 커피 다 마셨어요?' 그는 항상 학교에 빨리 가고 싶어합니다. 그곳이 참 재미있다고 합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큰일이라도 벌어지는 줄 압니다. 건강달리기도 해야하고 친구들하고 조금이라도 더 놀다가 수업을 시작해야햐 한다고 아우성입니다.
'쪽'
하고 아빠가 엄마에게 뽀뽀를 합니다. 그도 엄마에게 '쪽'하고 뽀뽀를 합니다. 대문이 열리고 '텅,텅,텅,텅' 나무로 된 계단을 내려갑니다.
'부르르릉'
차가 출발을 준비하는 소리를 냅니다. 출발하려는데 '쭈뼛쭈뼛' 앞 집 아이가 차를 바라보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타!' 언니가 차에 오르니, 동생이 뒤따릅니다.
'덜커덩,덜커덩'
울퉁불퉁한 마을길을 내려갑니다. 손녀를 학교에 바래다 준 할머니가 언제나처럼 인사를 건네십니다. 1분여를 내려가서 교차로에 멈추어 섭니다. 시골학교 앞 사거리에 드디어 신호과속카메라가 설치되었습니다. 환영합니다. 차에 탄 세명의 아이들은 운동회 100미터 달리기 출발선에 서 있는 듯, 뜀박질 준비에 들어갑니다. 학교 앞에 차가 서고 '내리세요' 라는 말과 동시에 세명의 아이들이 튀어 나갑니다. 그냥 뜁니다. 그들에게는 '재밌게 놀다와!' 라는 아빠의 인사가 메아리처럼 멀어져 갈 뿐입니다.
'데굴데굴'
쳇바퀴처럼 돌며 사는 게 인생이라고 체념하듯 흔히들 말합니다. 아빠는 생각합니다. '꽤 괜찮은 쳇바퀴인데' 매일 반복되는 쳇바퀴속에서도 계절이 있고 꽃이 있으며 풀내음이 있습니다. 그가 자라나는 변화가 있습니다. 쳇바퀴속의 모든 사소함이 아빠를 살아움직이도록 합니다. 설레이게 합니다. 미래를 잊게 합니다. 지금을 느끼도록 합니다. 쳇바퀴속의 작은 소리들이 아빠를 행복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