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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노 Jul 19. 2019

벼랑위의 포뇨가 느끼게 해 준 일상

지금의 일상이 미래에 묻혀선 안 된다

"포~뇨, 포뇨, 포뇨, 아기 물꼬기!~"


우리의 아지트 다락에서 벼랑위의 포뇨를 보았습니다. 9살 아들과 아내와 함께 말입니다. 더빙이 더 재밌는 이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벌써 3번째 우리 가족과 함께 한듯 합니다. 화려하지만 따스한 컬러가 보는내내 기분좋게 하고 누군지는 모르지만 세상 귀여운 강아지가 앞에서 재롱 떠는 걸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포뇨의 목소리가 사랑스럽습니다. 


 소스케의 아빠는 배를 운전하는 선장입니다. 바닷가 우뚝솟은 벼랑위에 사는 소스케와 엄마는 가끔씩 집 앞으로 아빠의 배가 지나갈 때면 빛을 이용한 모르스부호로 대화를 주고 받으며 아빠를 기다립니다. 드디어 아빠, 남편이 집에 오는 날입니다. 엄마는 들뜬 마음으로 맛있는 요리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곧이어 전화벨이 울립니다. 


 엄마는 얼굴을 찡그리며 화를 냅니다. 소스케는 대화를 듣지 않아도 어떤 상황인지 짐작이 갑니다. 한 두번 겪어본 상황이 아닙니다. 아빠는 일 때문에 이번에도 집에 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엄마는 침대에 의기소침한 채로 거꾸로 누워있고  저 먼바다에서 날라오는 아빠의 빛 모르스 부호를 수신합니다. 다섯살짜리 아들은 즉시 해석하여 엄마에게 전달합니다. 



"엄마, 아빠가 미안하대!~"

"빠가, 빠가,빠가!!!!!!"

"엄마, 아빠가 사랑한대~!"

"빠~~~~~가!~"


소스케의 엄마는 줄곧 바보만 외칩니다. 

웃으며 보던 제 아들의 엄마도 속삭입니다. 


"난 저 기분 알지, 소스케 아빠는 엄마의 짜증을 받아주기는 하네.." 

라고 속삭입니다.


 양평으로 귀촌하기 전, 저는 장기간 해외출장이 잦았습니다. 한달 일정으로 갔던 출장이 두달이 되고 세달이 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아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쑥쑥 자라는 그 시간, 저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아내는 그 빈자리가 하루빨리 채워지기를 바라며 남편이 돌아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습니다. 돌아오기 3일전 쯤 나는 저 멀리 타국에서 아내에게 복귀가 연기되었다고 전화를 겁니다. 아내는 기다렸던 만큼 상심도 컷기에 짜증섞인 말투로 푸념을 늘어놓습니다. 저는 소스케의 아빠처럼 빠가소리를 다 받아내며 사랑한다는 말로 넉살좋게 받아넘기지를 못했습니다. 내가 있고 싶어서 있는거냐, 잠도 못자고 일해도 안 끝나는 걸, 나도 힘들다, 너까지 왜그러냐, 소스케의 엄마처럼 빠가소리가 비집고 들어올 틈을 주지를 않았으니 말입니다. 포뇨의 저 장면에서 아내가 뱉었던 상심의 말들에  과거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요즘같이 일주일내내 아들과 아내의 얼굴을 볼 수 있고 연휴에 하루종일 얼굴 비비며 별일 없이 지내는 요즘의 일상이 행복한 이유입니다. 


우리는 5년후, 10년후,  그 이후를 생각하며 살고있습니다. 미래를 외면하면 안 된다고 미디어에서 언론에서 이야기합니다. 미래를 외면하지 않으려 하니 지금에 소홀해집니다. 갑갑합니다.


 저는 지금의 일상이 미래에 묻혀선 안 된다고 스스로 되내입니다. 벼랑위의 포뇨가 건네주는 말을 들으며 저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합니다. 


 "포뇨, 포뇨, 포뇨, 포뇨, 아기 물꼬기~ ! 포뇨, 햄 좋아, 소스케 좋아~! "

 

다락에서 이 글 쓰고 있습니다. 아내가 팔 베고 누워 " 내일은 결군과 뭐하고 놀아야 되나" 라고 중얼거립니다. 방학에 아들 가르칠 생각만 하지 않고 놀 궁리만 하는 아내가 정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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